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열여섯째 날

sunking 2013. 10. 9. 21:16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발가락 하나도 불편하고, 이 순례길의 대표 도시, 부르고스를 스치며 지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난 이 곳에 머물기로 했다.

발가락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차피 이 곳은 이틀을 묵기로 했는데, 발가락 물집까지 머물 이유를 더해준다.
어차피 이 시립 알베르게에서의 하룻밤은 더 묵을 수 없다했고, 느긋하게 아침을 준비했다.

6시 30분이 되자 거의 모두가 퇴실, 늑장을 부리고 부린 시간이 7시 30분쯤일까. 이곳 직원들이 8시가 되자 모두가 나가란다.

주룩거리며 내리는 낯선 거리에서 - 성당으로 안내를 하시다





밖은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문제는 저 무거운 내 배낭. 다른 알베르게를 찾기 위해 난 저 가방을 메고 다른 숙소를 찾아 가야 한다는 거다. 비옷에 모자에 준비는 완료.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은 처량해 질까. 길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까미노 인포메션 센타를 안내 받고 찾아 간 곳,

지도 하나를 받았다. 친절하게 그들은 알베르게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청소부 안저씨들에게, 길가던 행인들에게, 주룩주룩 비를 맞으며 묻고 물었지만 누구도 날 안내를 해 주진 못한다.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들어 가는 곳, 어느 성당 앞이다. 우선 비라도 피하자.
그들을 따라 성당을 들어갔고, 신부님은 미사 준비중.
한시간여를 배낭을 메고 비를 맞으며 헤맨 피로가 밀려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쉼터를 주셔서.

미사예절은 안식처럼 다가왔다.

내 세례명은 카타리나. - 내가 인도된 알베르게는 성녀 카타리나의 집.





비는 조금씩 잡아들기 시작, 대성당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벌써 11시 가까이 시간이 됐다.

오늘 아침은 참 힘이 든다. 비는 오지, 모든 카펜 문이 닫혀있지, 알베르게는 찾을 수 없지. 내 온 몸은 짐에 묶여 뒤뚱거리지.
드디어 찾은 카페, 뜨거운 커피 한잔과 빵 하나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꿈처럼 다녀왔던 성당, 미사예절, 광장
근처를 뱅뱅 돌았던 3시간 속에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묻어있다.

카페를 나오자 몇 명의 가리비를 매단 배낭족들이 어느 곳으론가 들어간다. 부지런히 나도 그들을 따라 간다.
어, 이곳은 아까 내가 헤매며 왔던 곳 아냐? 앞서 들어온 사람들이 달팽이 같은 층계로 올라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올라간다. 꼬불꼬불 4층, 와아, 알베르게다. 영감님이 바쁘게 우리를 맞는다. 비용은 단 돈 5유로. 성녀 카타리나의 집.





카타리나의 집은 총 18개의 침상이 있다. 아주 조그맣고, 아늑하고, 따듯하다.

영감님은 젖은 비옷을 받아 침상 옆에 걸어주며 이층 침대로 안내한다. 기타를 들고 나와 멋지게 연주를 해 준다. 모두들 지쳐있나?

그 멋진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나 혼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아름다운 선율의 생음악을, 연주가 끝나고, 비도 그치고,

점심도 먹어야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언제 비가 왔더라. 하늘은 짙푸른 코발트빛, 피어 오르던 하얀 뭉게구름은 목화송이.











11월 날씨쯤은 되는 것 같다. 비 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대 성당 주변으로 산책을 한다. 철철 비를 맞으며 찾아갔던 아침의 그 성당도 다시 찾아본다. 성당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피기 시작한 꽃들도 푸른 나뭇잎도 석조   건물들과 어울려 아름답다. 대성당 광장의 순례자 동상이 인상적이다.
지쳐 앉아 있는 순례자의 모습, 하기사 부르고스까지의 289km의 대 장정이니 지치기도 하지. 

그럼 나는?
감사하게도 지치고 힘든 몸, 하룻밤 자고 나면 항상 새 힘이 솟아난다.





광장엔 관광객이기도하고 순례자이기도 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부르고스 대성당 주변을 관광하는 미니기차 두 칸이 돌고 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이 즐거운 얼굴로 손짓을 한다.
어느 모퉁이 커피집 - 꿈 속에서 날보며 웃던 친구가 그리워







오늘아침, 거미줄처럼 엉긴 광장 주변의 길들로 나를 조여오던 두려움은 이제 없다. 나는 편안히 쉴 숙소를 정했고,
그 곳은 오늘 하루 안식처로 날 맞아 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커피숍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본다.

내 눈길을 의식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엿 본다는 건 내겐 아주 흥미 있는 일이다. 연인들이 즐겁게, 친구들이 나란히, 부부가 의지하며
또는 혼자서 외로이, 그렇구나. 혼자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긴 하는구나.
한편의 영화 화면을 보는 것 같은 흥미로움, 때론 그 모습을 보며 길고 긴 얘기를 풀어가 보기도 한다.

어젯밤 꿈 속에서도 즐겁고 행복했던 어느 날의 내 모습을 엿보고 왔지. 언제나 내게 편안했던, 무엇을 얘기해도

성심껏 들어 주던 친구, 그 친구는 웃고 있었어. 그를 기억하노라면 왜 마음이 아파올까.

어쩌면 유리창 밖 어느 곳에선가 그 친구를 찾고 있는지도 몰라. 그의 따듯함과 다정함, 담백함을.

자상하고 따듯한 친정 아버지 - 알베르게 영감님.



오늘 숙소 내 옆 침대엔 프랑스 부부가 있다. 저녁 식사할 좋은 장소를 안내해 줬고,

흔들거리는 이층 침대에 오르락 내리락 할 때마다 옆에서 잡아줘 안심하게도 해 줬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알베르게 영감님은 10시가 되자 어서들 자라며 소등을 한다. 날씨가 춥다며 보이라 온도를 높여준다.

자상하고 사랑 많은 친정아버지 같다. 
부르고스 대 도시에 이틀을 묵었음에도 나는 대성당의 유물 전시실에도 또 다른 곳의 오랜 역사 유적지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마음에 조금은 걸린다. 찾아 볼 걸, 하지만 후회는 하지말자. 허락하신다면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