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날에
뒷 정원에 연결된 식당엔 귤빛 백열등이 켜져 있고, 빠르게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다들 떠났다. 식당엔 나 혼자다.
커피와 빵, 우유, 그것이 전부다. 입이 깔깔하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들어온다. 나이는 22. 국적은 스웨덴, 북구라파의 여자답게 크고, 건장하고, 젊잖다. 여학교를
2년전에 졸업했지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없었고,
목적 없이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아 지금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 길을 걸으며 다시 한 번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일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커피를 마시던 짧은 시간 짧은 시간, 자신을
소개했다. 어쩐지 문을 밀고 들어오던 아가씨의 표정이 진지하기도 했지만 약간은 우울해 보이더라니. 아가씨는
이 마을이 편안해서 좋단다. 며칠 묵다가 가겠다고했다.
네가 소망하던 답을 얻기를 바란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난 길에 올랐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꿈, 두려움, 선택에 따른 번민,
젊음은 한없는 가능성도, 풋풋한 싱그러움도, 보물을 캐 가듯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도전도 있지만 그 번민과
고뇌와 치러내야 하는 전쟁 같은 날들이 싫어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삶은 한번으로 충분해.되돌아 전장터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나는 용감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길에 대해 고민하며 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어차피 인생이
그림대로 그려지는 건 아니라 해도 자신의 삶을 그리려 노력하는 과정의 모습이 아름답다.
오늘 이곳은 우리나라의 10월 날씨 같다. 옷깃에 닿는 삽상한 바람이 그랬고, 끝없이 높고 푸르던 하늘이 그랬다.
밝고 투명한 태양이 만들어 준 길고 긴 그림자를 안고 걷는 길 내내 옆에 동행하며 조잘대던 새들의 노래 소리도
수정처럼 투명했다. 샘물에서 퐁퐁 물이 솟아 나듯 기쁨이 가슴에서 솟아 오른다. 보이는 모든 것을 향하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손짓이 하고 싶어진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건 내게 정말 축복이야.”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몸은 깃털이라도 달리려나, 가벼워지고.
오늘의 목적지인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1000m 고지대 마을이다. 이미 걷기 시작하는 벨로라도는 800m. 200m 경사를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산을 제법 오르는 내게도 숨 가쁜 오르막길이곤 했다.
어느 마을 성당 앞, 커다란 나무 한구루가 내게 쉬어 가란다. 성당 주변의 풀밭, 햇빛을 받은 나뭇잎의 반짝임, 바람에
부딪는 나뭇잎의 소리, 성당 벽에 기댄 벤치에 앉아 난 다시 메모장에 이 광경을 메모해놓는다. 보고, 듣고, 느끼고,
오월을 내 온 몸으로 받아 안으며 한껏 즐기고 있는데, ‘어머니’를 위치며 세 명의 아들딸들이 뛰어온다. (산토도밍고,
벨로라도 그리고 오늘도 같이 걷고 있는 팀이다) 어느 마을 바에서 노닥이다 온다했다. 풀밭에서 한참을 놀았다. 순하디
순한 흰둥이도 합세를 한다.참 평화롭다.
오르막이다. 불란서 아줌마가 친절하게 다가온다. 자주 만나졌던 양반이다. 아줌마는 불어 외의 말은 할 줄을 모르고,
기억을 더듬어 몇마디의 불어와 내가 할 수 있는 문장은 이게 다야 라며 얘기하자 자기네 나라 말을 한다며 좋다고
끌어 안는다. 아뭏튼 이 사람들 표현은 나같은 사람이 받아 들이기엔 약간은 부담스럽다.
오르막은 내가 힘을 얻는 길이다. 더 빨리 걸은 것도 아닌데, 산길 오르막 끝에서 만난 떡갈나무 숲길에 이르러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보자,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가 없다. 고원이라 그럴까, 떡갈나무 숲길은 아직 앙상한 나목이다. 움틀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멀리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던 능선, 지리산 능선 길에서 만나는 산처럼 첩첩이 이어진다. 저 산 능선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길일까, 오늘 날씨는 왜 이렇게 예쁠까, 그저 눈으로만, 가슴에만 담기엔 너무 아깝다.
꽤 긴 시간을 걸었나보다. 고요와 적막함이 익숙한 동반자 이긴 했지만, 어쩌면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분명 아랫마을에서 올라올 때 많은 사람들이 같이 걷기 시작했었는데,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조금씩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 빛 밝은 산길에 앉아 먼 산 능선을 바라보기도 하며 주변을 살핀다. 쪼르르 새들이 다가온다.
“괜찮아. 우리들이 너랑 함께 걷잖아.”
샘물이 솟아나는 곳, 멀리서 젊은이 하나가 걸어온다. “와아, 살았다.” 나는 속으로 손뼉을 친다. 이 떡갈나무 숲길은 한여름
순례자들에게는 감로수의 역할을 하는 곳이란다. 뜨거운 태양에서부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행복이 솟아날만큼 멋진
시야를 만들어 주는 길이다. 중세시대 이 길은 강도와 들짐승들이 순례자들을 괴롭히기로 악명높던 길이라던데, 오늘 내게는
더없이 아름답기만 한 길이다. 뒤 늦게 도착한 배낭족들이 하나 둘씩 능선위에 짐을 내려 놓고 땀을 식힌다.
떡갈나무 숲길을 벗어나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오솔길 옆으로 작은 시내가 졸졸 흐르며 친구해 준다. 숲 속 나무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빛 속엔 수선화를 닮은 청순하기 이를데 없는 들꽃이 숨듯이 피어있다.
산후안 데 오르테가는 동화 속, 한 폭의 그림처럼 나타났다.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는 돌담으로 이어졌고, 뜨거운 태양아래 잠자듯 고요한 밀밭 길 사이를 걸을 땐 아득하게 뻐꾸기의
소리가 들려온다. 몇채 되지 않는 마을의 집들은 중세시대쯤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돌집이었다. 알베르게는 하나, 바도
알베르게 옆에 하나 뿐이다. 햇살은 여과없이 쏟아져 내리고, 아무 장식도 없이 지어진 소박한 성당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웅장하고 정교한 장식의 성당에 비해 그 간결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산 후안은 도밍고 성인의 제자였다고 한다. 도밍고 성인을 본 받아 그는 평생 순례자들을 위해 살았다. 마을의 교각과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으며, 위험한 산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가까웠음을 알리기 위해 종을
울리는 이 성당도 지었다고 했다. 12c에 살았던 이 성인은 다산의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왕비는
성인에게 기원하여 아기를 갖는 기적이 일어났다. 훗날 이사벨 왕비는 이 성당을 위한 많은 후원금은 물론 성인의 무덤
주변에 거대한 캐노피를 만들어 성인을 기렸다 한다. 도밍고 성인의 닭의 기적과 함께, 후안 성인의 벌떼의 기적은 쌍벽을
이루며 순례길에 오르고 있다.
저녁 6시, 이글레시아 성당에 미사가 있었다. 몇 명 밖에 안되는 마을의 신자와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는 어느 곳에서보다도
조촐하고 한 마음으로 모아지는 느낌이다. 산후안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무덤이 있다했는데, 찾아 보지는 못하고 말았다.
미사가 끝나고 나왔을 때,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유일한 바에서의 저녁식사, 장소가 비좁아 겨우 빈자리 하나 얻어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산후안 신부가 살아 계셨다면 추워서 잠을 설칠 만큼 열악한 알베르게를 이렇게 방치하진 않았을 텐데,
고원지대라 그런가, 너무 춥다. 추우니 잠도 잘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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