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열다섯번째 날

sunking 2013. 10. 9. 21:09


오늘은 부르고스를 향하여



오늘은 까미노 길의 거대한 두 도시중 하나인 부르고스로 가는 날이다.
동쪽에서 떠 오른 눈부신 태양은 내 길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솔향기 가득한 숲길과, 떡갈나무 울창한 숲길이
끝나던 길까지 뻐꾸기는 나와 동행을 한다. “네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이 아파.”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알았어. 같이 가자. 아프긴 해도 네가 같이 있으니 좋네.”

커피를 마시는 건 인연의 향기도 함께



어제 미리 떠난 세 친구들이 머물렀던 마을 아지스에 도착, 따듯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작고 예쁜 마을
바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는 건, 마시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주어진다. 낯선 마을을 내 마음에 그려 넣기도 하고,
언젠가 연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그곳의 향기도 맡으며 여유롭게 마주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내겐 매 순간
새로움이고 신선함이다. 오늘은 길을 가다 어제 그 비좁은 바에서 저녁을 먹을 때 옆에 앉아 있던 불란서 화가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작은 마을 어귀에 앉아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담고, 메모에 몇줄 마을에
인상을 적어 가듯, 그는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시골 작은 마을에 태극기가



오늘 걷는 길에서도 여섯개의 작고 예쁜 마을들을 지났다. 지나던 어느 시골 마을 알베르게의 현수막엔 자주 찾는 나라들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현수막 안에 태극기가 멋지게 들어 있었다.  현수막 안에 들어 있는 내 나라의 국기를 보며 울컥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 대한민국, 너 참 대단해. 자랑스러워.

쎌카로 외로움을 달래볼까





해발 1000에서 900의 고원지대는 상큼한 날씨였고, 더 할수 없이 기분좋은 바람이 걷는 길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이 길의 최고점인 1100고지쯤 숨가쁘게 오르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 나타났고, 십자가가 상징처럼 서 있다.

오늘따라 함께 걷는 일행들이 별로 눈에 뜨질 않는다. 얼굴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황홀한 햇빛, 혼자서 그 순간을 맞는다는게
황송하다. 카메라로 행복한 내 모습을 담아 봐야지.
보니 아니다. 흔들리고, 초점도 맞지 않고, 그래도 이게 어디야. 처음 찍어 본 쎌카치곤 표정은 잘 잡았네.
아주 흐뭇해하며 눈 아래로 펼쳐진 파노라마같은 풍광들을 감상한다. 혼자여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혼자라도
행복했던 것일까. 행복이란 단어가 너무 남발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외엔 표현할 어떤 단어도 나는 떠오르질 않는다.

넌, 어느 길로 갈거야. - 잘못된 선택







부르고스를 앞에 둔 마을, 빌라프리아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참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시간, 뉴욕에서 왔다는 패트릭이란 청년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면 그건 뉴욕이란다. 본인이 뉴욕커라는게 너무 자랑스럽단다.

그는 내게 부르고스를 가는 두 가지 길 중에 어떤 길을 갈 것이냐고 묻는다. 두 개의 길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나는

그냥 싸인을 따라 가겠노라 답을 했고, 그는 먼저 떠났다. 자동차 전용도로의 거대한 굉음 속에 빠지고 있을 때야

왜 그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 물었던 게 생각이 났다. 아마 다른 길은 숲과 들로 이어진 조금은 더 긴 길이 아니었을까?

나는 짧은 길을 원했던 건 아닌데. 돌고 돌아도 조용하고 예쁜 길이었다면 훨씬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었을텐데.

나차럼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들도 꽤 있다. 그것은 내게 위로였다. 그들조차 없었다면 내 속이 내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며

얼마나 부글거리며 끓었을까.
부르고스란 커다란 도시의 팻말이 보이고, 빌딩들이 눈 앞에 괴물처럼 버티고 나타나자 이 도시가 로마시대부터
이 땅에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유네스코에 등재된 수많은 유물과 문화재가 있다는 것도 내겐 아무 의미도 없이 다가왔다.

나는 앞에 가는 사람들을 놓치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죽어라고 속도를 내며 걷고 있었으니까.
놓치지 않고 도시 진입까지는 성공했지만 드디어 내 발가락 한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오고 있었다.
내 배낭은 알베르게가 아닌 어느 관공서 도서관에 맡겨진다고 했다. 이 큰 도시 어디로 가야 내 배낭의 도착한 곳을 찾지?

부르고스에서 만난 두명의 천사 - 경찰 아저씨와 택시기사 아저씨



부르고스엔 두명의 천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 들어 간 파출소의 경찰 아저씨, 경찰 아저씨가 안내해 태워 준 택시 기사 아저씨.

두 사람은 내가 전해준 쪽지를 들고, 배낭을 찾아줬고, 멋진 알베르게 앞까지 데려다 줬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3시 30분인데,

아직도 내가 들어 갈 빈 침대는 있단다. 엄청나게 큰 알베르게였고, 괘적한 환경이다. 식당, 세탁실, 샤워실은 완벽했고,

침실이 놓여있는 곳은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침실 앞까지 운행이 되고 있었다. 로그리뇨에서 나의 천사였던 친구의 아들도 이미 와 있었고,

이라체 가는 길목에서 만났던 독일인 두 학생은 내 바로 옆 침대였다.

역시 대 도시는 순례자들을 위한 모든 편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발의 통증, 따라 오느라 힘겨웠던 순간들,

친절한 찰 아저씨와 택시 기사 아저씨, 불편과 어려움, 감사와 충만한 기쁨이 교차되던 날,
자동차 전용도로를 들어서며부터 시작됐던 심리적인 전쟁, 전쟁이 없다면 평화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위대한 예술품







저녁 6시, 황홀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부르고스 대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순례길 마을에서 또는 도시에서 만나는 미사예절은 메일매일 특별한 은총이었다.

예절의 말들이야 세계공통이니, 신부님의 지금 말씀은 알아듣지 못해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대 성당의 한 옆 경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됐다는 부르고스 성당은 세계 아름다운 3대 성당중 하나라고 한다.
어둠이 내리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던 성당의 실루엣은 깊은 감동을 주던 위대한 예술품이었다.

사진 속엔 마음이 찍히질 않아.







혼자 사람들이 웅성대는 밤이 오는 거리를 걷는 일은 웬지 쓸쓸하다. 그래도 씩씩하게 나는 식당을 찾아 들고,
그곳에서 어제 만났던 불란서 아줌마를 만났다.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웠지만 말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대성당 주변의 상가와 집들에 전등이 켜 지기 시작하자 향수처럼 그리움이 밀려온다.
큰 도시의 번잡함, 그 속에 뒤엉키다 빠져 나온듯한 적막함, 또는 외로움,
혼자여서 충분히 얻은 것이 있으니, 혼자여서 받아야하는 불편이나 외로움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 

사진 한 컷을 찍었지만 그 안에 나의 그리움과 외로움은 찍혀 나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