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여 ! 안녕, 안녕.
따듯하고 안락했던 카타리나의 집, 영감님의 인사를 받으며 숙소 출발, 어젯밤 기분좋은 숙면으로 몸이 가볍다.
엷은 분홍빛 여명이 부르고스의 시가지를 밝힌다. 손이 곱을 정도로 날씨가 차갑다.
오늘부터 해발 900m 이상의 고원지대, 메세타 지역을 걷게 된다. 레옹까지 184km의 구간은 높낮이 없는 푸른 초원의 고원 지대를 걷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 구간의 삭막함과 지루함을 건너뛰며 버스로 이동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 지루함이 무엇인지, 무엇을 삭막함이라 말했던지 보고 느끼고 싶다. 난 걸을 것이다.
오늘따라 커피 한잔을 마실 마을이 쉽게 나타나질 않는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드디어 나타난 첫 번째 마을, 허름한 간이 카페가 보인다. 추운 날씨에 따듯한 걸 원했던지, 사람들이 북적인다.
커피와 간단한 아침 요기 거리를 받아 들고 겨우 의자 하나를 찾아 동석한다. 미국 보스톤에서 왔고,
퇴직한지 두 달이 됐고 이름은 딘이라고 앞에 앉은 사람은 자기 소개를 한다. 평생 일 한 곳에서 퇴직하며, 쉬고 싶기도 했지만 걸으며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걷노라고 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물어 온다.
그럴 때 나는 항상 대답이 궁색하다. 나를 보기 위해? 나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그런 목표는 애초에 내겐 없었노라고.
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고, 가벼워 지고 싶어 걷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너와 얘기하면 참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메세타 언덕을 걸으며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해가 비치는가하면 구름이 가득해지고,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돋기도 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드디어 메세타의 언덕길. 거센 바람 속에 온몸을 휘몰아 날려 버릴 기세다.
파란 밀밭은 거친 바람 속에 끝없이 요동치며 물결을 이룬다. 행여 그 바람에 모자라도 날아갈까, 옷섶이라도 열릴까,
꽁꽁 나를 묶으며 바람과 햇님의 이솝 우화가 생각이 난다. 역시 바람보다는 햇님이 우세인 건 맞나보다,
다행이 바람은 뒤에서 불어 와 내 몸을 앞으로 밀어 준다.
22km의 지점. 내 배낭이 도착해 있을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아마 이 곳은 더 이상 수용 할 수 없을 거라했다. 방법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내 앞의 두사람 선에서 입실은 끝났고, 원한다면 메트리스를 줄테니 강당에서 자란다. 쥬비리에서의 상황이 재현, 난감하다.
이 마을엔 이 알베르게가 유일하단다.
야고보 성인이 성모님을 만났다는 곳 - 카스트로헤리스
난 택시를 타고 17km를 건너 뛰어 야고보 성인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성모님을 만났다는 마을, 카스트로헤리스에 도착했다.
이 곳에도 알베르게는 전부 찼다고 한다. 25유로를 내고 문이 덜컹이며 고장난 호텔 방 하나를 구했다.
호텔 입구, 첫날 기차에서 만났던 대구에서 올라온 젊은 자매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오르니요스에서도 기차에서 만났던 부부를 봤었다. 자매는 발의 인대가 늘어나 이곳에서 이틀을 쉬고 있다고 했다.
자매와 마을 길을 산책하다 쥬비리에서 함께 민박을 했던 카타리나 부부를 만났다. 얼마나 반갑다 팔딱이던지, 참 귀여운 여자다.
산토도밍고에서 멋진 알베르게를 소개해줬던 데이빗도 길에서 만났고, 로스알코스부터 거의 같은 속도로 걷고 있는 독일인 두학생도 만났다. 까미노 길에서는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계속 할 것 같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싶다.
자매는 마을의 약방에 들러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과 인대에 바를 약을 산다. 기념품점도 가보잔다.
진열된 옷가지며 물건들은 돈 주고 갖고 가래도 싫다고 할 만큼 조악하고 거칠다.
등산 점퍼나 셔츠는 커다란 푸대 자루 같기도 하고, 이제는 무엇으로든 한국인이 부러워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야고보 성인이 성모님을 만났다는 장소가 분명 어디쯤인가는 있을 텐데, 찾을 길이 없다.
카스트로헤리스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보다는 규모도 크고, 역사의 흔적이 남을 만큼의 오래된 돌집들과 성당이 있는 마을이다.
숙소에 돌아오던 길, 보스톤에서 온 딘 아저씨를 만났다. 두 개의 마을을 걸어도 알베르게를 구할 수 없어 택시로 이곳까지 왔단다.
이 정도면 완전 알베르게의 전쟁이다. 쥬비리 이후 두 번째다.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오래 헤어졌던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다.
호텔 식당에 딘과 사이몬이 찾아 왔다. 동행한 이탈리아의 사이몬은 길에서 만난 친구라고 했다.
까미노는 짧은 시간에 가까운 친구가 되는 묘한 마력이 있는 길이다. 딘과 사이몬은 절친한 친구처럼 즐거운 자리를 만들고 있다.
달콤한 와인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내일 25.5km를, 우리는 12km를, 우연히 마주친 인연은 이 곳에서 끝.
'부엔 까미노'로 안녕을 대신하며 헤어졌다.
바람에 묻어 왔던 "엄마,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
거금을 주고 들어 온 이 호텔이 왜 이리 추울까? 난방이 고장이 났나? 잠이 오질 않는다.
일어나 옷을 있는대로 끼어 입고 잠을 청해 본다. 자꾸 몸이 떨려온다. 서울 떠난지 근 20여일만에 처음 만난 혼자만의 밤,
제대로 된 침대와 침구, 단독의 화장실과 샤워실,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낸 것 같다.
무엇엔가 하루 온종일 홀려 버린 것 같다. 맞아. 메세타의 거친 바람이 내 정신도 몸도 혼미하게 흩어 놓은 건지도 몰라. 꼭꼭 막아뒀던
방죽의 뚝이 터지듯, 묻어뒀던 아픔을 거친 바람은 헤집어 놓고, 나는 그 곳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지도 몰라.
병원의 수간호사의 말, ‘산사태가 일어 나듯, 그렇게 하루 아침에 우리의 몸이 무너져 내릴 수가 있어요.’
그렇게 딸 아이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었지.
바람 속에 묻어 왔던 “엄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라던 마지막 말, 바람은 질기게도 날 놓지 않았어.
그래도 하느님, 당신은 저와 함께 계시는 거 맞죠?
내일이면 다시 힘차게 일어 설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것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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