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열여덟번째 날

sunking 2013. 10. 12. 23:23

 

12km의 짧은 거리를 걷는 이유는







이테로 드 라 베가의 작은 알베르게에서 묵고 싶다는 꿈은 서울에서부터 갖고 온 것이었다.

수도원을 개조한 8명만이 수용 가능하다는 동화 같은 알베르게, 봉사자들은 도착한 순례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전기도 없이 촛불아래서

기도하고 봉사자들이 준비한 정갈한 식사가 제공 된다는 곳, 그곳을 만나기 위해 일정도 12km로 정했다.

어제 만난 대구 자매도 발이 물편해 며칠은 조금만 걷기로 했다며 내 일정에 동참키로 했다. 다만 배낭이 도착하는 곳과

그 곳이 일치하지 못함이 조금 걸리긴 했다.

메세타의 얼굴 - 바람, 흰구름과 먹구름, 찬란한 햇빛, 황토길, 진흙길.







어차피 12km를 걷는 여유있는 아침, 8시30분에 출발을 한다. 날씨는 아주 많이 변덕을 부렸고,

이틀 전 내린 비로 엉망진창이 된 길은 보통 불편하질 않다. 메세타 지역의 진 면목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카스트로헤리즈를 떠나며 만났던 언덕은 길고 긴 오르막이다. 꽤 높은 곳까지 오르막이던 길은 그 높이가 거의 1000m 고지에 으르렀다.

숨가쁜 오르막이다. 검은 구름이 몰려와 떠나 온 마을은 검은 먹구름이 순식간에 덮여 버린다. 비까지 뿌려 비옷까지 챙긴다.
숨가쁘게 올라 온 어느 아줌마, 내 비 옷이 예쁘단다.      
언덕에 오르자 비는 그치고, 어느새 구름 걷힌 카스트로헤리스 마을은 평온하게 아침을 맞 있었다. 넓은 평원과
지평선에 피어 오르던 뭉게구름, 가슴 속에 뭉클뭉클 구름따라 피어 오르던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줄기차게 따라오며 위로해 주겠노라 따라오던 새들의 노래도 끊겼다.
끝없이 이어지던 평원, 끊임없이 흐르며 모습을 바꾸는 지평선의 뭉게구름, 지팡이가 아니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던 곤죽이 된 진창길, 신발에 붙어 버려 키가 5cm 는 커져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수 많은 군더더기가 이처럼 붙어 있는 것은 아닐까.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 - 영국인 자원 봉사자 아저씨








진흙의 길이 거의 끝나가던 언덕위의 쉼터, 밝은 햇살과 상큼한 바람이 초 긴장의 순례자 발길을 쉬게 한다.
까미노 길에 취해, 퇴직후 이 길에서 봉사를 한다는 영국인 아저씨, 과일과 커피와 간단한 과자를 놓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

다음 사람들을 위해 얼마간의 기부를 받는다. 제공을 받는 사람도 봉사하는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의 봉헌이지 싶다.

나도 커피 한잔을 마시고, 언덕의 바람을 마신다.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메세타의 바람이다.

일정까지 바꾸게 했던 알베르게 - 지나치고 말다.











다시 바람 속의 밀밭을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밝은 햇빛에 걸어 놓은 빨래가 널려 있는 오래 된 건물하나,
수도원일까, 햇빛 밝은 푸른 풀밭이 딸려 있던 그 집이 자꾸만 내 눈길이 머문다. 수도원이었던 곳, 이제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조금 지났다. 문이 열리려면 2시가 되야 한단다. 몇 번을 뒤 돌아보며 그 곳을 떠났다.

폐허 같던 마을 이테오 드 라 베가 - 솜사탕 하얀 구름은 순식간에 비몰이 검은 구름으로







마을을 들어 가는 입구엔 수령이 꽤 오래 된 나무가 터널처럼 서 있다. 마을 입구의 돌다리, 다리 밑을 흐르던 맑은 시냇물,

다시 들려 오기 시작하는 많은 새들의 환영의 지저귐, 비를 품은 바람이 한번씩 불 때마다 나뭇잎 몸 부딪는 소리가 파도 소리를 닮았다.
배낭이 도착할 것이라 예약된 알메르게엔 내 배낭은 도착해 있지 않았고, 숙소를 지키는 아름다운 스페인 아가씨는 귀, 코, 입까지

번쩍이는 고리를 매달아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내 배낭은 시립 알베으게에 가서 찾아 왔다.

그것도 기다리기 몇시간 만에. 숙소의 아가씬 담배를 입에서 떼지 못하는 체인스모커, 그래도 할 일은 열심히 해내고 있다.
숙소는 조용했지만 아주 많이 추웠다. 덜덜 떨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안쓰러웠던지, 주인 아저씨 뭔가를 갖고 와 조금 마셔 보란다.

스페인의 전통주, 도수가 40도는 된다고 한다. 한모금 마시니 몸이 조금 훈훈해 지는 것 같다.

 대구의 자매와 나누어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입구에 알베르게에 대한 환상만 없었더라도 절대로 묵고 싶지 않은 곳,

알베르게의 열악함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시체처럼 무겁고 쇄락한, 내가 만난 자금까지의 순례길 마을 중 최악이었던 가 싶다.

도착했을 때부터 저녁내내 비까지 내리며 우울하게 한다.
맞아, 어떻게 아름답고, 기쁜 날들만 있겠어. 8명만 들어 갈 수 있다는 그 곳을 원했던 건 어쩌면 내 욕심이었을지도 몰라.

하느님은 참 여러 가지로 안배를 해 주시려는가보다.  두명이 오붓하게 잘 수 있는 방을 만난 것 만으로도 감사 하기로 하자.

대구의 자매 덕분에 부르고스에서 시작한 내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물집은 완벽하게 치료를 끝냈다.

겁먹었던 것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통증없이 물집이 따졌다.
내일부턴 걸림 없이 걷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