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길은 치유의 길
함께 하는 자매의 발이 아직도 불편해 다리를 많이 절룩인다. 그럼에도 속도는 항상 나보다 빠르다.
날씨는 청명하다. 어젯밤 밤새 내리고 그친 비로 하늘은 더욱 청명해졌고 바람은
차갑다. 손이 이리도 곱은 것으로 봐서 2-3도의 기온은 되지 싶다. 끝없이 이어지던 푸른 밀밭과 바람과 햇빛,
하지만 이 청명함과 싸늘함이 나는 너무 좋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이 순간의 감사와 함께 버무린다.
연일 찾아 오던 꿈 속의 친구들, 그리고 엄마, 꿈 속에서의 아픔과 아쉬움, 그 모든 것을 꺼내어 나는 이 길에서
주님께 봉헌 할 것이다. 내게 아픔을 줬지만 단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않던 사람들,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남아 줬던 고마운 사람들.
외롭고 슬펐던 엄마, 하지만 더 없이 선했던 사람.
내가 갖고 있는 품성에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건 엄마에게 받은 것들. 하지만 자식 중 가장 많이 엄마를 닮았다는 나,
슬픔과 외로움의 감성까지 닮을 줄이야.
흘러 지나고 나면 고만인것을 훌훌 털지 못하고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 움켜쥐고 있는 어리석음.
이 바람의 길에서 원없이 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이젠 엄마의 외로웠던 마음까지 내가 다 살고 갈게.
내 것은 물론 엄마의 가슴 속 한까지 하얀 재가 될 때까지,
이 길에서 다 태우고 갈 것이니까. 바람 속에 다 날려 버리고 갈 거야.
엄마는 그 곳 세상에서 기쁨만 가득하세요."
햇빛과 바람과 사랑이 가득한 알베르게 - Boadia del Camino
이테로 드 라 베가에서 보아디야 델 까미노까지 8km. 엄마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얘기하고
걷다보니 다음 마을 성당 앞까지 왔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성당은 견고하고, 웅장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
성당이 주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마을이 갖는 경건함이 몸으로 느껴 지던 곳이었다. 성당 종탑엔 황새가 살고
있는 듯, 어미 황새와 새끼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성당 바로 앞엔 단층의 예쁜 바를 갖고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
자연스레 놓여져 있던 정원석, 담과 지붕에 얹어 놓은 기와, 어느 시골 집 마당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햇빛 밝은 마당 탁자에 커피 한잔과 간단한 먹을 거리를 들고 앉아 햇빛과 바람 속에 여유로움을 즐긴다. 저 쪽
탁자에 앉아 있는 한쌍의 젊은이들의 모습니 예사롭지가 않다. 젊은 남자와 그보다는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가 심각하게 얘길 주고 받는 것 같다. 젊은 남자의 애절한 표정과 차가운 여자의 표정, 나는 관객이 되어
어쩌면 지루하고 뻔한 멜로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 둘에게 조명처럼 비춰지던 햇빛은 왜 그리
화사했을까. 드디어 남자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고. 여자는 가볍게 허그를 하며 등을 두드려주고는 자리에 앉는다.
남자가 떠난 후 얼마를 생각에 잠겨있던 있던 여자도 떠났다. 젊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고 달콤한 아픔이란 걸
얼만큼 세월이 흘러야 그들은 알 수 있을까.
정원이 예뻐 사진을 찍는다. 주인 아저씨, 나와 몇컷을 찍어준다.
만약, 또다시 이 길을 걸을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찾아 와 묵고 싶은 정겨운 곳,
Boadillo del Camino 알베르게.
가슴으로 느껴 봐.
포푸라 였을까?
마을을 벗어나며 만났던 나무 숲 길. 자디잔 나뭇잎이 바람에 몸 부딪히며 내던 소리는 감미로운 노래
소리였다. 새들과 바람과 나뭇잎이 어우러진 잔잔한 교향곡, 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만들어 졌는지,
오감이 아주 작은 세포까지 활짝 열리는 것 같다.
‘잘 들어 봐,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소리와 이 멋진 모습을 다 담아 봐, 하늘의 흰구름과 나뭇잎의 부드러운 포옹을
가슴으로 느껴 봐.’
누구였더라. 내게 이런 속삭임을 끊임없이 들려 주던 그 음성이.
18C 만들어진 카스티아 운하를 따라
프로미스타를 들어 가던 입구는 잘 계획된 운하를 따라 걷는 물길 이다, 한 여름이면 나무와 운하변의 습기로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는 길, 하지만 지금은 5월, 가장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맑고 푸른 날씨가 한 몫을 하기도
했지만 , 프로미스타는 기분좋은 느낌을 주던 깨끗한 마을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는
성 마르틴 성당, 예약했던 알베르게가 바로 그 옆에 있다. 잔디가 곱게 깔린 앞 마당과 뒤 뜰, 햇빛 밝은 곳에서
며칠 밀린 빨래를 해서 널어 놓는다.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은 마당 햇빛 아래 의자에 앉아 담소와 책읽기로 여유를
부린다.
급하게, 욕심내지 않고 걸으니 여유 있어 좋다.
TV를 틀어 놓고,순하디 순한 뚱뚱이 개와 함께.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는 초등 상급정도의 주인 아들,
손님이 들어가도 아랑 곳 하지 않는다. 엄마가 속 좀 상하겠다. 하지만 엄마도 아이도 느긋하기만하다.
이럴 때 우리 엄마들 같았다면?
빈둥대며 논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을 만큼 오후가 느긋하고 편안하다.
오래된 영화까지 본다 ‘Out of Africa’ 스페인어로 더빙이 되어 분위기 있던 두 배우들의 이미지가 조금 희석되긴 했지만.
한 때 나를 뒤 흔들어 놓았던 영화의 주제음악, 감미로왔던 두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의 얘기들을 이 곳에서 만나다니.
까미노 길은 내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자전거로 순례를 하고 있는 차람의 젊은이가 들어 온다. 작고 외소하고, 예쁘게 생긴 청년은 휴게실에서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다. 허락과 함께 풀어 놓은 커다란 비닐봉지 속엔 50cm는 됨직한 바게트빵,
쨈과 마가린, 하몽이라 부르는 훈제 돼지고기 토마토,양파, 서양게자, 물 2 L 한병. 음식재료의 준비가 끝나자 그는
주위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정성스레 빵을 자르고 버터와 마가린을 바르고, 토마토와 양파, 훈제 돼고기를
넣어 먹기 시작한다. 만드는 순간도 그랬지만 먹는 것을 얼마나 즐기고 있었던지,
음식을 만지던 그 손 놀림이 얼마나 정성스럽던지, 신기해 눈 한번 띠지 않고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보일리도 없다.
배가 많이 고팠었구나 라던 처음의 내 생각은, 저 정도면 먹는 것도 예술이구나 싶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는 그 말은 바로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열심히 만들 때까지는 예술적인 손 놀림을, 한 입 베물고 씹을
때는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하고 있던 모습, 먹는 것도 명상이 되겠구나 싶다.
그 작은 체구에, 그 많은 양을 다 먹고, 물 한병도 다 마신다.
오늘은 볼거리가 풍성한 날인 것 같다.
보아디아에서 관람한 애닳은 이별의 장면, 20년 전 어느날로 데려다 준 직직대며 돌아가던 낡은 화면,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던 청년. 삶의 다양함,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성찬에 와 줘서 고맙다.
숙소에서 준비하는 순례자 식사는 저녁 7시, 와인까지 한잔 곁들여 식사를 한다.
저녁 8시, 미사 참례. 와인은 마셨지만, 그래도 오고 싶었습니다.
잘왔다. 어서 오렴. 내가 차려 놓은 이 성찬에 와 줘서 고맙다.
그러실거야.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 내가 기대고 싶은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실거야.
까미노 길의 성당에서는 미사후 언제나 모든 순례자들을 위한 기도를 해 주신다. 그 기도가 우리의 길을 밝혀 주시고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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