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은 밤도 지나갔다. 거의 뜬 눈으로 세우다 싶이 했던 밤, 언제 잠이 들었던지 눈을 뜨니 새벽이다.
아침 6시 숙소에서 나왔다. 잠을 설쳐선지 머리는 띵하다. 열려있는 카페에 커피 한잔을 마신다. 수첩을 꺼내 오늘 걸어야 하는 구간에 만나는 마을 이름을 확인하고, 걷는 시간을 계산해본다. 8시간 정도면 내 배낭이 도착해 있을 산토도밍고에 도착할 것이다. 3시에서 4시 사이. 천천히 걷자. 서두르지 말자.
7시 출발, 상큼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걷는 맛이 날이 더해질수록 좋아진다. 아침 기온은 장갑을 꼈음에도
손이 시리다. 12시가 되기 전엔 손이 곱아 글씨를 쓸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이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는 게 좋다.
구름이 낀 하늘, 특징 없이 밋밋한 끝없이 이어지던 푸른 밀밭 길, 오후가 되며 날씨가 청명하게 바뀐다.
어제 크리덴셜 카드를 맡기며 부탁한 형제에게 문자가 왔다. 도착했고, 내 몫의 자리까지 예약이 됐노라고.
이제 숙소 걱정은 하나 덜었으니 여유를 부리며 들어가도 되겠다.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맑은 하늘, 아름다운 자연 속에 기쁨이 충만해 걷는 피로를 잊다가도 목적지에 다다르는 마을 입구 또는 도시로 접어드노라면, 내가 지쳐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거리의 자동차와 시내의 상점들 간판이 보이며, 24km의 피로가 몰려온다. 약속된 알베르게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자 양떼를 함께 감상하던 데이빗이 사람들 속에서 나를 부른다.
“알베르게 찾는거니?”
“아니, 이미 예약이 되 있어 그곳을 찾아 가는 길이야.”
“여기, 알베르게가 너무 훌륭해. 네가 선택할 것이지만 아마 네가 간다는 곳보다 훨씬 좋을 걸. 들어 와 봐.”
나는 줄레줄레 데이빗을 따라 들어갔고, 그곳은 4층의 최신식 건물로, 지금까지 거쳤던 어느 곳보다도 밝고 좋았다. 문 앞에서 안내를 하던 두명의 봉사자는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듯 반긴다. 키가 조그만 스페인 봉사자 아저씨는 반갑다며 뛰어와 허그를 한다.
어쩌지? 내 크리덴셜카드는 다른 곳에 있고, 그곳엔 이미 예약이 되 있으니, 이럴 땐 몸이 두 개면 좋겠다. 어서 크리덴셜카드를 갖고 오란다. 둘러댄 것이 내 배낭에 들어 있는데, 이제부터 배낭을
찾으러 가야한다고. 배낭을 찾아 오겠다하자. 아저씨. 내 손을 끌고 배달된 배낭 앞에 가서 찾아보란다. 맙시사, 내 배낭은 이 알베르게에 도착해 있었다. 배낭 깊게 넣어서 내가 저쪽에 가서
찾겠다고 벽쪽 벤치로 배낭을 옮기려하자
아, 염려마. 천천히 찾아. 내가 도와줄게.
내 배낭을 덥석 뺏어 들고 벤치에 가서 앉는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할 수 없지. 내가 옆 알베르게에 친구가 있거든. 잠간 갔다 올게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진땀이 날 정도로 난 거짓말을 했던가보다. 예약된 곳을 취소하고 이 곳으로 옮긴다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쩔쩔매며 거짓말을 했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형제들이 묵는 숙소 수도원이 나타났고,
난 미안함에 사과를 하고 크리덴셜카드를 되돌려 받았다. 지불한 숙소비는 환불이 안되 기부금으로
내고 일단락. 해서 쾌적하고 깨끗한 최신식의 알베르게로 자리를 옮겼다. 알베르게에 숙박비는 얼마를 내도 좋은 기부제란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5-10 유로를 낸다. 봉사자 아저씨는 가장 좋은 방을 주겠다며 4층에 위치한 침대를 배정해 준다. 2-3분 거리엔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는 대성당이
있고,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음식도 준다며 설명을 해 준다.
숙소엔 인터넷 시설은 물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커다란 주방과 식당, 순례자들을 위한 쾌적하고
넓은 휴게실, 세탁실, 등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있다. 안내실 옆 한쪽엔 발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의료봉사까지 갖춘 곳이었다. 두명의 봉사자중 한 분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던 분이었고,
내일 내가 갈 알베르게에 예약까지 해줬다.
4층 방에 올라가 짐을 정리하는데 한 아저씨가 “너도 코를 고니?”라고 묻는다. 의아해 바라보는 내게
“이 방은 코골이를 위한 방인데, 너도 코골이냐고?” 기가막혀. 어제 밤새 코콜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고 왔는데, 뭐라구? 이게 코골이를 위한 방이라고? 제일 좋은 방을 주겠다며 내 배낭을 대신
들고 올라온 이 스페인 아저씨는 도무지 뭐야? 나는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4층 방이 코골이를
위한 방이라면서요?” 식식대는 나를 보며 아저씨, 무슨 말이냔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아저씨 큰
소리로 웃으며, 그건 그 사람이 잘 못 안 것이고, 그 방은 이곳에서 가장 조용하고 빛이 밝은 방이라
네게 정해줬노라고 손짓 발짓을 하며 설명을 해 준다. 결국 내 옆 침대의 어느 아줌마가 내게 쓰지 않은 귀마게가 있다며 한 벌을 줬다. 코골이가 있던 어떤 방해물이 있던 불평없이 무심했던 그들을 보며 갑자기 부끄러웠다. 코를 고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소리를 차단할 아무런 준비 없던 나를 탓했어야했다.
오후가 넘어가며 햇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오후 5시,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욱 강한 햇살을 받으며
오랜만에 나도 슈퍼마켓을 찾았다. 묻고 또 물으며 찾은 슈퍼마켓, 몇가지의 과일과 빵, 요구르트등
저녁 준비로 장보기를 했다. 이럴 때 함께 걷는 일행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여유롭게 시내를
걷고, 거리 구경을 한다. 이런 여유를 부려 보기가 얼마 만인가.
7시 15분 베네딕트 수도원의 예절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을 갔다. 숙소에서 몇분 거리의 산토도밍고
대성당을 가는 길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아마 베네딕트 수도원에서의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줄이 아니었던지? 그레고리안 성가로 부르는 성무일도의 기도가 끝나고 8시 미사를 기다리던 시간,
광장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꽤나 소란 스럽다.
햇빛은 여전히 따갑게 비춘다.
이 마을은 도밍고 성인이 순례자들을 위해 온갖 편의 시설과 지반을 다져 놓은 곳이라고 한다.
순례자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도밍고 성인의 수 많은 기적을 아직도 전설처럼 갖고 있으며
성인을 기리고 있다. 죽었던 닭이 무고한 젊은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아서 움직였다는 14c의
전설은 그래서 이 마을의 상징처럼 되 있다. 이 곳 대성당 성인의 무덤 위쪽에는 살아있는
닭을 두는 방이 있다는데, 그 곳에서 나는 닭의 울음은 들을 수가 없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그 닭을 보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하기도 한단다.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고딕양식의 성당은 마을의 긴 역사를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내일이 이 마을의 수호천사인 도밍고 성인의 축일이란다. 축제를 지내기 위해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드는 가 보다. 갑자기 요란한 음악 소리 속에 이상하게 귀에 익은 단어가
들리는 듯 했다. “분명히 한국언데? 언니? 오빠? 잘못들었나?” 나는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은 성당 뒤쪽에 있었고,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겨운 노래에 온 몸을
흔들고 있다. ‘강남스타일’ 싸이의 노래가 흥겹게 흘러 나온다. 남녀노소는 물론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을 타고 있는 꼬마 아들까지 리듬에 맞춰 온 몸을 흔든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그것도 어느 시골의 한 광장에서 대한민국 싸이의 노래가 흘러
나오다니. 그 노래가 이 모든 사람들을 흥분과 즐거움의 도가니로 바꿔놓다니. 기쁘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미사 예절의 시간 내내 이 자리에 앉아 있게 해 주심에, 내 나라를 다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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