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베품과 나눔을 만난 아침
비 안개에 쌓인 론세스발레스의 아침
아침 6시부터 직원이 나와 있을 것이니 배낭은 그때 부칠 수 있다 했는데. 7시 30분이 지나도 직원은 나오지 않는다.
짐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젊은 미국 여자가 맡아서 처리해 줄 테니 떠나라고 한다.
자기는 버스를 타고 갈 것인데 버스는 9시나 되야 출발한단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나를 보며 알리는 아무래도 미심쩍은지 (덤벙대는 나와는 달리 내 룸메이트 알리는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음)
뭔가를 확인하고 체크 한다. 미국여자의 연락처까지 받아 놓는다.
나 같으면 기분이 언잖아서라도 그런 친절은 베플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웃으며 염려하지 말고 출발하란다.
몇 번의 기회를 통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최선을 다해 도와 주는 것을 보며 나의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이 생활 속에 녹아 있구나 싶다.
아마도 나는 이 길에서 크고 작은 많은 천사들을 만날 것 같다.
택배비용과, 우리가 도착하는 숙소의 주소를 적은 봉투를 배낭에 매달아 놓고 출발했다.
생장에서 26km후방인데, 아마 불란서쪽의 거리는 계산되지 않은 것 같다.
갓 구워낸 크로아상과 부드러운 커피로 행복한 아침
오늘 하루도 비로 시작한다. 가랑비가 안개처럼 내린다. 비안개가 자욱한 길을 따라 출발한 시간 8시.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가 22km. 너무 출발이 늦은 것 같다.
싱그러운 숲길로 들어서자 그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이 곧 명상이다.
귓가에 머무는 새들의 지저귐은 명상 음악이 되고, 내 몸 위로 떨어지는 초록의 빗물로 몸과 마음, 영혼까지도 말끔히 씻어낸다.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움까지 더해 걷고 있는 길고 긴 길의 걸음이 날아갈듯 가볍다.
비안개 속에 펼쳐진 푸른 초원이 신비스럽다. 꿈 길을 걷는 것 같다.
그 초원위에 노란 화살표는 아주 작은 오솔길로 이어지고, 숲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첫 번째 도착한 예쁜 마을, 백설공주와 요정들이 뛰놀 것 같은 그림 같은 정경이 평화롭다.
예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과 갓 구워낸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먹는다.
빵이 주던 달콤함과 따듯함, 커피가 주던 부드러움과 그윽한 향, 왜 수많은 작가, 시인들이 그 순간들을 행복의 느낌으로 묘사했던지
알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며, 빵굽는 고소한 버터향을 맡으며 수많은 행복했던 기억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 오른다.
동화 속 같은 마을
숲길이 끝나고 마을로 들어서면 성당이 나온다. 문이 열려있는 성당에 들어가 문안을 드리고
걸음이 무거워 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동화 같은 마을을 벗어나며 노란 화살표는 오르막 산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거친 길은 아니었지만 숨이 턱에 닿을 만큼.
오르막은 힘에 겹다. 구불거리는 숲길을 지나고, 평원같은 목초지를 지나면 다시 숲길이 시작이다.
까미노 길에서 세상을 떠난 순례자들의 묘비, 들껓 하나라도 올려 놓으며 그들을 기린다.
순례자 길의 표시 -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문양.
간간히 만나게 되는 세상을 떠난 순례자의 비석도 까미노 길의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힘겨우면 힘겨울수록 마음은 조금씩 비워지고, 가벼워진다. 그 숲길 어디쯤일까.
잘 걷지 못하고 힘겨워 하는 한국 아가씨를 만났다. 피레네 산맥의 나포레옹 길을 걷다가 무리해서 관절이 상한 것이란다.
혼자서 왔다던 예쁜 아가씨, 괜찮겠냐니까 염려하지 말고 가란다. 뒤에 두고 오며 마음에 계속 걸린다.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주비리로 내려가던 하산 길은 엉망이다.
그사이 내린 비로 길은 곤죽이 되어 신발 밑창에 쌓여가고, 숲 속 오솔길, 다 스미지 못한 빗물이 고여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신발 가득 곤죽 같은 진흙을 묻히고, 고인 물에 점벙거리며 천신만고 끝에 오후 4시 주비리 도착.
크고 넓은 계곡 위의 돌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간다.
주비리에 도착하는 룸메이트 알리
천사의 도움으로 난민수용소에서 멋진 별장
론세스발레스에서 떠난 대다수의 순례자들의 기착점인가보다.
배낭이 도착해 있는 시립 알베르게는 이미 수용인원 초과. 괜찮다면 강당에서 잘 수 있다며 2유로만 내란다.
넓은 강당 시멘트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리들을 잡은 사람도 꽤 있었다.
(발카노스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던 영국 여인도 만났다,) 난민수용소 같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그 메트리스 조차 없는 맨 바닥에서 자는 거란다. 맙시사.
비박등산을 떠난 산악인도 아니고, 한심스레 앉아 있자 알리가(룸메이트 호주인) 나가서 다른 곳을 찾아보잖다.
우리는 이미 지쳐 있어 다음 마을로 떠날 수도 없고, 민영 알베르게에서 호텔까지 그야말로 만원사례.
이곳에서 다시 천사가 등장. 호텔비용이긴 했지만 민박집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판토마임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주비리 외곽 고급주택가의 민박집, 주인 아저씨는 안소니 퀴을 닮았다.
민박집은 산언덕에 있는, 별장같이 멋진 집이다.
단 한마디의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스페인아저씨와 영어 밖에 모르는 호주인 알리, 그 중간에 난 훌륭한 통역을 했다.
완전히 눈짓과 손짓 그리고 몸짓으로. 민박집엔 우리 둘 외에도 세 명의 이탈리아 순례자가 있다.
세 개의 언어가 제 각각 자기의 말을 했지만, 식당도 갈 수 있었고, 다음날 배낭을 부치는 데에도 지장이 없었고,
침대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거실 소파에서 둘이 자라는 것을 알아 듣는 데도 도무지 불편함이 없었다.
알리보다는 내가 훨씬 소통이 잘됐다.
왜냐하면 난 망가질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알리가 깔깔거리며 묻는다.
네가 통역하니?라고. 안소니퀸을 닮은 민박집 아저씨 마크는 훌륭히 우리의 의사를 전달 받았고 우리의 필요를 수행했다.
난민수용소의 처량한 신세가 될 번 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주비리 최고급의 별장지대에서 럭셔리한 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물론 그에 상응한 비용이 들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구나를 체험한 멋진 하루였다.
아쉬움이 있다면 어차피 순례길의 이런저런 체험을 다 해보고 싶었는데, 매트리스만 있었다면 강당에서 옹크리고 자고도 싶었는데.
오늘도 두 명의 천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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