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처럼 은은한 주부리의 아침
민박집 아저씨가 준비한 비스켓과 커피, 우유로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선 시간 6시30분.
아침 노을이 수채화처럼 번지던 주비리 하늘, 언덕 위에서 바라다 보이던 평원은 고요한 적막 속에 쌓여있고, 지저기는 새 소리로
오늘 하루도 설렌다.
“잘 잤어? 멋진 민박집이었지? 민박집 아저씨도 순박했고. 자 오늘 하루도 부엔까미노.”
“고맙다. 잘 걸어갈게. 너도 나와 함께 가는거지?”
새들과 이렇게 아침인사로 오늘 팜프로나를 향한 20km를 걸어가는 거다.
까미노 길의 얼굴을 엿보다
주비리로 들어서며 부터 기후가 달라졌다. 춥고 을스년스러운 날씨에서 햇살이 내리 꼿히듯 강렬한 빛으로 바뀐다.
햇빛이 뜨겁긴 했지만 걷는 길 내내 만났던 들꽃들과 새들의 지저귐, 그늘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으로 햇빛에 지쳐가는 몸을 쓰다듬고
위로해줬다. 오솔길과 숲길, 끝없이 펼쳐지던 유채꽃, 작은 마가렛과 수평선 끝으로 이어지던 푸른 밀밭, 하늘에 피어나던 하얀 뭉게구름,
까미노 길의 진 면목을 조금씩 맛보는 것 같아 기쁘다.
15-16세기의 마을에서 하룻밤을 - 신 구가 어우러진 도시.
다음 마을, 또는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계곡 또는 수로 위에 견고한 돌다리가 있다.
하늘 빛이 유난히 아름답던 날, 저 곳 어느 곳이 우리들의 숙소
팜플로나는 신, 구가 어우러진 도시다. 햇빛에 지쳐갈 무렵 나타난 거대한 성곽을 지나 15-6세기의 구시가지에 알베르게는 있었다.
몇 백년된 돌집, 길은 좁고 건물들은 낡았지만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낙후한 시설이었고,
수용인원도 100명이 넘는 미로 같은 건물이다. 하지만 하룻밤, 내 지친 몸을 의탁할 공간 하나를 얻었다는 것 (그것도 저렴한 7유로로)
순례자들은 즐겁다. 샤워와 빨래, 그리고 시가지의 산책,
룸메이트, 가방을 사야한다며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는 내가 신촌 현대백화점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만큼 상품에서 진열까지 흡사. 보고 또 보는 쇼핑의 꼼꼼함에 그만 짜증이 난다.
대충 살 것이지 (이건 코리안 김미자스타일 - 뭐 물건이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야)
팜플로나 ‘카스티요’ 광장이 역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으론 고풍스런 구 시가지.
우리의 숙소도 그곳 어딘가에 있다. 작열하는 눈부신 태양, 저 곳 어느 카페에서 맥주한잔 하며 쉬고 싶다.
내 룸메이트는 뭔가를 쇼핑하고 싶어 한다. 뭘 살게 있다고. 하기사 7명의 아이와 14명의 손자손녀가 있는 양반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서서이 헤어져야하는 이유들이 생기는 것 같다. 뜨거운 구시가지 좁은 골목골목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나와 시끌 법석이다.
젊음이 저런 것인가? 태양의 나라와 젊음은 뭔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성당을 찾아 미사를 올릴 수 있었다. 숲길을 벗어나 마을이 나타날 때면 하늘 높이 올린 종탑으로 마을이 있음을 상징하곤 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성당은 있다.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전이었지만 일정과는 맞지 않았었다.
단 한 마디도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의 예절이었지만 그 곳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물결처럼 가슴에 파문이 인다.
이곳의 성모신심은 특별한 것 같다. 5월이 성모님의 달이긴 하지만 미사 전 묵주기도가 올려 졌고, 미사가 끝난 후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에 성모동상을 모시고 성당을 순회하는 의식이 거행됐다.
신자들은 그 마차 뒤를 따르는 행렬을 만들고 있다. 얼굴이 낯익은 순례자들을 성당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꽤 늦게까지 예절은 진행됐다. 숙소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잠 속에 빠져있다. 순례길 에서 올린 첫 미사여서 그랬을까,
긴 여운이 남아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 오후 팜플로나를 도착했을 때 많이 지졌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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