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 문을 열자 앞에 보이던 빗속의 능선
새벽녘,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까지 기침에 시달리는 꼬마 때문에 잠을 설친 탓일까. 깨긴 했지만 자꾸만 눈이 감긴다.
오늘 도착 예정지는 (내 배낭은 오늘 Roncesvaux 알베르게에서 날 기다릴 것이다) 14km후방.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땅에서 맞는 첫 번째의 큰 마을로 중세에서부터 순례자들에게 휴식처로 자리 잡은 곳이다.
고흐가 만났으면 화판들고 나왔을 법한, 운치 만점의 돌집
아침 7시 30분,
걷는 구간이 짧기 때문일까, 쉽게 떠날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우의와 우의바지, 방수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에게 까미노 길을 안내 받는다. 노란 화살표도 없고, 가리비 표시도 없는 자동차 길이다.
이거, 까미노길 맞아?라는 의문이 생기긴 했지만 이 길로 따라가면 된다던 현지인의 말씀을 믿기로 하고,
흠뻑 비에 젖은 숲이 싱그럽다. 계곡의 물소리로 미루어 나는 지금 깊은 산 속을 걷고 있는거다.
어디서 그리 모여 나왔을까, 제각기 다른 새들의 노래 소리가 온 대지에 가득하다. '사람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어 있다'는 말이 실감나던 길, 불안이 밀려올 땐, 자동차의 속도가 그리도 귀에 거슬렸는데, 계곡의 물소리, 새 소리,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동차의 소음은 자연의 소리에 빠져들기에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시멘트 길 위에 노란 화살표가 나온다. 그 화살표는 숲 속의 오솔길로, 넘쳐흐르는 계곡의 길로 안내한다.
숲은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맞아 주었고, 숲의 향기는 달콤했다. 신록이 주는 생기, 싱그러움,
그것은 모든 죽어가는 생명에게 숨을 불어 넣어 삶의 활력을, 희망을 찾아준다.
뒤에도 앞에도 보이지 않는 일행, 나만의 숨소리와 나의 발자국 소리, 모자 위로 비옷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
자연 속으로 녹아드는 절대의 순간. 발걸음이 둥둥 가벼워진다.
보이지 않던 순례자 일행들이 어느새 앞 서거니 뒷 서거니 나를 스치며 걸어 간다.
스칠 때마다 반가운 인사 “부엔 까미노.” 또는 스페인인들은 간단하게 “올라.”
아마 즐거운 순례를! 또는 간단하게 “안녕.”이란 인사말일 것이다.
고도 1100m에 이르는 곳을 오르고 내리며, 노란 화살표를 따라, 비속으로, 비안개 속으로, 고원의 초지 속으로 그렇게 14km 걸으며
산길을 내려서자 중후한 석조의 성 같은 건물이 우리를 맞는다.
중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시설이었다는 그 건물은 이제는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로 운영이 되고, 수용인원이 100명이 넘는
곳이라고 했다. 어제 머물렀던 알베르게가 산골 마을의 가정집 같은 작은 휴식처였다면 드디어 순례길 알베르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곳이었지만 샤워시설이나 그 밖의 시설들도 정돈되고 청결했다.
기차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도 만났고, 모두 하나씩 침대를 배정받아 하룻밤의 휴식을 취한다.
다소곳이 숙소 앞에 놓여있던 나의 배낭, 주인 없이 이틀 동안 얼마나 당황했을까.
“미안해. 변변치 않은 주인을 만나 고생했지?”
비에 젖어 도착한 알베르게- 벽난로의 온기가 추위를 녹여준다.
숙소 1층의 넓은 강당 같은 식당 테이블엔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약식으로나마 자기소개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앞으로의 즐거운 순례 길을 위해 건배를 한다.
어제부터 나와 동행이 되고 있는 호주의 아줌마 알리와도 다시 한 번. 우리의 멋진 길을 위해서 건배.
이 식당의 메뉴는 하나. ‘순례자 정식’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으로 격식 갖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이제 서서히 이 길에 맞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 보다.
즐거운 식사시간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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