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디아고 순례길-첫째날

sunking 2013. 7. 29. 09:53

 

산디아고 순례길

이 글은 서강대학교 64학번인 김미자님이 지난 5월 산티아고를 다녀와 기록으로 남긴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계속 연재하면서 내게 메일로 보내줄 글인데 내용도 좋고 글도 잘 쓰는 분이라 스크랩하여 두고 두고 읽어 볼 예정이다. 


글을 시작하며

"무엇을 찾기 위해 이 영화를 찍으려 하십니까."

최근 본 영화에서의 큰 스님이 한 질문이었다. 비구니스님들의 생활을 일년여에 걸쳐 다큐를 찍은 어느 감독에게 던졌던 화두같은 일성.

그러나 감독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났던 많은 순례자들이 던졌던 질문,

 

"왜 이 길을 걸으려고 했니?"

"너는 이 길을 걸으며 무엇을 찾고 있니?"

 

그 질문은 떠나기 전부터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물음이기도 했다.

왜 나는 그 길을 걷고 싶어 했을까. 왜 그토록 오래동안 내 온 마음을 설레게 했을까?

나 스스로에게, 또 물음을 던져온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오직 하나.....그냥 걷고 싶어서.

어쩌면 걷고 싶다는 가장 일차적인 욕망 외에 이길을 갈망 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가슴 저 밑에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갈증이 일었다.

나무가 꽃이 풀이 가믐에 타들어 가듯 그렇게 목이 말라왔다. 다 타버리기 전에, 까만 숯검댕이로 남기 전에 목을 축이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어쩌면 샘물을 찾아 다시 살아 날 것 같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나, 산티아고 다녀왔어요.'라는 말만하면 쫒아가 바라보곤 했다.

그 곳에 발을 담그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신선한 바람 같았으니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에 '떠나는 거야. 할 수 있을거야'라며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책 한 두 권의 정보만을 들고,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됩니다." 라는 그 말 한마디만 붙들고.

 

그렇게 호기롭게, 자신만만하게 내렸던 결정이지만 떠나기 며칠 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렵고, 힘든 난관이 내 인생 길에 맞닥뜨릴 때도, 하룻밤 자고나면 씻은 듯 잊어버리곤 했는데, 혼자 떠난다는 것도 두렵고,

뭔가 가닥이 잘 잡히지는 않았지만 슬슬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

서울에서 나리따 공항을 경유, 파리의 드골공항, 몽빠르나스 역, 민박집, 피레네 산맥아래의 생쟝드피드에서 출발한 산티아고의 39일 일정,

다시 파리로 그리고 서울로. 서울 4월28일 아침, 그리고 6월14일 오후 12시 30분 인천공항 도착.

 

길고 긴 여행을 마치며 '나는 왜 그 길을 걸었나,

나는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났나'를 생각해본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추스르던 좌충우돌의 날들, 그래서 신선함과 재미가 더해졌던 시간들,

하루하루가 축복이고 선물 같던 날들, 나의 오감이 기쁨에 충만했던 시간들을 기억해보며 다시 한 번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느꼈느냐고....

 


 

몽파르나스역의 아침
새벽 5시, 서너시간의 선잠에서 눈을 떴다.
파리 민박집, 행여 옆 사람들이 깰까, 조심스레 배낭을 챙겨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

잠을 설치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날도 밝지 않은 그 새벽에  몽파르나스 역을 찾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1층에 어느 아저씨가 짐을 챙기고 있었고, 그분도 산티아고를 간다고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물론 입 속에서)

역은 대낮처럼 밝은 전등 불 속에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앉아 있다.
떠남이란 언제나 설렘과 그리움을 동반하며 다가온다. 조금 아까 까지도 남아있던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긴 시간 꿈꿔오던 나의 소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열기처럼 흥분이 인다.

뜨거운 커피 두잔을 주문해, 그 새벽 나를 안심하게 해 준답례로 건넨다. 누군가와 무엇을 나눈다는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전광판에 올라온 수 많은 도시의 이름과 개찰구의 번호, 행여 노칠세라 뚫어지게 바라본다.
젊고 아름다운 파리의 아가씨에게 나의 기차표를 보여주며 개찰구의 위치와 번호를 다시한번 확인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이곳 사람들의 친절한 안내는 이 아침도 나를 감동케한다.



쌩쟝 피드 드 포드를 향해

7시40분 떼제베 열차에 올랐다. 중년의 두 부부, 아침에 만났던 아저씨 혼자 떠났다는 자매 한분, 모두 5명이 같은 좌석에 앉아 간다.

멀직이 젊은 한국인 부부가 앉아 있다.

차창 밖으로 변해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이어지던 드넓은 평야. 계곡의 싱그러운 녹음,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던 푸른 초원, 낯선 이국의 땅을 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신선한 느낌. 그 신선함이 그리워 끊임없이 배낭을 메고 어딘기로 떠나곤 했는지도 모른다.

기차는 12시가 조금 지나  바이욘역에 닿았고, 한시간 후 산간으로 가는 작은 열차로 갈아 타야한단다.

바이욘에서 생쟝으로 가는 열차는 우리나라의 협궤열차 같이 몇개가 안돠는 차량을 달고 간다.

휴가를 이용해 자전거로 산티아고을 갈 것이라는 미국 젊은이를 만났다.
몇명이 구룹이 되어 출발했단다. 이 열차의 승객 거의 모두는 산티아고를 찾는 순례객이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생쟝 마을에 도착, 프랑스 코스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하는 첫째 관문이다.

빨간 지붕과 하얀 벽, 창가에 놓여있는 빨간색 제라늄 화분, 그림처럼 예쁜 마을이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 마을에 도착한 것 같다. 배낭을 메고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성문을 지나자 좁고 가파른 오르막의 길이 나온다.

9kg이 넘는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보조 배낭까지. 어떤 방법을 찾지 않으면 그토록 갈망했던 꿈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



순례자 협회에서 등록을 마치고
내가 가는 순례길 어디에서나 도장을 받을 수 있다면서, 등록을 마친 후 쥐어 준 크리덴셜카드와 순례길을 걷는 가장 기본적인 일정표,

지나가며 만나게 되는 마을과 숙소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 전부 세장의 프린트 물을 받아 들고 나선다.

자, 우선 내 짐이 너무 많으니 2kg 정도는 콤포스텔라에 미리 부쳐 놓기로 하자.

불필요한 짐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마지막 종착지인 콤포스텔라 우체국으로 부치는 건,

순례자들의 관례처럼 되어 있는 것, 그 곳 우체국에서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두달간은 무료 보관을 해 준다고 한다.

5시30분까지는 우체국이 열려 있을 것이니 찾아가보란 말과 함께 배낭을 메고, 안고 어렵사리 찾은그 곳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업무는 5시까지라는 안내 사인이 문 앞에 붙어 있다. 앞으로 닥칠 짐과의 지난한 전쟁을 예고편으로 만난 듯 난감하다.
계획 없이 떠남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란 걸 나는 예상치 못했었던가?
자, 힘내고, 그 다음 방법이 또 있을 거야.

숙소를 찾아서
이제는 숙소인 일베르게를 찾는 일,
메고 안고, 힘겹게 마을을 걷는다. 까미노 협회에서 알려준 세개의 알베르게는 이미 만원. 민박집을 찾던가 호텔을 찾던가,
허름한 이층 집 앞에 'madam'을 부르며 할머니가 호객을 한다.
우선은 집에 대한 인상도 안 좋고, 20유로라고 손가락을 펴는 할머니도 맘에 안 들고, 지나쳐 걷는다.
더 나은 숙소를 찾아 헤매고 또 헤매다 결국 빨간 쉐타를 입고 나를 부르던 그 할머니네 집으로 따라 올라갔다.

엄마의 말씀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이 우물 물 다시 안마시겠다는 말은 하지마라. 결국 그 물을 또 마시게 된단다.
이인용 침대가 놓여있는 방, 문을 열며 할머니, 안쪽 침대를 가르키며 'mousieu'라고 한다.

흠칫하는 나를 보고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 어깨를 올리며 웃는다. 돌아 나갈 수도 없고, 돈은 지불했고, 내 배낭의 무게는 나를 누르고.
우선 내 어깨의 짐을  내려놓자. 그리고 다음을 생각하자. 어차피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 호, 불호를 가릴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더 좋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오늘이라 생각하자.





내가 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 사랑을 나누게 해 달라고. 행여나 예기치 못하는 어려움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당황하지 않게 도와주시라고. 제 손을 놓지 마시고, 당신이 함께 계심을 잊지 않게 해 주시라고.

먼 하늘에 검은 구름이 심상치 않다. 아마 내일은 기상악화로 산길은 위험할지도 모르겠고, 산허리를 도는 길을 택해야 할 것 같다.





돌아 온 숙소, 밤 10시 무렵, 룸메이트인 스페인 아저씨가 들어온다. 간단한 자기소개,
다행히 아저씬 영어가 가능해 당신은 산티아고 출신이고 현재는 런던에 살고 있으며,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가게 됐노라고.

휴가를 이용해 떠나는 길이므로 30일로 걷기를 끝내야 한다고. 서울에서 왔다는 내 말에 최근 많은 한국인이 이 길을 찾고 있다며

좋은 여행이기를 바란다는 덕담까지 해 줬다.

무슨 말인지 더 했던 것 같은데, 얘기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필요 없다는 숙소의 담요를 펴 나를 덮어준 것 같다. 새벽이 되면 추울 것이니 덮는 게 좋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고.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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