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思] 가을을 생각하며
다도(茶道)의 명인(名人) 리큐(利休) 화상(和尙)이 정원(庭園)을 바라보며 아들을 불렀다.
“애야,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이로구나. 내가 차를 준비할 동안 너는 정원을 청소하거라.”
항상 근엄하시던 아버지가 모처럼 차를 같이 끓여 마시자고 한다.
아들은 기쁜 마음으로 정원을 청소한다.
마당을 쓸고 정원수와 화분에 물을 주고 대청 마루를 정성스럽게 닦았다.
“아버지 이제 차를 끓이시지요.”
그러나 밖을 내다 본 아버지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아들은 더욱 정성을 다하여 한 번 더 쓸고 닦았다.
“아버지,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니, 그게 아니다...”
아들은 다시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정원에는 검불 하나 떨어진 것이 없이 깨끗하였고,
물을 뿌려서 씻겨진 화분과 정원수가 그리고 이끼와 넝쿨까지도 싱싱한 풀빛으로 반짝거렸다.
“아버지 이제는 되었지요?”
밖을 내다보던 아버지는 대답 대신에 성큼 마루에서 내려가서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그 가지를 흔들어 대었다.
찍어 바른 듯 붉은 색의 단풍이, 황금빛 나는 낙엽이 우수수 날려 정원에 깔린다.
“가을의 정원은 이런 것이다. 자, 이제 차를 끓여야지.”
아들이 생각한 것은 정원의 청결함 이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바란 것은 정원의 아름다움이었다.
<있어야 할 것들이 때맞추어 있어서 이루는 조화> 그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인 것이다.
가을의 정원에는 낙엽이 당연히 깔려있어야지~
엊그제 올해를 시작한 것 같았는데 벌써 10월 한 가운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내 인생도 가을이라는 계절에 들어선 것일까?
우리는 가을이 되면 결산준비에 내년도 사업계획, 그리고 송념모임 등등을 준비하게 된다.
오늘 문득 리큐의 정원과 함께 내 인생의 가을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나의 가을을 정리하고 있는가?
물론 리큐의 아들처럼 부지런히 나무에 물을 주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 마당을 쓸어내고 있겠지.
그러나 가장 소중한 알맹이는 외면한 채 어설픈 꾸밈만으로 나의 가을을 장식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일년을 돌이켜 보면 너무도 짧았던 봄과 여름, 그러나 가을은 얼마나 더 짧을 것이며
다가올 겨울은 또 얼마나 덧없을 것인가?
학창시절 여러 학우들과 그림그리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안정된 가정을 이르기까지의
나날들이 빠른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날들은 얼마나 더 빠를 것인가?
삶에 대한 고마움은 오히려 그 삶이 참으로 짧고 덧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느낀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역설이다.
이 가을, 한 해를 정리하면서 부족함이 많은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가족들, 함께한 친구들,
그리고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남기고 싶다.
사람 한 평생에는 ‘배우는 때’ ‘일하는 때’ ‘거두어 드리는 때’ 그리고 ‘손을 놓아야하는 때’가 있는데
이제 나는 서서히 ‘놓아야하는 때’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삶, 가을의 정원을 리큐의 아들처럼 청결함과 윤택(潤澤)함으로 치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낙엽이 바닥에 흩어진 이 모습 그대로를 탐미하고 사랑하면서
다가올 날들을 준비하고 싶은 것이다.
당나라 말기 유우석(劉禹錫)이라는 이가 지방관리로 좌천되어 암울한 나날을 보낼 때 쓴
추사(秋思)가 책갈피에 메모해둔 것이 생각나 다시 꺼내 읽으면서 느낀 감흥을 글로 남긴다.
추사(秋思)
“사람들은 예로부터 가을이 오면 쓸쓸함을 슬퍼 하지만 (自古逢秋悲寂寥)
나는 말하리니 가을날은 봄날 아침 보다 나은 것을 (我言秋日勝春朝)
맑은 하늘에 한 마리 학이 구름 헤치며 올라가나니 (晴空一鶴排雲上)
시정(詩情)을 끌고 푸른 창공에 이르는 것, 이것이 바로 가을이 아니겠는가(便引詩情到碧空)”
유우석(劉禹錫)은 가을을 허무함이나 서글픔만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시정(詩情)이 푸른 창공에 이르는” 그런 기상으로 현재의 입장을 승화시킨 것이다.
가을은 언제나 온다. 인생에서도 누구나 가을은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을의 생명력은 그것을 느끼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것.....
이제 내 인생의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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