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우리들 모습
우리들이 어렸을 적, 어수선 했던 시절, 동네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가 폭발물을 모르고 가지고 놀다가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후 거의 실성할 지경이 되어서 우리들을 볼 적마다 울고,
교실에 와서도 아들의 빈 자리를 만져보고 울고, 반 동무였던 우리들을 부둥켜안고 울고는 하였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에서 정말로 못 볼 것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애통해 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근처에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가 또 있었다. 그 집은 매우 부잣집이었고
외동아들이라 어렸을 적부터 사랑을 독차지하여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던 아이였다고 한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훤출하게 크고 잘생겼던 아들이 그리워
하루도 빠짐없이 꽃을 들고 묘지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아들이 어려서 꺽어 놀던 이름 모를 들꽃, 동네 입구에 피어있는 들국화, 집 뜰에 핀 장미,
그리고 어머니날 엄마 가슴에 함박 웃으며 달아주던 카네이션,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 만큼이나 꽃을 들고 아들의 무덤을 찾았다
.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 젊었던 어머니도 늙고 병들게 되었다.
매일 찾아오던 어머니는 일주일 간격으로 오더니 몸이 점점 쇠약해짐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오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묘지 관리인에게 돈을 송금하면서
아들의 무덤에는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송이가 언제나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흘렀다. 어머니는 더욱 약해져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아들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려고 앰뷸런스를 타고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묘지를 찾아오면서 생각했다.
“이제 얼마 후면 저 세상에서 내 아들을 만난다.
아들이 말하겠지, 엄마 항상 싱싱한 꽃을 가져다 주어서 고마워요.” 라고...
관리인의 안내로 아들의 묘지를 찾은 할머니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항상 놓여 있어야 할 꽃이 없는 것이다.
“아니, 꽃이 없다니..?”
내가 보낸 돈은 어떻게 하고 왜 꽃을 가져다 놓지 않았냐고 당연히 화를 내는 할머니를
관리인은 조용히 사무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그리고 노트 한 권과 편지 한 묶음을 내어 놓았는데
그것은 할머니가 보내준 돈으로 고아원, 양로원, 그리고 무의탁자 병원으로 꽃을 보낸 기록이었고,
꽃을 보내준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내용의 편지들이었던 것이다.
관리인은 창밖의 무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무덤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보내신 꽃은 의지할 곳 없는 고아들에게,
양로원 노인들에게, 그리고 병상에 누워있는 무의탁 환자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드님도 어머니가 보내신 꽃이 생명 없는 무덤에 그냥 버려지기 보다는 살아서 숨쉬는 생명,
외롭고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더 기뻐했을 것 입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꽃을 사라고 돈도 보내오지도 않았고 전화도 없었다.
또 몇 년이 지났다. 우연히 창밖을 보고 있던 관리인은 순간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앰뷸런스와 간호원 부축으로 겨우 걸어오던 그 때 그 할머니가 혼자 자동차에 내려
원기 왕성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할머니는 벌써 돌아 가신 줄 알았습니다."
할머니 말씀인 즉, 여기에 왔다간 뒤로, 느끼는 바가 있어 아들의 무덤에 꽃 살 돈을 보내는 대신
자기 스스로가 꽃을 사들고 고아원으로, 양로원으로, 무의탁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죽은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도록 슬퍼져서 나도 어서 저 세상에 가서
아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고아원에서 티없이 뛰어 노는 아이들도 보고,
병원과 양로원에서 자기 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자기 자신이 오히려 생명력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점차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자원 봉사로 고아원에서 아이들 목욕도 시키고
양로원 노인들과 무의탁 환자들 수발도 들어주다 보니 하루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면서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즐겁더니 자신이 이렇게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첫눈도 어느 결에 내렸다.
주위를 가만히 돌아보라.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계단에서 쪼그려 앉은 할머니나 병든 사람도 그렇고,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두다리를 잃고
무릎으로 기어다니면서 껌을 팔고 있는 장애우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힘든 사람들이 거짓으로 구걸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또 게을러질 것이라고 속단하지마라...
설사 거짓이면 어떻고 게을러지면 또 어떠한가?
잊혀지고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그릇의 따뜻한 음식, 그리고 조그만 선물 하나로,
사랑과 관심을 실어 보낼 수 있다면 그들은 그 만큼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님 년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세군의 자선남비 곁에 한 시간만이라도 서서
봉사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는 29일 내가 몸담고 있는 NGO클럽에서 미얀마지역으로 초등학교 교실을 지워주기 위해
지원사업을 떠난다. 나도 클럽의 일원이므로 당연히 따라나선다.
떠나기 전, 짐을 꾸리면서 무심결에 거울을 보니 날서고 일그러진 初老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있다.
금년 한 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바쁘고 각박하게 산 만큼이나 일그러진 모습이다.
더군다나 내 주위 사람들도 돌아보지도 못하면서 먼나라 사람들 까지 생각하다니 참 부끄럽다.
사랑과 기쁨은 나누어주면 줄 수록 더 커져서 내게 돌아오는 것. 그것도 모른 채 살아왔으니...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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