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군將軍 세사람을 통해 본 인간 처세술
우리들이 젊었을 때 대망大望이라는 소설을 읽히 읽었다. 300여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약 20권의 대하소설인데 사무라이 계급이나 일본 막부幕府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
일본이름도 익숙치도 않았는데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소설 대망大望이 발간된 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라는 이름이
많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 처세술에 대해 얘기할 때 막부幕府정치로 일본을 통치한 쇼군將軍들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비교하면서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주어진 환경도 아니고
재능도 아니라면서 그들 세사람의 인생관을 가지고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세사람의 인생과,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기에 그러할까. 지금부터 살펴보자.
---
일본이 막부幕府정치로 통일되기 前에는 나라 전체가 혼란 그 자체였다.
일본을 통일하면서 차례로 패권覇權을 쥐었던 세 사람,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이 세사람의 인생관에 따라 사람도 죽고 전쟁도 일어나고 세상에 평화도 왔는데
일본의 한 작가가 날아다니는 새에 비유比喩하면서 아래와 같은
간단한 어휘로 그들의 성격을 구분시켰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리겠다”. 로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게하겠다”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로 비유했다.
어떤 내용들일까? 특징들을 살펴보자
좌로부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리겠다”고 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없애버리겠다는 저돌성과 질풍의 성격자로
한번 마음 먹은 일을 밀어 제끼는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종국에는 일본 전국시대를 종식시켰지만, 부하가 공을 세웠는데도 칭찬하는데 인색했고
賞을 내리는 일에 게을렀다는 評을 받는다.
마치 중국 楚漢誌에 나오는 항우의 강한 성격을 연상케 한다.
결국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부하의 반란으로 인해 자살로 生을 마감하게 되는데
내용을 들쳐보면 단순한 얘기다.
아케치라는 부하 장수가 전쟁에서 연전 연승을 했는데도 主君(오다)이 표현을 제대로 않해주자,
오다의 후계자가 히데요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은 모택동毛澤東의 후계자가 되었던 임표林彪가 주위의 견제가 심해지자
그 압박감으로 모택동의 암살을 시도한 것과 비슷한데 두 사건은 모두 실패했고,
이것을 계기로 결국 2인자의 자리에서 몰락한 것과 같다.
너무 자신감에 차있고 오로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친 결과인 것이다.
“울지않는 두견새는 울게하겠다”고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는 성공을 위해서는
어떠한 비웃음이나 비열한 방법을 강구하더라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인생관인데
그가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가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볼품없는 외모로 태어난 그는 하도 가난해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지나 가는 길에 옷을 벗고 드러누워 1인 시위를 벌이게 된다.
노부나가가 사무라이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막고, 그 이유와 소원을 묻자,
히데요시는 “먹고 사는게 어려워, 굶어 죽으나 칼에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하여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려고 길을 막았다”고 대답한다.
오다는 그 뜻이 가상하다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었인지를 묻자 히데요시는 변소지기를 자청하는데...
그가 얼마나 열심히 청소를 했던지 그가 청소한 곳에는 냄새도 안나고 티 하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노력으로 신임을 받아 시종侍從이 된 히데요시는 겨울에 주군의 신발을 품어
따뜻하게 내어줄 정도로 충성하고, 물자를 구입할 때는 자기 돈까지 보태 가장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등 上司에게는 충성을, 부하에게는 功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치밀한 전략과 처세로
오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최측근이 된다. 배경도 없고 무예도 없는 히데요시가
처세와 충성심 하나로 오다의 조카 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거기에다 반란을 일으킨 <아케치> 진압에 성공하여 오다의 뒤를 이어
일본을 지배하게 되는 입지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히데요시는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나눠줄 영지가 부족하자 明나라를 치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지만, 조선의 명장 이순신에게 막혀 결국 병으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한 말이다.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는 이 몸이여, 나니와(오사카의 옛지명)의 榮華도 꿈속의 꿈이던가”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자신의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물로 인내의 화신이라고 불리운다.
그는 戰國時代의 불행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지방의 영주였던 부모는 정략결혼을 했지만
그 이해 관계 때문에 이에야스는 두살 때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여섯살 때 정치적 인질로 잡혀가 13년 동안 불모로 사는 운명을 겪는다.
그 사이 아버지는 죽고 영지는 몰수당해 도쿠가와 家門은 사실상 멸문상태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재기했지만,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아내를 죽여야 했으며
그의 장남은 주군에게 충성의 상징으로 할복을 강요당해 죽이게 된다.
부모와 아내, 자식까지 전쟁과 정치로 잃은 불행한 사람이 바로 이에야스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초인적인 인내를 배워 가족의 불행 앞에 절망하지도 않았고
무너지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며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는 천하를 다스리는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세상에 복수를 하는 대신
오히려 평화를 선사했는데 전쟁과 평화가 그의 인생관이었고 그의 일생이었던 것이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잡혀온 조선인 포로를 돌려보내면서 韓日間에 단절된 국교를 다시 열었고
조선통신사와 함께 韓日의 평화시대는 幕府시대가 끝날 때 까지 계속시킨 인물로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추앙되어 있다.
그는 사람을 관리할 때 명예와 이익을 분리하여 꽃과 열매를 한 사람에게 다 주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要職을 맡은 이에게는 領地를 적게 주었고, 領地를 많이 준 사람에게는 要職을 주지 않았는데
이에야스의 처세술이 現世의 우리가 보아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게 한다.
그가 남긴 幽言이다.
“마음에 욕심이 차오를 때는 오히려 빈궁을 떠 올려라. 인내는 인생을 큰 문제없이
오래 갈 수 있게 하는 근원이요, 분노는 자신의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정녕 패배를 모른다면 반드시 해가 미친다. 내 자신을 탓할 뿐 남을 탓하지 마라.
모자란 것이 넘치는 것 보다 낫다. 자기 분수를 알아라.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에야스는 생활 속에서 양초 한자루까지 아끼는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 세사람이 주는 교훈을 정리해보면 창업할 때는 <오다 노부나가> 처럼 과단성과 추진력이 필요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는 헌신과 충성으로 기회를 만들어 나간 <히데요시>의 처세가,
어려운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 <이에야스>의 인내,
그것이 그들을 정상으로 이끈 힘이었다.
요즈음 현실에서도 곰씹어봐야 할 정도로 훌륭하게 대비되는 인물들이었다.
죽로산방에서 서pd
'내가 쓰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움으로 행복을 찾는다 (0) | 2019.01.14 |
---|---|
중국드라마 와신상담 감상하기 (0) | 2018.05.19 |
한강에 정박한 서울함 돌아보기 (0) | 2018.05.06 |
니들이 게맛을 알아? (0) | 2018.04.08 |
가족사진 찍기 (0) | 2018.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