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5. 왕의 이름 묘호

sunking 2016. 12. 11. 10:56



왕의 이름, 묘호

조선의 왕들을 보다보면 이름이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대부분 이름이 ~조, ~종으로 끝나지요. 이는 묘호라는 것입니다.

묘호의 기원은 중국으로 기원전 1500년대의 왕조인 상나라 때부터 쓰였지요.

묘호는 군주가 죽은 이후 태묘(조상의 영을 제사지내는 묘,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쓰는 이름입니다.

또한 선왕의 업적을 기리거나 역사서를 편찬할 때도 이 묘호가 쓰였지요.

죽은 이후에 붙여지는 이름이기 때문에 생전에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조선의 임긍 세종이오.” 같은 용례는 쓰일 수가 없지요. 

 

원칙적으로 묘호는 황제만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은 그냥 무시하고 왕들에게 올렸지요. 실제로 조선의 9대 임금 성종은

“우리는 제후국인데 묘호를 붙이는 것은 참람한 일이다." 라고 말하며

선왕들의 묘호를 삭제하고 자신에게도 묘호를 붙이지 말 것을 지시했지요.

신하들이 이미 선왕들의 종묘 신주, 묘비나 각종 문서에 묘호가 기록되어있는데,

이것을 다 지우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여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요. 


성종은 자신의 사후 ‘모왕’이라고 부를 것을 요청했으나 그 다음 임금인 연산군이

아버지에게 성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버렸습니다.

성종이라는 묘호에는 국가 체제나 문물, 제도 정비를 완성시킨 군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고려의 6대 국왕에게도 성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연유랍니다.


묘호의 또 하나의 원칙은 왕조의 창시자에게는 ‘조’를 붙인다는 것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중국으로 넘어가면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 같은 인물들에게 태조라는 묘호가 붙여졌지요.

그 외에 제위기간 중 국가가 전복될만한 위난이 닥쳤으나 잘 대처했을 때,

혹은 새로 건국한 것에 버금갈 정도의 대개혁을 완수했을 경우에도 ‘조’를 붙입니다.

대왕으로 칭송받는 정조나 영조가 이런 예시에 들지 않을까 하네요. 


‘종’이라는 묘호는 덕을 뜻합니다. 좀 나쁘게 말하면 그럭저럭 어려운 사건도 없었고

대단한 업적도 없었다면 이 칭호를 붙이지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백성들에게 성군 소리는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에게 묘호가 주어지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와 ‘종’의 원칙은 이러하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조’가 남용된 경향이 있습니다.

7명이나 되는 왕이 '조 '를 붙였지요. 물론 조선의 역사가 다사다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전의 왕조인 고려 시대 때 ‘조’가 붙은 임금은 태조 왕건 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많지요.  


‘조’를 붙인 이유는 대부분 정통성 강화를 위해서였습니다.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권을 잡은 세조가 대표적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정통성이 없을수록 ‘조’가 더 남발된 것입니다.

조선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장남이 왕이 된 경우가 매우 드물 정도로 족보가 난장판입니다.

왕조 내의 쿠데타라고 볼 수 있는 반정이 드문 편도 아니었죠.

500년이나 왕조를 이어온 것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피난한 선조, 병자호란에서 패하고

청나라 왕에게 세 번 절한 것 외에도 수도 없이 무능한 모습을 보였던 인조에게도 ‘

조’의 칭호가 붙은 것을 본다면 조선에 한정해서

‘조’의 묘호는 무능함의 상징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묘호에 ‘조’나 ‘종’을 붙이는 게 중요한 문제였지만 왕에 대한 평가는

결국 그 사람의 업적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묘호에는 ‘종’이 붙지만 조선시대에 그보다 유능한 국왕을 찾아볼 수는 없으니까요.


-박문국의 5분 한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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