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2. 설렁탕의 어원

sunking 2016. 12. 11. 10:19



설렁탕의 어원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파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 -<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 기사 중

 

일제강점기 민중들의 대중적 메뉴라면 얼마 전에 소개해드린 냉면, 그리고 설렁탕을 들 수 있습니다.

1924년 10월 2일 <매일신보> 기사에서는 설렁탕을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고 소개할 정도였지요.

이렇게 설렁탕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조선총독부의 영향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일제는 한반도를 대륙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써 바라봤고,

이에 따른 식량 증산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중에는 식용 소고기의 증산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이로 인해 소고기의 생산이 증가합니다.

물론 이놈들이 조선인들 잘 먹으라고 이런 정책을 취한 게 아닌 만큼 대부분의 주요 부위는

일본군의 군량으로 넘어갔지요. 그런데 고기를 가공하다보면 뼈나 부속고기처럼

잘 안 먹는 부위가 남게 됩니다. 이 저렴한 부위들을 이용해 설렁탕을 만든 것이지요.


1920년대 총독부가 고시한 표준 가격에 따르면 설렁탕의 가격은 5전이었다고 합니다.

비빔밥이 15전이었으니 확실히 저렴했지요. 더군다나 맛도 좋고요.

시대를 넘나드는 명작 소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란

명대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뭐 지금은 서민 음식이라기에는 좀 비싸다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그렇다면 이 설렁탕의 어원은 어디에서 기원할 것일까요?

 

가장 유명한 걸로는 조선시대 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인 ‘선농제’에서 기원했다는 설일 겁니다.

선농제가 끝난 후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임금이 고깃국을 나눠줬는데,

이게 선농제 때 먹는 탕 음식이라서 선농탕이라 불리다가 설렁탕으로 변화했다는 설입니다.

덤으로 고기덕후였던 세종이 설렁탕을 그리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그러나 이 선농제 기원설은 유명세와 달리 그리 신빙성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설이 구체적으로 기술된 것은 홍선표란 사람이 1940년에 발간한 <조선요리학>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조선시대 당대의 문집이나 기록 등에서는

선농탕이든 설롱탕이든 설렁탕이든 전혀 나오지가 않거든요.


   

더군다나 소는 농사에 필수적인 존재였던 만큼 농본주의국가였던 조선은 소를 매우 중히 여겼습니다.

소는 어디까지나 농사용으로 키운 거지 식용으로 키운 게 아니지요.

물론 공식적으로 이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많이들 먹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왕이 직접 주관하는 선농제에서 제사 때 사용한 소를 도축해서 먹는 건 좀 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주장인 몽골 기원설이 나옵니다. 이건 최남선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몽골에서 소나 말을 끓여 먹는 ‘술루’란 음식이 있는데,

이게 고려 말 원나라간섭기 때 고려에 전파되었다는 설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좀 문제가 있는 게 술루와 설렁탕은 그 모양새가 많이 다릅니다.

술루는 소나 말의 뼈와 고기, 여기에 더해 곡물가루까지 넣어서 만드는 일종의 고기죽입니다.

장거리 원정을 반복하던 몽골군이 보급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만들어 먹은 음식이지요.

 탕 음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조선시대든 고려시대든 설렁탕이라는 명칭이 당대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니 선농제 기원설이든 몽골 기원설이든 그대로 믿기가 참 애매합니다.

 

그래서 의외로 설렁탕이란 건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음식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일단 설렁탕이란 단어가 처음 확인되는 건 1904년 문을 연 ‘이문설농탕’입니다.

현재까지 성업 중인 이 가게는 (현존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기도 하지요.

 

이 이문설농탕의 주인장께서 최초로 설렁탕이란 걸 만들어 낸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략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누군가가 새로운 형태의 고깃국을 만들어 낸 뒤,

그 뽀얀 국물을 보고 설농탕(눈 설 자에 짙을 농 자)이라 이름 지은 건 아닐까요?

그러다가 국어의 자음접변 현상에 따라 좀 더 부르기 자연스러운 설렁탕으로 변화하고요.

선농제 기원설을 주장하는 <조선요리학>의 저자인 홍선표도, 몽골 유래설를 주장하는 최남선도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 걸 감안한다면 마지막 견해가 그나마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지만요...

 

ps. 맨 위에 인용한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설렁탕은 은그릇이나 금그릇은 가당치도 않고,

사기그릇이나 유리그릇도 맞지 않으며, 온전히 뚝배기에 담겨야만

설렁탕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료조사 전까지는 별로 깊게 생각한 일이 없는데 이게 나름 오래된 전통인가 보네요.


-박문국의 5분 한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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