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에서 온 친구 이야기 3
모란시장 _심현섭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몇 몇 도회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농촌이었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촌에서는 돈을 만져보기가 매우 힘들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사지은 곡물이나
기르던 가축을 내다 팔아야 겨우 몇 푼의 돈을 만지게 되고 그 돈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일종의 물물교환을 하는 장소를 장場이라고 했고, 정기적으로 일정한 날자에 일정한 장소에서 장이 섰다.
오늘날에는 재래시장 또는 민속시장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현대식 슈퍼마켓과 백화점에 밀려서
일부 지역에서만 대체로 5일 단위로 열리는 5일장이 서고 있다.
장은 멀고 가까운 주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만나는 마당이다.
기르던 닭 한두 마리를 들고 나가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얼큰해서
돌아오는 것이 장이다.
인근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을 가져오는 상인과 주로 공산품을 공장이나 도매상에서 직접 받아서 오는
장사꾼들로 북적이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한 곳의 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날을 따라 넓은 지역을 쫓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성남의 모란 시장은 6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5일장(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자)으로 광주 인근의 주민들이
가져온 농축산물을 사려는 서울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의 장모님은 진짜 참기름을 사려면 모란시장을 가야한다며 노량진에서 성남까지 먼 길을 다니셨다.
가족들은 차비 버려가며 고생해서 참기름 한 병 사자고 거기까지 가느냐고 투덜댔지만
사실 장에 가는 묘미는 사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활기에 넘치는 장사꾼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공연이 삶의 의욕이 생겨난다.
사든 안사든 온갖 물건 구경을 하는 맛도 제법 흥미롭다.
돌아오는 길에 후출하면 입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장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란시장은 내가 한국에 가면 한 두 번씩은 꼭 들리게 되는 시장인데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보신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모란시장은 개시장으로도 이름이 나있다.
지금도 개소주를 고는 건강원이라는 간판을 단 집들이 시장 입구에 즐비하다.
철창살 안에 갇혀서 멀건이 앉거나 서 있는 개들을 보노라면 측은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개들의 표정은 얼마 뒤의 죽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처연하고 처량하다.
뒤에는 시커먼 가마솥이 죽 늘어서서 압력으로 고아대며 수증기를 뿜어내는 광경이 참혹함을 능가하고 있다.
우리 집 큰 딸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날마다 뭘 먹겠느냐고하면 보신탕을 먹겠다고 한 아이다.
일부러 행주산성 아래 토담집까지 가서 보신탕을 먹곤 했다.
이런 아이가 여기 모란시장 개소주집 앞에서 갇혀 있는 개들을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보신탕을 먹지 않고 있다.
어쩌다 모란시장에 가게 되도 개소주집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곤 했다.
장에는 집에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들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꽤 많다.
사과 상자나 과자 상자 속에 담아서 구경을 시켜주는데 고물고물 노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여기는 창살이 없고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를 직접 만져보고 쓰다듬고 한다.
같은 개나 고양이지만 죽음을 앞두었다고 여겨지는 놈과 데려다 기르겠다는 놈과의 사이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간극이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맹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맹자와 양혜왕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한 농부가 눈물을 흘리는 소를 끌고 가고 있었다.
양혜왕이 영문을 물으니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소를 잡으려고 가는 중이라고 했다.
양혜왕은 소가 불쌍하니 소를 살려주고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맹자가 이 말을 듣고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하니 양혜왕이 말하기를
‘소는 지금 보고 있고 양은 내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죽을 개라고 여기면 불쌍하고 기를 개라고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머리를 쓰다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을 뛰어넘어 사람의 본디 성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잡는 것을 보지 않은 소고기 돼지고기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막상 그것들의 목숨을 끊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백정은 불가촉천민으로 가장 괄시를 받았던 것이
오랜 된 이야기가 아니다.
동물원에서는 사자나 호랑이를 키우기 위해서 가축의 고기를 던져준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동물에게서 느끼는 연민도 달라진다.
시장은 삶의 여러 모습을 축소해서 보여준다.
거기에는 예부터 우리가 살아오던 모습과 서로 나누던 따뜻한 체온이 생생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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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위 글은 블러거인 죽로와 중고교 시절 동문수학한 막역지우가 쓴 글이다.
이 친구는 카나다에 정착한지 20여년 가까이 되는데 최근 겨울휴가를 겸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석달 남짓 즐기는 동안 이곳 저곳을 다니며 소감을 피력한 글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심현섭.
카나다에서 대형 관광버스를 직접 운전하면서 카나다 서부지역과 미국 록키산 일원에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삶을 즐기는 친구이다. 현재 카나다 한인회 문인협회장을 맡아 교민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있으며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진 <한힘 단상>을 비롯하여 5,6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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