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스물다섯째 날

sunking 2013. 12. 13. 09:43

 

레온을 향하여





날씨는 쾌청, 싸늘한 아침 기온은 언제나 상큼한 시작으로 하루를 열어 준다.
까미노 길에서 만나는 가장 큰 도시이기도하지만,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 의해 조성된 유서깊은 도시이기도 한 곳,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의미로 번창했고, 현재도 스페인 서북부의 주요 도시의
하나인 레온으로 향하는 날,





만시야를 벗어나 얼마후 부터 길은 평이해졌고, 자동차 도로와 나란히 오솔길로 길은 이어진다.
맑고 청정한 공기, 어느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투명한 햇빛, 청아한 새소리에 익숙해진 나의 오감과
온 몸은 도로에서 뿜어 나오는 소음과 매연으로 양미간이 찌푸려진다.

흐린날도 있고, 개인날도 있는 것이지,

어찌 인생이 항상 좋기만 하겠느냐는 일반적인 말로는 내 심사가 달래지질 않는다.

좌측에 보이는 넓은 벌판과 먼 곳 작은 마을로 이어지는 둑길을 바라보며 방향을 자꾸 그리로만 틀고 싶다.
6km쯤 걸었을까. 길가에 마을이 나온다. 잠시라도 소음에서 벗어나고파 마을길로 접어든다.

아침 해가 다 퍼지지 않은 시간, 해가 없는 곳은 쌀쌀하다.
마을 깊숙이 성당이 있고, 햇살이 환하게 퍼진 종탑위엔 황새와 그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미일 게다.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에게 먹이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모두가 잠이 깨고도 남을 시간, 하지만 마을은 정적에 쌓여있다.
레온으로 나가는 길이 돌고 돌아도 좋으니 시골 조용한 길이 있다면 그리로 접어들겠는데.
행여 다른 곳으로 빠지는 싸인이 있질 않을까, 마을 길을 이리 저리 빙빙 돌아본다.
아저씨 한 분이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온다. 손짓발짓 섞으며 레온 가는 길이 도로 옆으로 걷는 길
말고 혹시 시골 길로 가는 곳은 없느냐니까, 자동차 옆 길 하나란다.

이리되면 레온으로의 입성은 버스라야 할 것 같다. 갑자기 기운이 쫙 빠져 버린다.

"Happy birthyday to me."



다시 들어 선 길, 첫 번째 바가 나타난다.
“됐어. 오늘은 서두르지 말자. 지금부터 나머지 구간은 버스다.”
바로 들어서는 순간, 내 몸은 다시 활기를 찾았고, 찌푸린 양미간은 펴 졌다.

황금빛 햇살과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공간에 가득 퍼져 있었다.

이럴 수가. 이곳에서 이런 곡을 듣다니.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온 아침 마땅찮았던 마음을 털어 버리며

음악과 햇빛에  나를 맡긴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다.
예측 못한 특별한 선물로 마음을 밝히고,

"계절의 여왕 5월에 태어난 너는 행운아였어."
"맞아,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야."

커피와 오렌지쥬스로 건배를 하고, 계란과 베이컨으로 케익을 자르고. 아들에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낸다.
내 생일 상이다. 성찬이지? 멋없는 녀석, 축하해요. 맛있게 드세요.
음악은 아름다운 새소리와 자디잔 물결 소리, 숲 속의 나뭇잎 소리로 바뀌고 다시 거센 비바람과 폭풍으로 바뀐다.

걸어왔던 지난 시간들이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자연에서 얻을 수 없던 환희심을 하느님은 어느 거리의 바에서 틀어 놓은 음악으로 대체해 주신 것 같다.

전 악장의 연주가 끝나고 봄바람 같은  왈츠 곡으로 바뀌며 일어섰다.

버스 정류장엔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 모두는 다 나와 같은 심정,

매연과 소리를 피해 버스를 탄단다. 12-3km만 가면 레온이라니, 투덜대면서도 7-8km 걸었나보다.

내 귓가엔 아직도 전원 교향곡의 선율로 가득 채워졌고, 버스의 덜컹거림도 더 이상 걸림이 되질 않는다.

10여분 만에 도착한 버스 터미널,
지도를 사들고 시내로 이어지는 교각을 건너, 빌딩 사이로 들어선다.

레온(Leon)









이곳은 로마 제7부대(Legion)의 주둔지였다. 레온이란 명칭도 제7부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유하고 특별했던 로마인들은 일찍이 이 곳을 침략해 들어와 로마의 문화를 심어 놓았다.

그들은 상거래의 편의와 군사적인 목적으로 도로를 만들었으며 로마의 양식으로 건축의 붐을 일으키기도했다.

견고한 고딕 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많은 교회와 교각, 성들은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잠시나마 흘러간 시간으로 우리를 유인한다.

이슬람의 침략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종교의 수도로 10세기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흔적은 수 많은 레온 시내의 성당, 또는 성곽들에서도 볼 수 있다.

가장 번화한 시내를 관통하며 걸어 가던 길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도, 쇼윈도에 걸려있던 멋진 의상들도

다른 어느 큰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어제까지도 대 자연의 광활한 품에서 걷던 것이 현실일까,

오늘 화려한 이 도시를 걷고 있는 지금이 현실일까,

약간은 혼란스럽기도했지만 두 개의 다른 얼굴이 공존하고 있는 스페인이란 나라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다.

아마 이것이 이 나라의 저력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옛 영화의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지만 수많은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의 나라들을 갖고 있던 강대국이기도 했고, 그곳에서 들고 온 많은 자본으로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한때는 유럽의 강대국에 하나 였던 곳,

그 손길과 잔재는 까미노 길의 이곳 저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레온 대성당



















13세시에 지어진 대성당 앞엔 이미 많은 관광객 또는 순례객들이 성당 입장을 위해 줄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그라스를 갖고 있다는 성당, 고딕양식의 거대한 성당은 그 규모로 우선 사람을 제압한다.
입장료를 내자 성당의 역사를 들을 수 있는 리모콘을 하나씩 준다.

아직 우리나라 말로 된 리모콘은 없다.
성당 벽을 가득 채운 120여개의 스테인드그라스의 정교함과 화려함, 색의 조화,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채의 유리 작품을 만드는 감각과 정신, 핏 속에 흐르는 유전자가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며

건축의 귀재 가우디가 탄생된 것은 아닐까.

대성당 안엔 의자는 없고, 그 큰 공간 벽에 관람객을 위한 벤치가 놓여있다.
이탈리아 또는 프랑스가 관광객이 뿌려주는 돈으로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우스게 말이 있듯,

이만하면 스페인도 조상 덕은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들을 '천사'라고 부르렵니다.

까미노 길 어디나 처럼 이곳은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가 형성 된다.

대성당을 나온 후 알베르게 찾기, 지도를 펼쳐 아무리 연구를 해도 방향이 잡히질 않는다.

친절하고 멋진 프랑스 아저씨가 날 인포메이션 센타에 데려다 줬고,

친절한 여직원의 설명을 따라 골목길로 접긴 했는데, 또다시 우왕좌왕,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 할아버지는 한참을 지도를 놓고 궁리하더니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불러 세워 놓고 머리를 맞대고 찾기를 시작한다.

드디어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알베르게 앞까지 안내를 한다.

알베르게를 찾은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기뻐한다.

“부엔 까미노.”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손을 흔들며 돌아간다.
감사합니다.
이 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그들의 시간과 마음을 나눠주고 있는가.

나는 그들 모두에게 천사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다.

이 곳은 시립알베르게다,

보통 시립알베르게는 배낭을 받아 주지 않지만 이 곳은 가능하다고,  어제 택배 직원이 말했는데

내 배낭은 도착하지 않고 있다. 또다시 영어로 영어는 스페인말로, 다시 영어로라는 3단계의 과정을 거쳐

내 배낭은 프란시스칸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배달이 돼 있단 사실을 알아 냈고,

이 곳 봉사자 한분이 날 데리고 그 수도원까지, 배낭을 찾더니 자기가 짊어진다.

내가 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넌 많이 걸었고, 지쳐 있으니 잠시라도 쉬란다. 민망해 어쩔줄 모르겠다.

이 알베르게도 비용은 기부금으로 받는단다.

기부로 비용을 받는 대다수의 숙소 관리는 봉사자들이다.

이곳에도 연세 지긋한 아저씨와 두명의 아주머니들이 봉사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최고의 친절로 우리에게 불편이 없도록 도와주고 있다.

저녁식사는 숙소의 식당에서 할 수 있으며 식사 후 수녀원이 있는 성당에서 미사와 성예절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숙소 앞엔 넓은 광장과, 광장 주변에 성당과 바와 알베르게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일행 몇 명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모여왔다.

햇살은 밝게 광장에 비추고, 나는 그늘을 찾아 앉아 오늘의 감사한 일과 당황스럽던 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메모를 한다.

내리쬐는 태양아래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 젊은이 하나가 눈에 띤다.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맥주 한잔을 시켜 놓고, 아침에 먹다 남겨 온 베이콘과 겨란을 먹는다.

더울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 맛이 없다. 그래도 맥주 한잔이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아침에 버스를 탔으니 오후 시간이 넉넉하다. 광장의 오후를 즐기고, 오늘은 거리를 겅어 보기로 하자.

우선 시골에서 사용이 안되던 내 카드를 시험해 보는 일. 은행의 입출금 기계에 카드를 넣고 시험을 해 본다.

사용할 언어의 선택 버튼을 누르고, 필요한 금액을 누르니, OK. "카드사용 가능한데요." 라던 카드사 직원의 말이

큰 도시에 들어오니 맞는 말이다.
알았더라면 돈이 떨어질까 가슴 졸이던 일은 없었을텐데. 꽤 큰 백화점이 눈에 들어 온다.

마침 필요한 물건이 있어 들어가 본다.
서울의 현대백화점이나  신세계 백화점에 와 있는 것 같다. 1층 화장품 코너에 들어 와 있는 상품의 메이커나 매장의
인테리어까지 흡사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매우 한산하다는 것,

점원들이 과잉 친절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

많은 상품들에서 우리나라의 상품들이 결코 뒤지지 않는 다는 것, 이 백화점에서도 내 카드는 사용이 가능하다. 
마음이 넉넉해 지는 것 같다.
한시간여  화려한 시내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하늘에 올리는 가장 훌륭한 기도 - 찬미의 노래, 성가..






숙소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끝낸 후 수녀님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예절에 참석키 위해

숙소 옆에 나란히 있는 성당을 갔다. 몇 개의 나라말로 기도문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한국어는 없다.

미사를 끌어 가는 수녀님들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천상의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온다.

미사후 수녀님들이 올리는 저녁기도도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노래는 가장 훌륭한 기도라는 말, 오늘 밤 수녀님들의 성가를 들으며 깊이 공감하며 돌아왔다.
내 일생에서 가장 멋진 생일이었다.

아침엔 베토벤의 음악으로, 밤엔 수녀님들의 그레고리안 성가로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하느님께 드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