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의 막바지 길 - 걷기를 선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숙소에서 마련한 간단한 아침식사, 감사로 준비된 상자에 넣은 기부금, 봉사자는 떠나는 이들에게
‘부엔까미노’로 축복을 해 준다. 오늘도 날씨는 청명, 메세타의 막바지를 걷는 길,
걷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다.
매일 매일 나는 이 길위에서 새로움을 만난다. 곱슬머리의 젊은이도, 다리가 불편한 형제분도 모두 앞으로 떠나갔다.
“천천히 걸으면 발이 조금 덜 불편한 걸 알면서도 안되네요. 먼저 갑니다.” 발이 아픈 형제가 남기고 간 말이다.
오늘은 갈림길이 없을라나? 내가 어제 마을을 만나지 못했던 것도 갈림길에서 마을로 가는 길과는 다른
자동차전용 도로와 나란히 가는 오솔길을 택한 때문이라고 했다.
덕분에 순례자가 드문 호젓한 길을 걸을 수 있어 내겐 오히려 행운이긴 했지만.
기분 좋은 인사말 - 너, 예쁘다.
오늘은 중간 중간 작은 마을도 만나고, 만나는 바에서 잠간의 휴식도 취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어느 낯선 거리의 스페인 아저씨 지나가며 “너, 예쁘다.” 라고 한 말씀. 저 말을 가르쳐 준 한국인인 누구였을까.
남녀노소 공히 저 말에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참 좋은 단어를 가르쳐 줬구나 싶다.
나도 “그라시아스.”로 보답하고. 27km를 걷는 일은 이제는 그다지 부담스럽진 않다.
까미노 길은 내게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는 것 같다. 청명해서 좋지만 햇빛이 뜨겁다.
오늘은 두 번을 쉬며 걸었다.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도착, 시립알베르게엔 아직 여분의 침대가 있지만 4시 이후에야 직원이 나오니,
우선 방으로 올라가 빈 침대를 잡아 놓고, 그 번호를 말하면 된다고 누군가가 알려준다.
꽤 규모가 큰 숙소다. 몇 개 남아있지 않은 중에서 빈 침대 하나를 잡아 간단히 내 짐을 놓고, 정원으로 나왔다.
독일 아줌마 하나가 배낭을 메고 들어 온다. 침대를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을 곳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나는 조금아까 들은대로 그 아줌마에게 설명을 해 주자 침대 하나를 잡아 놓고 내 옆으로 온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때, 어리둥절해 우왕좌왕 할때 한마디의 도움이 얼마나 고마운지는 이미 알고 있는 바,
그는 내게 몇 번이고 감사하단 인사를 한다.
옆집의 바에서 커피 한잔씩을 갖고 와 직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 이 숙소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국인 젊은이들도 몇 명이나 눈에 띤다.
옆의 아줌마는 언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디에서 산티아고에 대해 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한다. 반백의 커트머리와 젊잖은 풍모, 당당한 체격등, 느낌으론 꽤나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여자 같았다.
그는 나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생장을 출발했지만 끝나는 시간은 언제일지 기약이 없다고 했다.
비행기 예약은 7월 중순이기 때문에 생각없이 몸이 허락하는 한 걷고 있다고 했다.
아마 평균 10km 정도가 아닐까 싶단다. 그러며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얘길 시작한다.
어느 독일 아줌마의 독백같은 슬픈 이야기
나에게는 예쁜 여 동생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12살이었고, 동생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죠.
어느날, 동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의 죽음을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답니다.
그때부터 난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아무 죄도 없는 여섯살짜리 그 어린 동생을 어떻게 죽게 할 수있을까,
절대로 하느님은 없는거다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어쩌면 그 죽음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지요. 모든 일을 끝내고 이제 일에선 해방이 됐습니다.
난 이 길에서 동생을 데리고 간 그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하느님을 만나기 전까진 어떤 것도 내겐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길에 서노라면 가슴에 묻어 준 아픔들을 펼쳐 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가장 무거운 주제에서 부터 사랑이란 화두까지. 떠나간 사람들, 헤어진 아픔들, 죽도록 미워하고 싶은 사람들, 영원히 가슴에 품고 가야 할 사람들....,숱한 인연들과의 화해와 그 끊질김 속에서의 자유로움을 위하여.
메세타 길의 끝없는 광활한 평야와 하늘, 쉼없이 우리 곁에 머물던 부드러운가 하면 때론 거칠고, 때론 감미롭던
그 바람결은 걸음 속에서 우리를 명상으로 끌어 들이곤 했다.
혼자서 또는 함께, 묵묵히 걷고 있던 그 발걸음 속에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에서부터 그들은 자유롭고 싶었을까.
독일 아줌마의 독백과도 같던 이야기를 들으며 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찬란히 빛나던 만시야의 오후 - 가까와진 메세타와의 이별
오후의 햇살은 눈부셨다. 성벽 길을 산책하며 만났던 자작나무 숲. 연둣빛 나뭇잎이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인다. 바람이 한번 씩 불어 올 때마다 나무숲은 파도 소리를 낸다.
돌담으로 쌓아 놓은 견고한 성벽,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곳이었나?
까미노 길에서 쉽게 만나지는 옛날의 흔적 중 하나인 것 같다.
투명한 햇빛도, 청명한 하늘과 흰 뭉게구름도, 끝없이 이어지던 까마득한 길도 메세타 지역을 지나면
어쩌면 만나기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레온, 메세타와의 작별도 며칠 남지 않았나보다.
“딩동.” 문자가 들어온다. “발이 많이 불편해 지는 것 같아 만시야까지 못갔습니다.”
그러게 나처럼 천천히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천천히 걷는 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안된다며 앞 서 갔던 형제에게서 온 문자다.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이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을 어쩌랴.
그저 세상사 모든 것 살아지는 대로 살 수 밖에.
이래서 나도 애국자가 되는 것 같아 성당이 숙소 둘레에 두 곳이나 있었지만 모두 문이 닫혀있다.
한글로 메뉴가 적힌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음식에 대해 만족할 순 없었지만 한글 메뉴판을 만든 그 마음이 고마워 음식은 봐 주기로 했다.
이 멀고 먼 스페인의 시골 작은 마을에서 만나는 내 나라의 글,
이들의 상술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될 만큼 커진 내 나라에 대해 가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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