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스물세번째 날

sunking 2013. 11. 19. 14:40


힘들어도 좋아. 나는 안개 낀 메서타 길을 걸을거야.







이런저런 충분한 이유를 빌미로 메세타는 사하군에서 끝을 내자던 내 결심도 눈 뜨며 밀려온 안개로 사라졌다.
버스정류장 까지, ‘10여분만 참으면 되니까’ 라며 어깨에 둘러맨 9kg의 배낭, 앞 가슴에 끌어 안은 3kg의

보조 배낭과 함께 걷던 길, 거리는 밀려 온 안개로 아득히 꿈결 같다.

안개에 휘감겨 걷는 길, 이것도 메세타 길의 하나라던데, 어렵사리 만난 이 신비한 길, 정류장에서 잠시 망설인다.

“버스를 타? 말아.”

다리를 절룩이며 순례자 아저씨 두명이 버스를 타려고 온다. 

“맞아, 버스는 불편한 분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걸아야 해.”

온갖 행위 예술을 하며 12km를 걷다. 나혼자 초대된 호젓한 길.







안개는 나를 메세타로 다시 불러 들였다. 걷다 못가면 다음 마을에서 하루 쉬는 거야.

배낭이 무거우면 부치면 되는 거고. 겁도 없이 지고 안고,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리비 문양을 따라 까미노 길에 들어 선다. 코 끝에 휘감기는 멥싸한 안개의 냄새,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이 특별한 느낌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무게쯤이야 내 선택의 댓가로 감수하기로 하고.

넓은 자동차 전용 도로 옆으로 난 오솔 길, 하지만 전용도로 옆임을 느끼지 못할 만큼 길은 한산하다.
자욱하던 안개는 까미노 길에 들어서며 햇빛에 양보하고 물러섰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바람이 내 어깨를 다독인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키 작은 푸라타나스,
아직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엔 미약하지만  5년이던 10년이던 훌쩍 지난 어느 날,

이 길엔 가로수가 순례자들의 오아시스 역할 을 할 것 같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도 작은 몸집이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 그늘로 땀을 식히기에 충분했다.

5분 걷고 5분 쉬고, 내려놓은 배낭 짊어지려다 배낭과 같이 나둥그러지기도하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속담을

음미하며 두 다리 뻗고 누워 흘러 가는 구름에게 ‘안녕’이라 손짓도 해보고. 거의 인적이 없던 이 길은 오늘,

나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길 같았다.

다시 추슬러 길을 걸으며 밀밭의 마지막 양귀비도 만나고, 소복이 모여 피어있는 바람꽃도 만난다.

무너지듯 배낭 무게로 어깨가 아프면 다시 누워 피어나는 흰구름을 바라보며 헷세의 시를 외우기도 한다.
  
         아, 보라.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나직한 메로디처럼
         구름은 다시
         푸른 하늘 멀리로 떠간다.

         긴 여로에서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얀 것,
         정처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누이들으며 천사이기 때문에

         흰구름 - 헤르만 헷세









3km만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을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간이 바도 마을도 없이

바람과 태양과 흰구름이 친구가 되어 걷는다.

아주 간간이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무리들이 큰 소리로 ‘부엔까미노’를 외치며 지나간다.

잊을만하며 한번씩 순례자들이 지나간다. 어디만큼일까, 파아란 풀이 무성히 자란 곳에 돌로 된 벤치와 테이블이 있고, 문이 잠겨있는 작고 예쁜 성당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돌 위에 bercianos del Camino라고 씌어있다.
아니, 그럼 내가 벌써 12km를 걸어 왔다고? 중간에 있다는 그 마을들은 다 어디 간건데?

영락없이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내가 그 긴 길을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왔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알베르게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던 나도 당당한 순례자







샘물처럼 솟아나던 기쁨과 충만함이 가득했던 길, 이 곳이 도착지라는 기쁨도 잠시,

마을은 모두가 살 곳을 찾아 버리고 떠난 곳처럼 황량했다.

황토색의 집들은 초라했고, 거리는 땡볕 아래 한산했다.

40명 밖엔 받지 않는다는 알베르게 앞엔 사람들이 배낭을 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대열에 한사람으로 서 있다는 게신기하다.

왜냐하면 내가 알베르게를 도착하는 시간은 이미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침실이 다 배정된 후에 도착하기 때문에.

 나는 저렴한 시립알베르게를 간다는 건 처음부터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드디어 오늘 난 그들 중 하나로 그 대열에 서 있는거다.

뜨거운 한 낮, 뙤약볕 아래 기다리기 얼마, 문이 열리고 내게도 침실이 배정 된다. 비용은 헌금이란다.

산타도밍고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불편했던 발은 다 낫지는 않았지만 걸을 만 하단다.

같이 온 일행은 이미 한참 앞서 걷고 있을 것이라했다. 반가왔다.

파마 머리가 예쁜 젊은 청년도 만났다.

몇가지 빨래를 해, 바람과 햇빛 좋은 마당에 널어 놓고 마을에 있는 바에서 점심을 먹는다.











식사 전에 마을 성당의 미사에 갈 사람들은 안내를 할테니 다녀 오란다. 정말 조그마한 성당이었다.

성당을 들어 서는 순간 나를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초대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촐하고 꾸밈없는 하지만 사랑이 공기처럼 흐르던 곳, 성체를 분배하는 신부님의 경건함,

미사 말미, 순례자 모두를 정성스레 강복하던 손길,

만약 내가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갔다면 만날 수 없었을 감동의 시간들이었다.

내 나라가 자랑스러웠던 순간









알베르게에 묵는 모든 순례자들을 위해 두명의 봉사자가 만들어 놓은 저녁식탁은 소박했지만 훌륭했다.
빠에야라는 해물을 넣은 스페인식 볶은 밥과 와인, 여행 중 처음 만나는 쌀로 만든 음식,

모두들 와인과 함께 맛있게 음식을 즐긴다.

봉사자는 음식이 끝나갈 무렵 순례자들을 나라별로 불러 ‘순례자의 기도’를 읽게 하고

나라별로 함께 나와  노래를 부르게 했다. 오늘 이 곳엔  15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가장 많았고, 다음이 불란서, 독일이었던 것 같다. 우리 한국인도 세명이다.

주저함 없이 소리쳐 아리랑을 불렀다. 코끝이 찡해 오는 것,
나, 자랑스런 한국인 맞지? 한글로 적어 놓은 ‘순례자의 기도’도 학생이 읽었다.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에 대해 다시한번 가슴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각나라말로 번역해 놓은 ‘순례자의 기도’가 다시한번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파마머리 학생과 나는 기도문에 감동되어

메모지에 옮겨 적는


<순례자의 기도>

세상에 추위와 어두움이 가득할지라도
따스함과 빛으로 향하는 노란 화살표를
따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세상이 종종 배고플지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 가슴을 위한 양식들에 감사합니다.
세상이 종종 외로울지라도, 가족과
친구들을 주신 축북과 함께함을 감사합니다.

노을이 보내준 사랑의 샘







노을이 아름다웠다.

오늘 하루가 내겐 너무 아름다웠다. 아주 예쁘고 기분좋은 꿈을 꾸고 난듯, 행복했다.

내게만 주어진 것 같던 완전한 자유로움,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촐한 시골 성당의 정겨움과 은혜로운 손길,

내 나라가 자랑스러워 당당할 수 있었던 순간, 이 모든 것은 레온을 포기한 순간에 내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레온이란 대 도시의 빌딩 숲 속에 있었다면 끝간데 없는 지평선까지 가득 물들어 오는 저 노을빛도 만날 수 없었겠지.

매일 매일이 선물같던 까미노 길이었지만, 가슴 속에 고여 오는 맑고 투명한 이 느낌, 아마 이것이 사랑일게야.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일게야.

찬란히 빛나던 노을이 기울어 가며 하얀 상현달이 떠 오른다.

내 보석같이 아름다운 날도 이젠 막을 내려야 할가보다.

가슴 따듯이 데워 준 순례자의 기도를 읊어보며 오늘 밤도 행복한 잠으로 찾아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