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여덟번쩨 날

sunking 2013. 8. 20. 14:49

 

빌라뚜에르따의 아침. 맨 오른쪽이 내 지팡이 꽃과 새들 그리고 오솔길
 
작은 들꽃들과 새들이 맞아주던 오솔길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마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흐리다. 꿈과 만나다 어제밤, 50년 전 사람들, 망령처럼 내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왜 이리 거추장 스럽지. 그런데 한구석 애틋한 마음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젊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한사람, 또 한사람씩 불러내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꽃길을 걷는다. 미소로, 웃음으로, 가벼운 손잡음으로 안녕을 한다. 지나간 긴 시간 속에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고, 또 받았던가. 까미노 길의 땀방울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점심을 굶다 - 비상식 준비는 이래서 필수 마을 입구- 식수대가 준비되어있다. 걸으며 만난 첫 마을 ‘에스테야’, 까미노 협회에서 받은 구간별 코스대로라면 어제 숙박을 했어야했다.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중세의 고도 같은 곳, 견고한 성당과 오래된 석조건물들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마을은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머물고 숙박하던 마을 중 하나였단다. 세 개의 마을을 지나며 오늘은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다. 두 개의 마을엔 예쁜 바가 있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고, 14km 전방의 마을이었던 세 번째 마을은 까미노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개의 마을로 까미노 길이 어느 마을에서 만난 까미노 상징인 가리비 껍질을 팔던 곳, 순례자들의 가방엔 하나씩 매달려 있다 수도원이었을까? 아직도 누군가의 숨결이 느껴지던 곳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세번째 마을인 것 같아요. 통과하게 되어 있지만 간간이 까미노 길과는 멀리 떨어진 마을도 있다. 간단히 과일 몇 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이래서 초코렛이나 과자등을 간식으로 챙기나 보다. 과일만 간식으로 알고 있는 나 같은 식성의 사람들, 앞으로 간단한 비상식은 식성과 관계없이 준비하는 게 좋겠다. 수도꼭지만 열면 나온다는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을 놓치고 이 곳에서 아마 수도원은 언덕쯤에 있지 않았을까 비엔나에서 왔다던 아저씨, 휴학중 이곳을 찾았다는 두명의 독일 대학생들이 오늘은 자주 만나진다. 수도꼭지만 틀면 와인이 나온다는 에스테야 후방 10km 지점에 있는 이라체 수도원은 만나지 못했다. 두갈래 길이 있는 것 까진 확인을 했는데, 독일 청년들을 뒤따라 걷다가 방향을 잘 못 잡은 것 같다. 지도없이 나선 나는 젊은 친구들이 그 길로 들어 설 줄 알고 졸졸 따라 갔는데, 꼭 보고 싶었는데. 놓치고 말았다. 제 지팡이도 꽃 옆에 있고 싶다해서, 가장 소중한 동반자라서 한컷. 파도처럼 일렁이던 푸른 밀밭 - 영혼을 깨우던 끝없이 불어 오던 바람소리.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 같던 잔득 찌푸린 하늘, 거세지는 바람으로 내 영혼은 깨어나고 밀밭은 푸른 파도처럼 일렁인다. 비도 한 두 방울씩 돋기 시작한다. 환상적인 분홍 꽃길이 나타난다. 짙은 회색 하늘, 인디언핑크의 꽃, 색의 조화가 신비스럽다. 꽃길에 취해 23km의 길이 언제 끝난지 모르게 로스아르코스의 알베르게 도착, 마을 뒤켠 언덕으로 성당을 찾는다. 비에 젖어 있던 회색의 고딕양식의 중후한 성당, 비를 머금고 있어 그런가. 무게가 느껴진다. 성당 앞 바에서 런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바노스에서 만났던 양반, 맥주 한잔씩을 나누며 며칠간의 이야기를 나눈다. 바람소리가 들리세요? 저기 보이는 곳, 로스아르코스? 런던에서 온 여장부같은 아줌마.
같은 꿈을 꿨던 우리는 까미노 친구들 저녁 미사 후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 강복이 있었다. 그곳에선 주비리 민박집에 함께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카타리나를 만났다. 반갑다고 팔닥팔닥 뛴다. 여전히 영어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손짓발짓만으로도 좋단다. 같은 꿈을 꾸다 이 길을 들어선 사람들,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고 그래서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