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여행지

창덕궁 후원 공부하며 돌아보기 2

sunking 2018. 1. 16. 18:39

창덕궁 후원 2

부채꼴모양의 관람정



승재정勝在亭



반도지의 남쪽 언덕에 위치한 정자로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씩인 익공계 사모지붕이다.

8각형 초석 위에 원주를 세우고 사방에 사분합문을 단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정자기둥 밖으로도 쪽마루를 깔고 아자교란亞字交欄을 달았으며 통로가 전후로 나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정상에는 절병통節甁桶이 있다. 승재정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궐도에 초정(지금의 승재정 자리)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재정의 난간은 운두가 높은 편이고 궁판 위에 살대 얹어 이중으로 조성한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이다.

 

폄우사



폄우사는 반도지 위에 있는 존덕정 뒤편 언덕 위에 정면 3간의 맞배지붕의 작은 건물로

방과 마루가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에서 익종과 정조가 멋진 시를 남겼다고 한다.

 '폄우'란 괴팍하고 어리석은 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폄우사는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다.

 

다시 다리를 건너 녹음속을 걷는다.



연못에 반쯤걸친 존덕정의 모습이다.


 


이제 옥류천쪽으로 간다.


옥류천으로 가는데 정자가 하나 나온다. 취규정聚奎亭이다.

 

취규정聚奎亭



취규정은 인조18년(1640년)에 세웠다고 하며 옥류천으로 행차하시던 임금님이나

왕실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던 곳이다. 깊은 숲속에 자리잡아 한여름에 갔는데도

전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이제 이길로 내려가면 옥류천玉流川이다.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인조 14년(1636년)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근처의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여 많은 임금들에게서 특히 사랑받았던 곳이다.

 

맨먼저 눈에 보이는것이 취한정翠寒亭이다.


취한정翠寒亭



창덕궁 후원의 취규정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언덕을 내려가면 옥류천 계곡이 나오는데,

옥류천 계곡 입구에 자리잡은 정자가 바로 취한정이다.

취한정은 정면 3간, 측면 1간의 팔작 지붕 건물인데 정면 3칸의 간설이 구조가 특이하다.

중앙의 협간 넓이가 좌우의 협간 넓이의 2배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언덕 위의 취규정과 같은 구조이다.

 

길을 따라가 본다. 배수로가 너무 현대적이라 거부스럽다.



농산정籠山亭


농산정은 옥류천 주변의 정자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구성도 특이하다.

평면도를 보면 방 2칸, 마루 2칸, 부엌 1칸의 5칸 건물로 행랑채와 비슷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왕이 신하들과 옥류천에 들러 주연을 베풀 때 다과와 음식 등을 마련하던 용도로

쓰인 것이 아닌가 추정케 한다. 한편 <동궐도>에도 농산정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있는데

농산정 입구에 꽃나무 가지 등으로 담장을 쌓은 취병을 두른 모습이 지금과 다르다.

 

태극정太極亭


정면, 측면 각 1칸의 사모기와 지붕의 익공翼工집이다. 인조 14년(1636)에 소요정과 함께 세워졌으며

창건 때는 운영정雲影亭이었다고 《궁궐지宮闕志》에 기록되었다.

이 건물은 농수정이나 승재정과 동일한 형태와 구조로 되어 있으나 이들 건물보다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건물이다. 그것은 다른 부재部材에 비하여 초석이나 기둥 등이

앞의 정자들보 다 낮은 데에 연유하며 난간도 낮은 편이다.

 

청의정淸漪亭


옥류천 주변의 정자 중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으로 만들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청의정이다.

<궁궐지>에 의하면 청의정은 인조 14년(1636)에 건립했다고 한다.

또한 정조가 친히 '청의정시'를 지어 청의정에서 느낀 아름다운 정취를 노래했으며,

선조의 어필로 글귀를 써 걸기도 했다고 한다. 청의정 주변에는 서너평 가량의 작은 논을 둘러쳐 있는데,

여기서 벼를 심고 그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소요암逍遙巖




바위에 둥근 물길과 폭포를 내어 감상을 하는 곳이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소요정消遙亭


취한정을 지나 옥류천 바로 앞에서 옥류천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지어 놓은 정자가 바로 소요정이다.

소요정 옆으로는 옥류천에서 내린 물줄기가 흐른다. <궁궐지>에 의하면

인조 14년(1636)에 건립하였으며, 처음에는 탄서정歎逝亭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소요정은 창덕궁의 정자들 중에서 비교적 소박한 축에 속하지만,

소요정 만큼 역대 국왕들이 가장 아끼며 즐겨 찾던 정자도 없었던 것 같다.

<궁궐지>에 따르면 소요정과 관련된 역대 왕들의 시가 전하는데 숙종, 정조, 순조 임금 등이

각각 시를 남겼다고 한다. 소요정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주연을 베풀어 유상곡수를 즐기며

소요정의 정취를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종, 선조, 인조의 어필로 된 글귀 등을 이곳에 걸기도 했다고 한다. 정

면 1간,측면 1간의 사모정으로 익공양식이며 홑처마에 사모지붕이다.

 

소요암을 중심으로 정자들이 있다




한바퀴 도니, 다시 취한정이다. 옥류천에서 나와, 큰길을 따라간다.

수령 650년의 다래나무다. 수나무여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녹음길을 따라간다. 입구 쪽에 오니 커다란 배수로다.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구선원전인데 개방을 하지 않았다.

 


수령 750년의 향나무. 높이 12m,둘레 5.9m나 된다.

 


궐내각사闕內各司인데 이곳도 개방하지 않았다. 궐내각사란 궁궐에 있는 관청이란 뜻이다.

  


입구인 돈화문을 나서며 창경궁 답사를 마친다.

    

죽로산방에서 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