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에세이

경남 사천에서 배송된 자연산 생굴

sunking 2017. 12. 16. 23:12


경남 사천에서 배송된 자연산 생굴


2~3일전 집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니 현관 앞에

택배로 배송된 박스 하나가 놓여있다. 어제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전남 고흥에 있는

유자농원에 유자즙을 주문하면서 우리집에도 한박스를 부탁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도착했나 싶었다.

그렇지만 이 물건은 여느때처럼 배송되던 유자즙 박스와는 사뭇 다르게 스티리폴로 되어 있다.

고개가 갸우뚱. 이게 뭘까?  

요즈음의 택배 배송은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에서 물건이 발송되었으며 몇시에 도착된다는

알림창이 있어 편리한 세상이지만 알림 내용을 자세하게 보지를 않고

유자농원 물건이겠지 하면서 확인하지를 않은 탓으로 도저히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일단 박스 위의 배송전표를 살펴보니 경남 사천市에서 발송된 물건이다.

요즈음 사천市에 있는 분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데 누가 내 주소를 알고 보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20여년전 글쓴이가 산업자원부 디자인 지도교수로 재직시 수산물 가공회사의 포장디자인 관계로

여러차례 그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의 인연으로 내게 보냈을리는 없고...

더군다나 글쓴이가 서울 서초동에서 30여년을 살다가 이곳 김포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온지가

얼마 안되어 주소를 알 수 있는 사람도 많지를 않은데 말이다.

 

여하튼 궁금증을 잔득 안고 박스를 개봉해본다.

두껑을 열어보니 겉에서 봐서는 알 수 없는 2겹의 파란비닐 봉투 안에 

하얀 물건이 물과 함께 출렁이고 있다.

단단하게 묶여있는 비닐봉지를 풀 수가 없어 가위로 반쯤 잘라

조심스레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물속에 조그마한 생굴이 한가득이다.

한눈에 봐도 자연산 굴. 요즈음 돈주고도 못산다는 물건이지만 사뭇 난감하다. 이제 어떻하지?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물건에다 내용물이 어떤 상태인지도 전혀 모르니 말이다.

 

일단 전표에 있는 사천市의 발송지 회사로 전화를 걸어본다.

전후 상항을 상세하게 설명한 후 누가 보냈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더 햇갈리게 한다. 대답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리집에 자주오시는 손님인데 성씨가 심氏인가 신氏인가 하는 분인 것 같은데 요즈음은 굴이

제철이라 물건들을 전국으로 보내주기 때문에 잘 모르겠고 지금은 바빠서 그러니

2~3시간 후에 다시 전화해 주시면 주문자 전화번호를 찾아 알려 주겠다”고 한다. 궁금증 증폭이다.

 

배송된 물건은 이미 파해쳐져 다시 포장할 수도 없고 내용물도 쉽게 변질되는 굴이니

일단 냉장고에 보관할 요량으로 플라스틱 통에 옮겨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무려 5Kg. 제법 큰 플라스틱통 4개에 가득찼다.

요즈음은 내 처가 외부 일로 일주일에 한번 정도나 집에 오는 관계로

처리방법도 실로 난감이고 냉장고에 넣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 되버렸다.

 

기다리라는 시간에 맞춰 다시 전화해보니 주문자 전화번호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긴장하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누구신가를 조심스레 확인해 봤으나 나와는 전혀 일면식이 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면서 자기가 배송을 의뢰한 분이 아닌데

어떻게 돤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다시 확인해 보겠단다.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다.


확인 결과 발송처에서 주문자를 잘못 알고 전화번호를 가르켜 준 것이다.

 

1시간여나 지났을까.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스마트폰에 아는 이름이 뜬다.

순간... 그래 이분이다. 이분이 보냈구나. 싶다. 비로서 궁금증이 풀린다.

 

‘송명화’ 그녀다.

문화교양학과 전국총동문회에서 발간하는 동문소식지 Cultura誌의 경남지역 편집국장이다.

이번에 발간된 소식지를 받아보았다며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편집위원장님께서 재능기부로 좋은 작품을 만드셨는데

그 노고勞苦에 약소하지만 감사 인사로 보낸 선물이란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녀와는 지난 여름 경주에서 개최된 총동문회 발족 10주년 행사장에서 열린 Cultura 발간을 위한

편집회의에서 처음 인사하면서 종전 발행된 타블로이드 판형에서 책자형식의 문고형으로 바꾸고

편집방향도 새로운 포맷으로 혁신하겠다는 내 의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기사를 작성하란다면서 크게 반대의견을 피력한 편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 있던 분이다.

그런데다, 원고 마감일이 4~5일이나 지나 이메일로 접수된 원고를 받아보니 베정된

지면보다 글도 많고 사진이 많이 넘쳐있다.

이런 경우, 데스크에서는 내용을 대폭 삭감하여 앞 뒤 문맥만 맞도록 조절, 편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럴 요량으로 글을 읽어본다.


이런.....!.  기사 내용이 보통 잘된 글이 아니다.

편집방향에 맞도록 어휘 조정만 살짝하면 될 정도로 좋은 글이니, 실로 난감할 수 밖에.

그렇다고 이미 편집되어 있는 다른 지역의 기사를 내리고 그녀의 글만 올릴 수도 없고....


오랜동안 생각한 끝에 시간과 제작비용이 더 발생되지만 최초 계획에서

4페이지를 증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획에도 없었던 <사진으로보는 총동문회10년>을

Photo Album으로 편성, 앞뒤 바란스를 맞추도록 했다.

나아가 표지도 별도로 제작하여 중철제본에서 무선 제본 형식으로 포맷을 바꿨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녀 덕분으로 디자인팀이 고생은 했지만

동문소식지가 더욱 세련되고 알찬 책자로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인가!

 

어려운 난제들을 극복하고 동문소식지 쿨투라誌가 12월 1일자로 발간되자

총동문회 임원들을 비롯하여 전국 편집국장들과 많은 동문들의 격려 메시지와 전화가 걸려온다.

수고하셨고 고맙다는 인사들이다. 고맙다.

전국의 편집국장들과 마음을 합해 봉사한 보람이 쓰나미처럼 가득 밀려온다.

특히 송명화 그녀처럼 쿨하게 프로를 인정할 줄 아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가슴 벅찰 정도로 고맙다.

세상엔 결이 고운 사람도 많고 아직 나같은 사람이 봉사할 수 있도록

양보심 많은 동문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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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쿨투라 3호에 남긴 글쓴이의 편집후기를 포스팅하여

총동문회 편집위원장으로 관여하게된 배경과 마음을 피력해둔다.


[편집후기]

지난 봄 서울에서 개최된 콩닥콩닥 문화나들이 행사에 참여한 인천에서 오셨다는

1기 동문이 “조그많게 시작하더니 여기까지 왔네요”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장대하리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동문회 창립 당시,

네다섯명이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문회 결성을 논의할 때 10년 후, 매머드 행사장에서

밝게 웃는 얼굴들과 문화답사지를 돌아보는 전국 동문들의 하나된 모습들을 상상이나 했을까?

오늘 아침 KBS 2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3일, 뚝섬둘레의 공부벌레들> 프로에서

법학과에 다니는 83세의 학생이 한 얘기가 가슴이 더 벅차다.


“나이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없어 우두커니 있거나 가족들 눈치보여

파고다공원 같은 곳에 가서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여기 방송대 따뜻한 열람실에 와서

하루종일 공부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다. 우린 그 즐거움을 즐겼고 그 즐거움을 즐긴 사람들과 동문회라는

조직 속에 지식을 공유하고 동문사랑을 느끼면서 어디든 갈 곳이 있고 얘기할 것이 많은

문교인이지 않은가! 문화교양학과 전국총동문회 참 좋은 곳이다.

나도 그곳에 몸담고 있으니 조그마한 재능이라도 봉사해서

지역별 편집국장들의 역할분담을 시스템하고 동문회 10년 역사의 편린들을 모아

가지런하게 정열, 20년, 30년 후 다시한번 더 정리할 <문교인... 그 아름다운 발자취>의

초석을 놓는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서병태 | 편집위원장 5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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