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인문학

9. 조선 역사 최고의 대도 임꺽정

sunking 2016. 12. 21. 23:08

조선 역사 최고의 대도, 임꺽정

어제는 벽초 홍명희 선생님의 기일이었습니다.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삼대 천재로 불렸던 분이지요. 실제로 셋은 죽마고우였습니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친일, 이분은 월북하였기에 평가가 그리 좋지는 못하지만요.

하지만 3.1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창설도 주도했던 인물이기에,

독립운동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분이 정말로 유명한 것은 소설가로서의 명성이지요. 소설 <임꺽정>의 작가로 유명한데요,

1928년 연재되기 시작한 <임꺽정>은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요.

여담으로 일제치하의 수감된 문인 중 유일하게 옥중집필이 허용된 작가가 홍명희였습니다.

수감 후 <임꺽정>의 연재가 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총독부 관리들조차 작품의 재미에 푹 빠졌기에 내린 결정이었죠.

옥중에서 <임꺽정>이 집필되면 총독부 관리들이 먼저 읽고

당시 연재처인 조선일보에 넘겼다는 일화도 있답니다. 


임꺽정을 소설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은데,

임꺽정은 실존 인물이랍니다. 조선 명종 대에 활동하던 인물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지요.

명종 대에는 왕의 나이가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와

그 동생인 윤원형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렀답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워지고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워졌던 시기였지요.

임꺽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틈을 타서 비슷한 처지의 불평분자들을 선동하여

각지의 관아와 민가의 재물을 훔치며 다녔습니다.

이때 그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임꺽정이 한 고을에 나타났다 하면

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여 교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세력이 점차 커지며 관리들에게 강탈한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행위를 벌였습니다.

덕분에 백성들과 아전들이 임꺽정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임꺽정의 무리들과 내응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지요.

이들은 임꺽정과 그 무리들을 숨겨주기도 하였으며, 관아에서 병력을 내보내면 도망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게다가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들마저도 죽임을 당했지요.

황해도와 함경도 일대에서 도적질을 시작한 임꺽정 무리는 어느새

조선 전역을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1560년에는 서울에 까지

출몰했다고 하네요. 사태가 이렇게 되니 도적떼가 아닌 반란세력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명종은 직접 어명을 내려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등의 5도에

대장을 정하여 임꺽정을 잡도록 했지요. 또한 모든 관청에 명을 내려 자잘한 업무는 무시하고

임꺽정을 잡는데 주력하라고 명할 정도로 임꺽정의 악명은 대단했답니다.

임꺽정의 세력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은 1560년 12월, 그의 참모였던 서림이 붙잡히고 난 이후입니다.

참모인 만큼 임꺽정 세력의 사정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었던 서림은 관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임꺽정을 추격했고, 토벌은 수월하게 진행되지요.

1562년에 임꺽정은 토벌군에게 포위당합니다. 탈출할 길이 없어지자 임꺽정은 토벌군 복색으로 변장한 후

꾀병을 부리면서 은근슬쩍 뒤로 빠지려고 했는데, 토벌군 병졸들이 이를 수상히 여겼지요.

때마침 서림이 임꺽정을 알아보고 토벌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들켜 급히 도주하였고

추격하는 토벌대가 화살을 난사하였다고 합니다.

임꺽정은 결국 여러 대의 화살에 맞은 후,

"내가 이렇게 된건 모두 서림 때문이다. 서림아! 서림아! 니가 어찌 관군에 투항할 수 있느냐?"

라고 서림을 질책한 후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사망에 대한 내용은 야사인 <기재잡기>에 실린 내용이고 실록에는 없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어요.^^

임꺽정은 조선 최대의 도적으로 평가 받습니다.

조선 시대에 수많은 도적들이 있었지만 수차례 관군과 싸워 이기고 거의 한 나라를 뒤집어엎을

정도의 활약을 했던 도적은 임꺽정이 유일하지요. 

 

또한 힘이 장사라는 면이 자주 부각되는데 사실은 머리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눈 덮인 산에서 관군들에게 쫓기던 임꺽정은 일부러 신발을 거꾸로 신어서

발자국을 남겼다고 합니다. 도적떼를 쫓던 관군들이 이에 속아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었다고 전해지지요. 당시의 그저 그런 무식한 도적떼와는 달리

교활한 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리더쉽과 카리스마도 상당했는지 상인이나

 농민, 백정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임꺽정의 휘하로 몰려들어 도적이 되는 일도 있었지요.

민간설화나 소설에서는 흔히 의적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렇게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도적들이 다 그렇듯이 일반 백성들도 약탈 대상이었지요.

그럼에도 민초들에게 지지를 받은 것은 그저 임꺽정이 평소에 꼴 보기 싫던 탐관오리들을 박

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백성들의 지지를 의식했는지,

시간이 지나며 일반인에 대한 약탈도 줄고 재물을 나눠주는 의적 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요.

당대 명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임꺽정을 가리켜 희대의 흉악범 정도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록을 편찬한 사관은 임꺽정과 같은 도적이 나타나 날뛸 수 있었던 것도

다 나라가 혼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윗 놈들이 잘했으면 이런 난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도로 요약되겠습니다.


음... 지금의 세태와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지 않나요?

역사는 비슷한 모양새를 반복하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혼란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박문국의 5분 한국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