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

sunking 2014. 11. 13. 12:28

 

비에이(미영)역 앞에서

온 종일, 빗 속에서 난 기차에 앉아 있었다.

온 종일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진한 가을의 빛 속에 앉아 있었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과 친구하고,

속도에 섞여 변해가는 가을 빛의 색감에 취해 있었다.

무인 역 역사에 도착한 순간 다시는 그 역사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거라는

상상 속에 조금은 가슴이 떨려왔었다.

영화 속 어린 소녀들의 등장처럼,

알 수 없는 어떤 기운들이 내 몸을 꽁꽁 묶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스산한 상상 속에

나는 되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속 역사의 이름은 호로마이.

우리가 도착한 그 역의 실재 이름은 이쿠토라.

 

오늘도 아침 6시 기상.

창문에 방울져 내리는 빗방울이 조롱조롱, 오늘은 빗속에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온천과 아침식사, 두 시간의 시간여유가 있을 것으로 계산,

어제 걷지 못한 길 반대쪽 숲길을 가기로 했다.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우리 숙소 쪽으로는 스키장이,

길 건너 쪽으로는 골프장이 있는 것 같다.

호텔 입구엔 투숙객을 위한 우산이 준비되어 있어 우산 하나씩을 집어 들고

큰 길건너, 숲길로 접어든다.

어제 만났던 흰수염폭포와 나란히, 이곳엔 부동액폭포가 있다고 했다.

숲길로 접어들자 빗소리가 조금 더 요란해진다.

비닐우산 위로 토닥이며 떨어지는 빗소리, 나무 잎에 또르르 떨어지는 빗소리,

질퍽이는 낙엽위로 걷는 발자국 소리,

발자국 소리에 놀라 후득이며 날아가는 새들의 몸짓소리, 숲을 깨우며 걷는다.

폭포의 세찬 물줄기 소리와는 다르게 규모는 크지 않았다.

빗속에서도 물빛은 맑은 옥빛, 역시 미영이란 이름이 붙여질 만한 곳.

한 시간여의 숲길 산책을 마치고 비에이로 출발,

오늘은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

10:10 비에이 출발 - 11:00 후라노 도착 11:03 후라노 출발 - 11: 54 이쿠토라 도착

12:22 이쿠토라 출발 - 13:10 후라노 도착 13:36 후라노 출발 -14:54 아사히가와 도착

15:25 아사히가와 출발 -16:50 삿포로 도착 18:13 삿포로 출발 -19:20 노보리베츠 도착

19:30 노보리베츠역 - 19:50 노보리베츠 지옥온천장 도착

후라노 역사의 우동, 비오는 날, 따끈한 국물, 최고였어요

 

점심을 먹을 수 있던 시간은 후라노역에서 아사히가와행 타기 전 30분.

그다음 여유 시간은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행 타기 전 1시간이 전부.

후라노 역사에서 우동 한그릇 놓고, 먹던 맛, 따듯한 그 국물 맛이 못 잊을 것 같다.

삿포로 역에서 1시간,

드디어 따듯한 커피 한잔과 달콤한 도넛 하나 먹을 수 있었다.

던킨을 찾았더니 일본엔 던킨은 없단다.

이스트 도넛이라고 자체 브랜드. 독한 ?, 맞는 것 같다. 여러 면에서....

하지만 맛은 좋았다.

호로마이 역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뜻의 글이랍니다. 실재 역 이름입니다. 마을에서 바라 본 역 입구, 역시 호로마이로 표기됨

하루 온 종일 기차에 앉아 왔다 갔다 했던 그 이유는

영화 ‘철도원’의 배경이 된 그 역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북해도 오지의 탄광촌의 석탄을 수송하는 중요 노선인 기차,

그 오지 역의 역장인 오토씨는 철도원이 주어진 천직으로 알고 살고 있던 사람,

갓 태어난 애기가 열 속에서 죽어가고,

부인이 병원에서 죽어 가는 순간에도

그 역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비우지 못했던 강직한(?)사람.

세월이 흐르고, 더 이상 그 노선이 필요 없단 결정에

마지막 열차가 도착하던 한 겨울 눈 내리던 밤,

5-6살 쯤 되는 조그만 계집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 쯤의 어린 소녀.

그리고 여학생 소녀 등 세명의 여자 아이들이

낮부터 밤까지 차례대로 오토씨 앞에 나타난다.

방학을 이용해 놀러온 마을 어느 영감님의 손녀딸들이려니 했었다.

세 아이들은 모두 오래 된 인형을 안고 있었다.

저녁나절 나타난 여학생인 소녀는 오토씨에게 정성스레 저녁상을 차려주고,

술도 한잔 따라주며, 자기도 크면 철도원이 되겠다고 말한다.

자기는 철도원인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다고도 말한다.

늦은 밤, 바래다 주겠다는 오토씨를 만류하며 소녀는 떠났고,

오토씨는 손녀를 잘 두셨다고 영감님에게 전화를 한다.

영감님은 그런 손녀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오래된 인형이 방 안에 있는 것을 발견,

그 인형은 죽은 애기의 관 속에 오토씨가 넣어 줬다는 것을 기억,

순간, 세 명의 여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딸의 혼백임을 알게 된다.

그 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프랫홈에 올라,

환영처럼 다가오는 기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눈 속에 쓰러진다

.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다카쿠라 켄 (주인공 오토역)

 

영화의 내용으로 본다면 진부하기도 하고, 현실감도 떨어지긴 했지만,

오지 마을의 백설의 세상이 주는 환상 같은 배경,

주인공 아저씨의 요지부동의 고집과 진솔한 연기, 등으로

꽤나 큰 감동을 줬던 영화이기도 했다.

눈이 무릅까지 쌓인다는 북해도의 어느 오지 마을,

그때쯤이면 제 맛이 날 법했지만 아뭏튼 가을도 그 황량함이 멋지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량짜리 기차가 산골로 산골로 가던 길, 金山(가나야마)이란 역에 도착,

그 역을 출발하며 下金山(시모 가나야마)으로 이어지던 곳의 차창 밖은

현란한 단풍으로 눈이 부시다.

금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던 거칠고 맑고, 푸르던 계곡의 물,

계곡의 양옆으로 눈부시게 물들었던 단풍의 모습,

그 신비스런 주변을 뒤로하며 도착한 역, 이쿠로라.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뭐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 된 것 같은 느낌,

오래된 목조의 역사는 빗속에서 우중충했고,

영화 속 역사로 내려가는 층계까지 그대로다.

역사에 붙어 있는 현판은 이쿠로라가 아니라 영화 속 역 이름 [호로마이]

허름한 유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써 있는 글 ‘무인역’ 사람이 없다.

당황하며 겨우 찾은 기차 시간표는 문 위에 아주 작은 글씨,

타고 온 기차가 종착점에서 돌아오는 시간, 겨우 25분 후에 도착이다.

돌아가는 시간 확인 후, 영화 속 오토씨의 집무실로 옮겨본다.

수동전화가 놓여있다. 철도원의 제복이 진열 되어 있다.

영화 속 몇 개의 장면들이 포스팅되어 걸려 있다.

문을 열고 다시 마을 쪽으로, 공중전화 박스가 놓여있고,

빨간 우체통이 있으며, 역의 이름은 역시 [호로마이]

적은 예산으로 감동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밉지만, 미워만 하기엔 얄미울 정도로 철저한 이 사람들에 대한 감정은

항상 이중적이다.

 
 
 
 
 
 
 
 
 
 
 
 
 
 
 
 
 
 
 
 
 
 
 
 
 
 
 
 
 
 
 
 
 
 

스산한 플렛트홈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후라노행 기차

무인역 역무실과 진열된 몇 가지를 돌아보고 난 시간,

기차도착 7분전, 비 내리는 프랫홈,

금방이라도 세 명의 여자 아이들이 얼굴을 바꾸며 나타날 것 같은데,

세라복을 입은 여자애가 층계를 올라온다.

 

“뭐야, 이 시간에?”

 

후라노를 가는 중이란다.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겨우 환상에서 눈을 뜬다.

기차는 정시에 도착, 아이고, 한 30여분, 어둑한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 같다.

덜컹이며 기차가 출발한다. 서서히 피곤이 몰려 온다.

오토씨 덕분에 꽤나 긴장했던 가 보다. 이젠 안심하고 눈을 좀 붙여도 되겠다.

 

오늘의 종착지는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라베츠, 관광지다.

삿포로에서 노보리베츠는 기차로, 역에서 택시로도 한참을 산간으로 들어간다.

도착한 시간 8시,

하루 온 종일 기차 안에서 꿈을 꾼 것 같다.

다른 세상 한바퀴 휘돌아 보고 온 것 같다. 이곳 역시 온천은 최고다.

노천 온천에서 보이던 반짝이던 별빛, 얼굴에 닿는 살랑이던 상큼한 바람,

온종일 내리던 그 빗줄기는 다 어디로 갔지?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 여행의 셋째 날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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