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깨우지도 않는데, 지가 알아서 6시면 눈이 떠진다.
창문으로 정신없이 밀고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삿포로 하늘은 청명한 가을날씨를 마지막 선물로 줄 모양이다.
12시 비행기니 10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하고, 삿포로에서 치토세 공항 1시간.
마지막 하나라도 더 보여주겠다는 갸륵한 마음이 고마워
배낭은 호텔 프런트에 맡긴 채 부지런 떨며 나선 시간 7시.
거리엔 출근하는 직장인 차림의 젊은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고,
하늘엔 까마귀들이 아침밥을 찾아 이리저리 까욱 거리며 날고 있다.
우리에겐 흉조라는 까마귀가 이곳엔 길조라니,
문화의 차이 느낄 수밖에. 어릴 때부터 입력된 선입관이겠지만 저 소리는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른다니,
이 곳 정서로는 오늘 내 하루, 까마귀 울음으로 축복의 세례를 받을 것 같다.
호텔에서 도보로 7분 거리의 나카지마 공원,
입구의 상록수 길을 지나자, 가을 단풍으로 가장 화려하고 예쁘게 갈아입은 나무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찾아오는 이들을 웃음으로 맞는다.
100년도 더 전, 이곳에 지어졌다는 최신식 호텔인 호헤이칸은 외국의 귀빈들을 모시는 호텔이었다니,
당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지어놓은 최신 건물에 걸맞게 조경에는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일본식 정원으로 조경된 이곳의 수목은 세월만큼이나 우람하고 울창하다.
그 호텔은 이제 결혼식장으로 개조되었단다. 애석하게도 보진 못하고 돌아왔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공원이었다.
호수 위에 노니는 오리한 쌍의 여류로운 몸짓이 평화로워 보인다.
차가운 날씨, 한번 씩 불어 오는 바람에 나뭇잎은 춤을 추듯 하늘에서 나부낀다.
바람에 춤추다 떨어진 잎들은 예쁜 양탄자가 되어 나무뿌리를 덮어 주고 있다.
마지막 단풍의 인사가 겸손이다.
“잘 있다 갑니다. 귀히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불어오는 바람에 호르르 잎들은 땅에 진다.
박물관이며 기상대며 옛 호텔인 호헤이칸이며 이곳 공원에 볼거리가 많다 했지만,
가을과의 이별만으로도 빠듯하다.
햇빛에 반짝이고, 바람에 부딪는 미루나무와의 이별.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빛으로 갈아입은 그 모습이 우아하다.
미루나무의 속삭임은 더욱 은밀히 다가온다.
‘바다의 잔물결 소리를 닮아 내가 좋다고 그랬지?’
‘맞아, 프로미스타로 가던 길, 너희들의 소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거야.’
바람에 차르르 몸 부딪는 소리, 밝은 햇살이 잎마다 금빛 가루를 뿌려준다.
너, 나 공항까지 데려다 주고, 출국수속까지 해 줘야 해.
아들이 웃으며 한마디
"엄마, 산티아고 혼자 다녀오신 것 맞아요?"
"난 일본 말, 못하잖니."
일 마무리를 위해 며칠 더 있다 온다는 아들과는 공항에서 이별,
떠날 땐 설렘이 돌아 올 땐 언제나 아쉬움이, 이별은 긴 것도 짧은 것도 싫다.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짐에 이제쯤은 덤덤해질 때도 됐 것만, 매번 처음인 듯, 헤어짐은 싫다.
돌아 선 뒷모습을 바라봄은 더욱 싫다.
오늘따라 하늘의 흰 구름이 졸졸 나를 따라 펼쳐진다.
저 멀리 하얀 설산이 띠를 두르듯 펼쳐지고, 동실동실 하얀 솜사탕 하늘 바다에 떠 있기도 하고,
포근포근 하얀 솜이불 깔아 놓기도 하고, 어느새 얼음이 되어 파란 바다에 둥실 떠 있기도 하고.
이럴 때면 어김없이 윤동주 시인의 시어들은 내 곁에 살며시 다가온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헤는 밤 중에서>
구름 한 송이에 사랑과,
구름 한 송이에 기쁨을 담아
내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배달 가야지.
솜사탕의 달콤함으로,
솜이불의 따스함으로,
얼음과자의 청량함으로
“딩동, 흰구름 배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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