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2

sunking 2014. 11. 13. 11:58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2

아침 6시 기상, 창밖 하늘이 심상치 않다.

흘러 나오는 TY뉴스 화면엔 규슈지방 태풍 강타, 이재민 속출,

난민 수용소 같은 곳에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

 

맙소사, 아차 잘못했으면 바로 저 한가운데에 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느님 감사합니다.

애초 아들 출장 가기 전 일본 여행 스케쥴 잡어보세요. 엄마가 원 하는 대로.

 

제주 올레길 모델로 규슈에 올레길 만들었단 얘긴 들은 적 있겠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해가며 일정을 짜 놓았었다.

만든 지 3년여전, 이제 12개 코스를 만들었다는데...

이곳저곳 흩어져 있어 4박 5일이래야 서 너 코스 걸으면 고작,

 

출장에서 돌아 온 이 친구 갑자기 북해도로 바꿔 버린다.

왜냐고 묻진 않았지만 난 나대로 속이 부어 버렸다.

그 규슈가 바로 우리 일정 안에 있었는데,

지금 태풍 속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남과 북이 멀리 떨어져 있긴 해도

일본 전체가 태풍 영향권이라서인지,

이곳도 흐린 하늘, 간간이 뿌리는 비에서 벗어나진 못하는가보다.

 

오타루 - 삿포로 - 아사히가와 - 후라노 - 비에이

아침 8시부터 전철로, 기차로 한량짜리 로칼 기차로 버스로,

그리고 대설산 아래 작고 예쁜 호텔 파크 힐에 짐을 푼다.

우리가 4시간 여 기차와 버스에 있는 동안 비가 뿌렸나 보다.

발 아래 나뭇잎들이 촉촉하다.

 




비에이 (Biei) 미영(美瑛),

아름다운 옥빛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비에이는 북해도 중앙쯤에 위치한 오지이다.
일본의 유명 사진 작가였던 마에다 신조의 작품,

북해도의 사계를 통해 세계의 사진작가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마이클 케냐의 작품, ‘철학자의 나무’로

비에이는 다시 한번 같은 감성의 사람들에게 동경의 땅이 되고 있다.

아사히가와(인천에서 직항도 닿는 작은 공항이 있음)에서, 한여름 보랏빛
라벤다 축제로 유명한 후라노를 거쳐, 비에이로 접어드는 한량짜리 기차는 동화 속으로 빨려들 듯

신기하고 재미있다. 후라노에서 비에이로 가는 선로 양 옆 나무의 단풍이 절정의 빛으로 황홀하게 펼쳐진다.











차창을 지나는 시골 벌판의 집들이 단조롭고, 소박하다.

넓은 벌판에 외로이 서 있던 한 구루의 나무들, 흰 눈이 내려 쌓이면 저런 곳이

아마 작가의 렌즈 초점이 될 것 같다. 비에이 역에서 다시 버스로 한 시간, 산길로, 산길로,
양 옆 숲길에 무르녹은 가을 정취를 창문 닦으며 내다본다.

깊은 숲 속 사이로 난 길이다. 눈이 즐거운 때문일까,

새벽 기상, 네 시간의 이동이 피곤한지 모르겠다.










 
대설산 스키장 아래, 기온은 낮다. 하기사 대설산이 2200m의 고산이니, 그 아래 산마을이야 기온이 낮을 밖에.

]고만고만한 예쁜 호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예약된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선다. 바로 호텔 뒤에서 들리던 우렁찬 물소리, 흰수염 폭포로 유명한 곳,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빛이 완전 옥빛이다.

美瑛이란 이름이 왜 불려 지게 됐는지, 알겠다. 폭포의 모양이 수염이다.

누가 맨 처음 저 이름을 주었을까, 예리한 눈설미에 감탄,

이곳에서 4.5km 떨어진 淸의 호수로 향하여, 가는 길은 자동차 길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자작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숲의 산책길을 이용 할 수도 있다.















이곳 숲이 차창으로 지나며 보여줬던 연한 파스텔 톤의 색채, 그것은 자작나무의 단풍 빛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숲은 은은하다. 라르고의 느린 음률이 흐르듯 연한 색채와 낙엽을 밟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 뿐이다.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비에 젖은 숲길은 더욱 진한 숲의 향기를 뿜어낸다.

습기가 잎들의 세포를 다 열어 놨는지도 모르겠다.

깊은 숨을 쉴 때 마다 폐 깊숙이 스며드는 청정한 공기가 상쾌하다고 온 몸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한 시간여를 걷는 동안 그 숲 오솔길엔 나와 아들 외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만 열린 길, 깊은 산속의 고즈넉한 오솔길이었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이오이케 (푸른호수)라고도 불리는 청의 호수와 이어지는 길을 만났다.











청의 호수, 댐공사를 위해 계곡을 막아가는 도중 발견한 장소.

흐르던 계곡이 어느 지점에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었고, 그 호수는 에메랄드빛 었단다.
물아래 가라앉은 석회석으로 해 물빛은 옥빛으로 비춰지게 됐고, 이 물빛으로 소문이 나며 관광지로 바뀌게 됐단다.

석회수 안에선 나무가 살 수 없어 지금 나무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으며 어느 날,

그 나무들이 다 죽는 날, 댐 공사는 다시 시작할 것이라니, 졸속, 성과의 공사가 아닌 기다림,

 

지켜봄의 있는 곳. 뭔가를 지켜봐 준다는 것, 그건 아름다움이다.
물빛은 들은 대로 진한 옥빛이다. 저 빛이 투명했다면 더 할 수 없이 빛났겠지만 그 옥빛은 두껍다.

물 한가운데 아직도 살아 있는 자작나무의 줄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곳에 오니 와글와글, 시끌거리는 중국인 관광객, 어서 숲으로 도망치는 게 상책, 신기한 물빛 봤으니 됐고,

다시 4.5km 숲속 오솔길로 돌아 온 숙소.
대설산 숲을 통째로 안고 돌아 온 듯, 이 뿌듯함.








오후 5시, 산중이라 그런가 밤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온천 물에 잠겨 바라보는 창문에 비친 숲, 한폭의 액자 속 그림 같다.

“엄마, 마사지도 받아 보세요.”

“나, 간지러워서 못해. 너나 받으렴,‘

‘엄마, 나도 간지러워서 못해요.“

 

그러고 보니 모자 병신.억지로 끌고 가는 바람에

 

“그럼, 머리만 잠깐”

 

주는 밥 먹기도 힘이 든다. 싫다 싫다 했는데, 살살 만지는 것과 함께 잠이 들고, 1

5분 후에 깨어 났을 땐 머리가 가쁜. 이 맛에 맛사지 받는 거구나.

모든 일정이 끝난 시간, 호텔 로비에 마련된 기념품점 앞, 영상물이 돌아간다.
마에다신조의 사진첩이다. 비에이의 사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 있다.
명상으로 끌어들이는 설원의 한구루 나무, 화면이 연분홍물감으로 칠한 듯한 벚꽃의 계절 봄,







초록물이 뚝뚝 돋는 한여름, 하늘의 뭉게구름, 가슴 두근거리는 진홍의 노을 빛,

투명한 노랑의 숲으로 바뀌는 가을의 자작나무 숲 , 두 팔 괴고 화면으로 빨려들 것 같다.

 

“엄마, 10시예요. 올라 가세요.”

 

저녁 먹고 두 시간을 꼬박 로비에 앉았던가 보다. 내가 일어서자 프런트의 직원이 또르르 뛰어와 화면을 끈다.

“아이고, 미안해라. 저 친구가 나 일어나기만 기다렸나보네.”



지켜봄이 청의 호수에만 있는 건 아닌 나라...,

그러며 또 하루,  둘째날이 가고 있었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4  (0) 2014.11.14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  (0) 2014.11.13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1  (0) 2014.11.13
詩를 쓰는 분들에게~  (0) 2014.07.16
관계  (0) 201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