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대학 1년 여자 선배의 에세이타입의 글이다.
지난 달에 아들과 함께 일본 홋카이도를 다녀와 여행기를 메일로 보내왔는데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지에서 때로는 여자로, 또 엄마로... 느꼈던
일본에 대한 생각을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풀어놓았다.
포스팅한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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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1
가까워 질 수도 멀리 할 수도 없는 심정적으로 잘 받아 들여지지 않는 나라, 일본.
그 일본의 많은 부분을 나는 좋아한다. 특히 일본 영화는 그렇다.
결코 요란하지 않고, 아주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심리를 어루 만지는 그 섬세함이 좋다.
정신없이 시류에 휘말려 변해가는 이 시대에 옛것을 소중히 다루는,
그리고 지키는 그들의 가치관이 좋다.
많이, 여러곳을 다녀 볼 기회는 없었지만, 몇 번의 여행길에서 느끼는 건,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정갈하다는 것, 소중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마을 길을 접어 드노라면 내 살던 동네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웰까?
혹시 이런 길목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나? 몇 번 고개 갸웃거리다 내린 결론,
내 어릴 때 살던 동네가 일본식 적산 가옥이 있던 은행원 사택이란 생각이 머물자, 아, 그랬구나.
그 동네와 너무 흡사한 곳이 이곳엔 그대로 남아 있구나 라는 것으로 매듭.
아직 우리 산야에 엷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시기,
홋가이도는 우리보다 북쪽이니 단풍이 절정일게라며 여행을 떠나잔다.
한달넘겨 출장에서 돌아 온 아들이 주는 선물이다.
10월 12일.
저가 항공에, 배낭을 둘러 맨 그야말로 자유여행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아침 8시 20분, 출발 삿포로행 비행기,
엄마, 아침 밥은 삼각 김밥이 나와요. 그렇구나. 저가 항공이란 게 그런 거구나.
생각보다 삼각 김밥은 맛있었고, 돈 내고 사 마시는 커피도 괜찮다.
11시 50분 치토세 공항 도착, 숙소를 잡아 놨다는 오타루로 향한다.
거미줄처럼 이어놓은 수 많은 노선들, 따라 가기만하며 되니 신경 쓰지 않아 좋다.
공항에서 오타루 도착 1시 30분. 오는 도중 차창 밖으로 보이던 바다 물빛이 맑은 날씨 덕분에 푸르고 맑다.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는 아주 먼 여행
길에 오른 듯, 설렌다. 여행 길에만 오르면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져서 좋다.
마음을 비우라고?
먼 길을 떠나세요.
굳이 힘들여 버리지 않아도 버려 지더라구요.
그래서 가벼워 진답니다.
이미 폐선된 기차지만, 도로 한가운데 선로는 남아있다.
일정의 처음 도착지는 오타루. 영화 러브레타의 촬영지.
1993년,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타’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다가 왔었다.
해맑은 첫사랑의 이야기였지만 작가이면서 감독이었던 그의 작품은 첫눈처럼 설렘과 순수로 왔었다.
눈쌓인 벌판에서 메아리 되어 돌아오던 여 주인공의 애절한 외침.
“오겡키데스카‘ (잘 지내고 있나요)
일본말을 모르던 젊은이들 누구라도 한번쯤은 뇌어 봤을 말,
맑은 수채와 같고, 투명한 수정같은 영화였다.
오타루는 러브레타의 많은 부분이 촬영된 곳이라고했다.
고풍스런 거리의 건물들, 뒷골목의 선술집 풍경등이.
한때는 홋가이도 무역의 중심지였고,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으며 금융의 중심이기도 해,
번창했던 도시의 하나였지만, 이젠 그 모든 것에서 뒤로 쳐져 버린 조용한 옛 도시로 남아 있는 곳,
물류의 수단이었던 배가 드나들던 운하는 관광객의 뱃놀이 길이 되고 있다.
운하 양 길목에 거대한 물류 창고는 개조되어 음식점이 되고 맥주집이 되고,
하지만 겉 모습만은 변화되지 않은 창고 그대로이다.
창고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덩굴에서 세월을 읽는다.
창고가 개조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날씨는 서울보다 기온이 낮다.
식탁 가운데에 화로불을 놓고, 해산물을 구워 먹는다. 따듯한 불이 마음도 따듯이 데워 주는 것 같다.
한잔 시켜놓은 맥주는 날씨가 추워서인지 당기질 않아 아들에게 넘긴다.
쓸쓸하고 외로운 가을 바다
“오후 일정은?”
“바다요.”
다시 오타루 역으로. 이번엔 천천히 역마다 서는 완행 열차다.
아주 작은 어촌 마을 간이역 아사비 도착,
벌써 스산해 지기 시작하는 것이 머지 않아 해가 질 모양이다.
바다는 바람 한점 없이 조용하다. 모래 벌에 부딪는 자디잔 파도 소리,
한번씩 날아 오르는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적막한 바다의 고요를 더해준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마을엔, 집주인 대신 마당의 예쁜 꽃들이 웃으며 길손을 반긴다.
담이 없는 작은 꽃밭이 따뜻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산길이 난 좋아’라고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시 한 귀절이 떠 오른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곳이 영화속에서 또는 드라마를 보며 그리던 그 곳이라는 것,
가끔 그래서 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오타루로 돌아 온 시간 저녁 5시.
이제 거리는 어둠에 내려 대낮의 얼굴이 아니다.
거리엔 아주 예쁜 가로등이 켜지고, 불빛으로 밝아진 거리는 몽환적인 이국의 모습으로 변한다.
저녁 6시, 운하 일주 배표를 끊는다. 나룻배는 불빛 속, 신비스런 요정 나라의 물놀이로 우리를 안내한다.
물 속에 잠겨 출렁이는 불빛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40여분의 뱃놀이에서 안내하는 청년은 오타루의 역사와 운하의 변천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내 귀에 들어오는 것은 ‘응가’라는 단어뿐,
“응가가 뭐니?”
“엄마, 응가가 아니고 웅가요. 운하라는 말.”
아가 안고 ‘응가하자’라던 그 생각이 나 ‘웅가’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웃음이 난다.
대낮이었다면 주변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겠지만, 내게 다가왔던 운하의 야경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던 불빛,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됐었던 것 같은 신비한 느낌,
뱃전에 찰랑이던 부드러운 물결소리가 남겨준 밤의 여운 같은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 와 식사, 식사 후 밤길 산책,
러브레타의 배경이던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서 있던 거리, 선술집이 있던 곳을 돌아본다.
밤 9시 밖에 안됐는데, 아주 간간이 자동차가 지날 뿐 거리엔 사람이 없다. 조용한 나라다. 조용한 거리다.
밝혀진 가로등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숙소로 돌아 와 잠긴 온천.
여행 첫날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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