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5박 6일동안 출장을 다녀왔다.
이번의 여행은 글쓴이가 소속된 NGO단체에서 미얀마 양곤시와 뚠데시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쌋산마을에 지원사업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미얀마 민주화항쟁시 도시로부터 쫓겨나면서 이곳에 터를 잡은 후손들이라
행정사각지역으로 분류되어 정부로 부터 어떠한 지원을 받지못해 극빈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인데
양곤시내 부두에서 양곤강을 한시간 가량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다.
바다가 근접거리에 있는 관계로 바닷물이 들고 나 염해성 갯뻘이 델타형식으로 이루워진 곳이라
벼농사를 1모작만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
당연히 주민들의 생활은 극심하게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남자들은 일주일에 3회 정도 양곤으로 나가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벌어오는 돈(일당 8,000원정도)으로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고 여자들은 그냥 집안 살림만 하고 있다. 딱히 뭔가 할일이 없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 어린아이들은 한집에 평균 4~5명이 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꽤나 있다.
회원들과 함께 해외 지원사업을 위해 해당지역을 방문할 때는 관광을 겸해야 참여도와 호응도를
배가 시킬 수가 있어 미얀마 북쪽에 위치한 바간지역과 인례호수가 있는 혜호지역을 3일정도 관광하고
돌아와 마지막 날 지원사업을 전개하는 스케쥴로 준비했다.
글쓴이는 이 사업을 주관하는 총무위원장이라 쌋산마을 방문 일정 협의(정부의 승인필요)와 개인적인 업무를
보기 위해 일행들과 같이 관광을 가지 못하고 3박 4일 동안 양곤시에 혼자 남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치만 출장지에서의 밤은 쓸쓸하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서로들 모여 시내관광도 하고 저녁시간에 Bar에 모여 와인도
한잔씩 하면서 회포들을 풀지만 혼자인 경우, 호텔방에서 TV만 멀뚱하게 보는 방법 뿐이 없다.
하여! 3일동안 읽을 책을 준비했었는데...
제목은 Edward Gibbon의 <로마제국쇠망사> 대광서림이 2003년에 발간한 책이다.
이 중에서 영화를 통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용들이 많아 단숨에 읽게 되었는데 흥미가 유발된
부분만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양곤부두로 부터 배로 1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오면 쌋산마을이다.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뻘밭에 접안하고
나무로 된 좁은 건널목을 통해야 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주거환경은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온통 습지. 열악한 환경이다.
마을 이장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집안 내부를 살필 수 있었는데 내부환경 역시 말할 수 없도록 습하다
옆사진은 미얀마 한인연합회에서 5년전에 세워준 마을회관 겸 유치원이며 어린이들이 공부하면서 유일하게 놀이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 지붕은 최근 한인연합회에서 양철지붕으로 개선해주어 많이 깨끗해졌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방문한
우리 회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마을회관 겸 유치원 앞 마당에서 마을이장과 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방문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뒷줄 오른쪽으로부터 네번째 모자쓰고 검은 가방끈을 맨 사람이 글쓴이고 중앙 진한 첵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는 분이
이곳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한충열 목사이다. 아이들이 자유스럽게 뛰어놀 수 있도록 마당에 시멘트 작업을 최근 완료했다.
이곳과 진입로를 제외하면 전 마을이 풀밭과 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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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관심을 갖은 것은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영화 글레데이터Gladiator 때문이다. 초반을 압도하는 게르마니아 전투 장면, 그리고 로마군
장군이었으나 가족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 채 본인은 검투사로 전락한 장군 막시무스의 비극적인 삶,
현란한 검투, 등 근래에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영화 글레데이터는 스토리 전개만 픽션일 뿐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인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로 5현제(五賢帝) 중에 마지막 황제이다.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 이상을 자신의 국가 경영에 실천하려 했던 최초의 황제였다.
스토아(Stoicism) 철학의 최고의 저서라고 일컬어지는 명상록을 게르마니아 전투 현장에서 썼는데
그것도 자기 모국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헬라어(그리스어)로 썼다.
스토아 철학자로써 황제는 평생을 근면 검소하고 금욕된 생활을 실천하였으며,
아내 이외 어느 여자와도 가깝게 하지 않았다. 아주 모범적인 남편이었다.
5현제 중 앞의 네 황제는 주변에서 가장 능력있고 덕이 있는 사람을 양자로 삼아서 제위를
물려 주었는데 이 아우렐리우스 황제 만큼은 외아들인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 주었다.
사실상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5현제 중 앞 네 황제는 아들이 없었지만 아우렐리우스 황제 만큼은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결혼 생활 23년 동안 자녀를 14명 낳았다.
그중 생존한 자녀는 다섯인데 넷은 딸이고 아들은 콤모두스 하나 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황제가 전쟁터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용맹을 떨치던 막시무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고, 자기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황제의 아들인 콤모도스는 아버지인
황제를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건 픽션이고,
사실은 처음부터 황제는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준비했다.
황제는 콤모두스가 11살부터 게르마니아 전선에 데리고 와서 전투를 경험하게 하였고
15살때 집정관이 되도록 하였으며 16살 때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공동황제로 지명함으로 유사시에 아들이 자동적으로 황제가 되도록 하였다.
따라서 병약했던 황제가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병사한 다음
18세의 콤모두스는 자연스럽게 황제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영화 주인공 막시무스 역시 실존인물로 황제를 모시고 게르만 전선에서 싸워 이기는
로마군 사령관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전투 당시에는 연대장 급 정도인 기병대장이였다.
이름은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영화에서는 발음을 좋게하기 위해 그냥 막시무스라고 한 모양이다.
실제로 막시미아누스는 179년의 게르마니아 전투에서 기병대로 우회전하여 배후를 공격함으로
적을 괴멸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적장과 일대일로 맞붙어서 한 칼에 쓰러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막시무스는 콤모두스가 황제로 즉위한 이듬해에 군단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었고
콤모두스 황제와 함께 로마로 개선한 다음 186년 집정관까지 지냈다.
영화에서 막시무스의 옛 애인으로 나왔던 황제의 딸 루킬라 역시 실존인물로 콤모두스 보다 11살 위 였다.
누나는 동생 콤모두스가 황제 위에 오른 다음, 원로원 의원 몇명과 공모하여 콤모두스를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여 역모자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이 사건이후 콤모두스는 일종의 피해망상증에 걸려 측근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어려서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며 많은 죽음을 봐서 그런지 조그만 의심만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아울렐이우스 황제와 콤모두스는 배우로 출연한 것이 아니지만 본인들 의사와는 상관없이
영화에 두 번 출연한 셈이다. 앤소니맨 Anthony Man이 감독했던 1964년도 제작한 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과 얼마전에 개봉한 <그래디에이터>가 그들의 얘기로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두 영화 다 콤모두스는 영화 주인공과 결투를 하다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콤모두스 황제는
자기의 최측근 시종으로 부터 암살당했다. 온종일 사냥을 갔다 와서 피곤한 콤모두스에게 시녀가 독이 든
포도주를 주었고 이를 마신 콤모두스가 정신을 잃은 것을 레슬링 코치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이들은 황제로 부터 의심을 받아 어쩌면 곧 처형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암살을 저지른 것이다.
콤모두스는 자기가 헤라클레스의 현신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힘이 좋고 무술 실력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콤모두스는 창 백개를 가지고 투창으로 사자 100 마리를 한 마리씩 모두 죽였다는데
한번도 창이 빗나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검투사가 되어 경기장에 나간 횟수가 735회.
당시 최고의 검투사를 진검 승부로 굴복시켰다니까 아마 영화 <로마제국의 멸망>에서의 주인공 리비우스나
영화 <그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영화에서 처럼 콤모두스를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콤모두스 황제가 암살된 후 다섯 달 동안에 네명의 황제가 등장할 정도로 로마는 혼란스러웠고
권력에 눈이 먼 정치가와 군인들 때문에 내전(內戰)이 끊이지 않았다.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의 쇠망사>에서 지적 한대로 로마는 콤모두스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멸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외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분열로 망해간 것이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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