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방조제를 찾아본다
내일 현충일이 금요일이라 연 3일이 연휴가 되었다.
조국을 위해 스러져간 영령들의 고귀한 주검을 애도하는 날이지만 마음 속으로
추모를 드리기로 하고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친구 30여명이 새만금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왕 나선 길이라 부안 특식인 백합죽을 시식한 다음 전남 고흥군 바닷가 팬션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바다향이 물씬 깃든 남도음식도 즐기면서 그동안 스트레스로 찌든 마음을 힐링하고 올 예정이다.
전체적인 여행스케쥴은 글쓴이가 기획했지만 새만금방조제에 대해 아는 지식이 전혀없어
여행전에 자료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물론 내일 아침이면 새만금방조제 전시장에서 팜프렛과
영상물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여행 전에 검색을 하고 사전지식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검색해 보니 글쓴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새만금방조제사업이 국토를 확장하여 농토를 개간,
쌀농사만 지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다름에 많이 놀랬다.
바다를 가르는 길 새만금 방조제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이라는 새만금간척사업은 총 공사 비용이 6조 원에 달한다는
세계 최대의 방조제 건설 사업이다. 4만 100㏊로 여의도 면적의 140배가 넘는 바다가
국토로 바뀌는 것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방조제를 따라 김제, 만경평야를 일컫던 금만평야를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로
새만금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80년대 시작된 사업은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려는
시민단체 중심의 사회 반대여론으로 수없는 사업의 중단과 진행을 반복해오다
2006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물막이 공사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였다.
농업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주요 곡물의 대부분이 수입으로 유지되는 지금, 쌀 생산량을 늘린다는
간조 사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시아 대륙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수없는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자연의 공기청정기인 세계적인 서해안 갯벌의 운명은 어찌되는지 궁금한 점도 두려운 점도 많다.
이 모든 걱정과 우려가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산백과를 찾아 관계자료를 업로드 하면서 그동안의 무지에 대해 많이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죽로산방에서 서pd
정의
부안~군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 33.9km를 축조하여 간척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하고 여기에 경제와 산업·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려는 국책사업이다.
‘새만금’의 유래는 김제·만경평야를 일컬어왔던 ‘금만(金萬)’을 말을 바꾸어 ‘만금(萬金)’에 새롭다는
‘새’자를 붙여 ‘새만금’으로 명명한 것에서 비롯된다.
즉 김제·만경평야와 같은 새로운 광활한 땅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1987년 12월 10일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새만금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선정하여 임기 내 이룩하겠다’고
선거공약으로 발표하여 국책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새만금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2007년 12월 27일 제정, 사업추진을 위한 법률적 뒷받침이 마련되었다.
새만금간척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 사업이며 방조제포함 전체 사업비 24조를 투입하여
40,100ha(여의도 면적 140배)를 1991년부터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개발 의도
정부는 1967~1968년 극심한 한발과 1970년대 초 세계적인 식량파동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자
1971년 새만금사업의 기원인 ‘옥서지구 농업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1975년 서남해안 일대 132개 지구 40만 5천ha의 간척 가능지역에 대한 자원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듬해 59개 지구를 개발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는 1971년 새만금사업의 기원인 ‘옥서지구 농업개발사업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1980년대 초 냉해로 인한 쌀 흉작 등 식량안보 문제가 발생하자
1987년 정부는 김제·옥서·부안 지구를 통합하여 새만금지구로 명칭하고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발표하였으며, 정부차원에서 사업의 타당성분석과 관련부처와의 협의,
환경영향평가 등 관련절차를 거쳐 사업이 시작되었다.
경과
1971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예정지를 획정하고 기본조사를 시행하였고,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경제적 타당성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환경영향평가조사와 평가서 작성을 토대로 관련부처 협의를 완료하였다.
1989년 11월 6일에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였고,
1991년 8월에 사업시행계획을 확정·고시하였으며, 그해 10월에 공유수면매립면허 취득과 고시를 하였고,
또한 11월에 사업시행 인가·고시를 함으로써 모든 행정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1991년 11월 28일에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사업을 착공하였으며
1998년 12월 30일에 1호방조제를 완공하였다.
1996년 시화호 수질오염 사건을 계기로 환경단체가 새만금사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함에 따라
1999년 5월 1일부터 2000년 6월 30일까지 민관공동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후 정부는 새만금사업을 친환경적 순차개발 방식으로 최종 확정하고 공사를 재개하자
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 종교단체, 시민이 2001년 8월 22일에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2006년 3월 16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 기나긴 법정다툼을 하였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환경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방조제 공사를 추진하면서
환경친화적인 공법을 도입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2차례 중단 끝에 다시 공사가 시작되자 같은 해 4월 21일에 방조제 최종 끝막이공사를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완료하였다. 2008년 2월에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농업용지와 비농업용지를
3:7로 조정하였으며, 2010년 1월 28일에 새만금내부토지개발 기본구상 및 종합실천계획을 확정하였다.
2010년 4월 27일에 이명박대통령과 정부부처 및 60여개 국 주한외교사절단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외곽방조제 준공식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결과
1991년에 첫 삽을 뜬 이후 2010년까지 19년 동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단체와의 마찰과
기나긴 법정소송으로 인해 2번이나 사업이 중단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대법원에서 승소하고,
사업의 당위성을 인정받아 우리나라의 기술로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를 성공적으로
축조 및 준공하였으며, 2010년 하반기에 내부개발을 본격적으로 착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새만금간척사업의 최종 규모는 40,100ha(토지조성 28,300ha, 담수호 11,800ha)이고,
사업기간은 1991~2020년(외곽시설 1991년~2010년, 내부개발 2010년~2020년)까지이다.
본 사업에서 갖춘 주요시설로는 방조제 33km, 방수제 125km, 배수갑문 2개소 등을 들 수 있으며,
현재까지 사업비는 총 5조 1,944억원(외곽시설 : 2조 9,478억원, 내부개발 : 2조 2,466억원)이 소요되었다.
지금까지 방조제 공사에 연인원 237만명이 투입되었고, 장비는 덤프트럭·준설선 등
연장비 91만대가 동원되었다.
방조제의 축조순서
① 시공전 측량 → ② 기초지반매트 포설 → ③ 바닥보호공 투하 →④ 사면매트 포설 → ⑤ 근고공 시공 →
⑥ 1차사석 투하 → ⑦ 피복석 시공→ ⑧ 내측성토사석 시공 → ⑨ 준설 → ⑩ 도로포장, 녹지구간 조성 등
우리나라 독자적인 기술로 공사가 완료된 새만금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33.9km이며,
2010년 7월에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이다. 방조제의 평균 바닥폭이 290m(최대 535m),
평균높이 36m(최대 54m)에 달하며 기술면에서도 세계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방조제 제정고(높이) 및 단면은 1,000년 빈도의 파랑에 안전하도록 배수갑문은 500년 빈도의 홍수량을
안전하게 해측으로 배제하도록 설계 및 시공되었다.
경제성과 막대한 축제재료에 따른 환경피해를 고려하여 방조제 단면은 바다모래를 준설하여 축조하였으며
제방의 안정을 위해 기초지반의 안정성과 지진에 의한 액상화,
본체의 침투분석, 파이핑, 침하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여 시공하였다.
끝막이 공사는 대조시 최대유속 7.08m/sec(조위차 6.95m)에 달하는 세계 간척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난공사였으나, 개당 최대 6톤에 이르는 사석과 돌망태를 투입하였다.
최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수심별 유속과 조류속을 측정하였고 지형변화 조사, 모델링을 하여
성공적인 끝막이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심해간척에 대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으로부터 유입되는 이상홍수량을 신속히 배출하여 내부개발지의 침수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수갑문 2개소(가력, 신시)를 설치하였다.
배수갑문 문비는 비상시 대처, 안정성, 유지관리 및 관광객의 미관을 고려하여
유압식 곡선형의 복수문비형(Double Gate)으로 만들었다.
또한 선박출입과 회귀성 어종의 보호를 위해 가력 및 신시배수갑문에 통선문을 각 1개씩 만들었다.
수문 1개당 규모는 폭 30m, 높이 15m, 무게 484톤에 달한다.
방류량은 초당 15,862톤으로 이는 소양강댐 방류량(5,500톤)으로 3배 규모이다.
의의와 평가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동진·만경강 유역의 배후지 수해상습지역 12,000ha의 배수가 개선되었으며,
군산~부안 간 거리가 66km나 단축되었다.
또한 방조제 개통으로 부안과 군산을 잇는 33km 바닷길을 통해 변산반도와 고군산 군도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웅장한 방조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삶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새만금 내부개발은 ‘동북아 경제중심지’로서 복합문화관광의 메카, 저탄소 녹색성장, 청정생태환경을 통한
미래 한국을 이끌어 갈 성장 동력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명박정부는 2010년 1월 28일 ‘새만금 내부개발 기본구상 및 종합실천계획’을 확정하였는데,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킬 ‘명품복합도시’로서 새만금을 발돋움시킬 전략이고,
복합관광·녹색성장 뉴프론티어에 걸맞도록 수질 및 환경확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새만금 조성토지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8대 용지별 개발구상을 수립하였고,
새만금의 개발동력이 될 5대 선도사업을 선정하여 전략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국내외 투자수요 창출 및 유치를 위한 체계적 마케팅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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