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동기소식지 Together지 2010년 10월호에 게제되었는데
경기도 송탄 서정리에서 개원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 쓰여진 르뽀 형식의 글이다.
동기생들의 주치의 이석수 박사
병원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실내가 넓고 밝다. 은은하게 번지는 병원 특유의 냄새,
미리 연락한 탓에 예약환자들을 미리 진료했는지 원장실에 환자가 없다.
항상 소탈한 모습이 눈에 젖어 있어 그런지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조금은 낮설어 보인다.
우리 동기생들의 주치의 이석수 원장을 만나보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김상식 총무와 김칠성,
왕윤식 친구와 같이 이곳까지 내려왔다.
순수하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찬 그의 진료실. 환자를 진료하고 그는 오늘도 쉴틈없이 바빴지만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의 삶은 항상 여유로 가득한 듯 보인다.
서울같이 각박한 도시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
이곳 사람들은 진찰을 받으면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절대 경청이고 불복종이라고는 없다고 한다.
아마 의학박사이며 신뢰도 있고 사람 좋아보이는 정다움 때문이라 그럴 것이다.
이 동네에 태어나고 자란 서정리 죽마고우들의 불X 친구. 조금만 기침만해도 쪼르르 달려온다는
어찌보면 순수함이 베여있고 정겨운 환자들만 있을 것 같은 병원.
그곳을 13년전부터 지키고 있는 우리들 친구 시골의사 이석수 박사.
우리들은 그를 가리켜 의리로 똘똘 뭉친 친구라 부른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의사에 대한 우리의 미약한 인식과 그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에 서운함이 많을 것이다.
그의 생생한 이야기 속에 자신을 위해 고마움을 베풀어준 친구에 대한 짙고 짙은 애정이
절절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자리잡기까지 강필환 친구의 도움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단다.
그도 여러 친구들에게 인술이나 금전적으로 베풀어준 것이 세일 수 없도록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독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준 우정에 저렇게 감격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간미가 넘처난다.
여러 친구들로부터 전설적으로 들려오는 얘기들...
사지가 마비되어 목만 내밀고 눈만 껌뻑되는 김칠성이를 살려낸 얘기, 친구의 內者 이동희 여사의 암수술 얘기,
독일에서 세상떠난 왕윤식 제부의 시신문제를 해결한 일, 이영길 친구 얘기는 끝도 없고, 김선용, 남관우,
이준철, 손석영 등등. 동기생 친구들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실핀 얘기를 비롯하여
그에게 신세지지 않은 친구를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친구다.
그런데도 그저 자기를 도와준 친구에게 감격하여 어쩔줄을 모르니.... 물어보자. 도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군의관으로 28사단 81연대 의무중대장으로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십수년동안 고대의왕병원을 운영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이런 저런 좋은 곳에 기부도 하고 불쌍한 사람들 도와 주다보니 자금난이 겹쳐 결국은 휴원.
사람 좋은 탓을 하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안았다.
실의에 빠져 술에 젖어있는 그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민 것은 역시 친구. 강필환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때 이 원장은 이문동에서 병원을 개원하려고 있는 돈 다 털어 어느 산부인과 병원이 있는 조그마한 건물에
재임대 형식으로 계약을 한 상태. 다짜고짜 다가온 강필환의 손에 끌려간 곳은 용하다는 역술가집.
주의깊게 사주관상과 팔자를 짚어보던 역술가 왈 “무조건 남쪽으로 가란다!”
“그래야 마음 편하고, 대우받고, 노년에 편안하게 밥 먹을수 있다”고~
뭐라고? 남쪽이라고는 내고향 서정리로 가는 길 뿐인데. 자존심 다 접어두고 고향에 가서 개원하라고???
아버지가 의사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곳에서 개원하라고 명령, 엄포(?)까지 낳았는데도 안가고 버틴 것이
20여년도 지났는데 이제와서 간다고? 그것도 서울에서 큰 병원 말아먹고???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얘기는 안했지만 눈치로 봐서는 이곳 병원을 개원할 때,
강필환이가 지원한 것이 아닌가 싶다. 편집자註)
그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과연 고향에서 잘할 수 있을까?
아니, 서울에서 등 떠밀려 이곳까지 내려와 개원한다는 것이 이곳의 친척분들이나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쓸데 없는 얘기들로 회자될까 두렵고 걱정도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기우... 이곳 초등학교 친구들의 반가운 손짓. 친척들이 쌍수들어 환영이다.
모든 것이 힘이 되었단다. 이제는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진료하겠다고 마음 굳힌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역시 盡人事待天命
너무 진부한 얘기만 물어보는 것 같아 주제를 바꾸어본다.
“고교시절에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물어보자.
대뜸 재수하면서 “정영철이 하고 상록학원에 다닌 일”과 “강필환이와 이준철이 집에 가서
밥 얻어 먹은 것 뿐이 생각이 안난다”고 한다. 글쎄 그럴까? 자기가 남을 도와준 것은 생각안나고
대학입시에 낙방하여 재수하고 남에게 도움을 받은 얘기만 기억난다고....역시 이석수 답다.
또 물어보자. 가슴아픈 얘기일지 모르지만 오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마나님 얘기이다.
마눌님 최인옥 여사. 96년도부터 여섯번이나 암수술을 크게 했단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엄두도 못낼 일.
15년여동안 부인으로서, 애들의 엄마로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본인의 심정은 그렇다치고,
그러한 內者를 쳐다보는 의사인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고 아렸겠는가!
“지금도 가사일을 비롯하여 힘든 일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내색없이 웃는 얼굴로 가정을 지켜주고...
같이 있어 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며 살짝 눈물을 비친다.
부모님 근황에서부터 자식들 얘기도 물어보자.
올해 90으로 동갑이신 이승학 아버님과 이순상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지만 노환과 뇌경색 등의 중증으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단다. 두분을 간호하기 위해 24시간 간병인이 붙어있다 보니,
본인도 멀리가지를 못하는 등
스트레스가 만땅일 터..
큰 딸에는 결혼할 생각도 없이 농협중앙회 분당서현지점에서 은행원으로서 착실하게 일하고 있고,
작년 10월에 가정을 이룬 작은딸에는 르노삼성자동차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사위와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끝으로 몇가지를 더 물어본다.
“언제까지 의사생활을 하며 동기생들에게 건강에 대해 권유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은퇴는 별로 생각 안하지만 75세까지 한 10년 정도 더하겠단다.
그 때가서 건강이 허락하고 여러가지 상황이 좋으면 은퇴할 이유는 특별하게 없을 것 같다.
그저 정많고 따사함이 묻어있는 우리네 시골의 의사로 남아있을 모양...
다시 친구들 건강에 대해 채근하면서 물어보니 “다 알아서 해라”고 한다. 그러더니 이내 거침없이 하는 말
“이 나이에 몸이 고장나면 절대로 회복되지 못한다. 아프기 전에 건강을 소홀히 하지마라~
어떠한 경우라도...” 강조하고 강조한다.
역시 이석수ek!
죽로산방에서 서pd
'내가 쓰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가 박수근과 이중섭을 만나보다. (0) | 2013.11.09 |
---|---|
골찌에서 일등! 아름답다. (0) | 2013.11.08 |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 '동경'을 찾아 (0) | 2013.10.27 |
동기생의 날에 (0) | 2013.10.27 |
10월 인사말 (0) | 2013.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