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몽家紋
옛날부터 일본인은 기물이나 무기 혹은 사냥도구나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문양을 그려왔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고 주술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무훈을 떨칠 수 있기를〉·〈많은 사냥감을 얻을 수 있기를〉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등등의 염원을 문양에 담았던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즐문토기에 줄무늬를 그려 넣거나 야요이(弥生) 시대에는 청동기에 문양을 그려 넣고 있다.
『위지 왜인전[기시와진뎅(魏志倭人傳)]』에 〈사람들은 얼굴이나 몸에 문신을 했으며 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을 때에는 이것이 물고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토착문양 외에 당나라에서 들어온 문양[카라하나(唐花)·카라쿠사(唐草)]도 보인다.
역사는 이어 견당사(遣唐使)를 통해서 대륙과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면서 영향을 받다가
견당사가 폐지되면서부터는 일본 고유의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데 문양도 마찬가지 길을 걷는다.
기존의 대륙전래의 문양과 일본고유의 문양에, 헤에안 시대에 귀족이 사랑한 풀, 꽃, 동물들의 문양이
가세되면서 일본인의 미의식에 맞는 문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른바 유우쇼쿠 문양(有職文様)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바로 헤에안 시대의 귀족들의 의상이나 가구 등에 쓰였던 문양이고 이런 기품있고 우아한
도안이 일본 문양의 기조가 되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점점 가문의 격을 나타내는 붐이 일어
귀족 사이에 확산되어 간다.
카몽(家紋)은 성[묘오지(名字)]과 관계가 깊고 카몽을 알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성(名字)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 일본에는 씨[우지(氏)]와 성[카바네(姓)]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 둘은 현재는 혼용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확연히 구별되어 있었다.
우선 우지(氏)는 친족집단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 우지를 통해 지명(地名)이나 직업 혹은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흔히 4대 성씨라고 하는 겜페에토오키츠(源平藤橘)는 천황으로부터 받은 우지이다.
카바네(姓)는 각 씨족, 혹은 개인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이것도 직업이나 격식을 나타낸다.
684년에 제정된 야쿠사노 카바네[八色の姓, 마히토(真人)·아송(朝臣)·스쿠네(宿禰)·이미키(忌寸)·
미치노시(道師)·오미(臣)·무라지(連)·이나기(稲置) 등의 8개의 성을 일컬음]에 의해 정리되었고
나라·헤에안 시대에는 카바네의 대부분이 아송(朝臣)으로 바뀌어 카바네는
급격하게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같은 우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전국에 흩어져 살게 되면서
같은 우지라도 세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것은 미나모토씨·타이라씨·후지와라씨 등에게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거처를 마련하고 있는 지방이나 저택이 있는 장소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것이 시대를 거쳐가면서 귀족이나 무가의 성으로 바뀐 것이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카몽이 되었다.
겜페에토오키츠(源平藤橘)
나라·헤에안 시대를 풍미한 명문 4가문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적인 순서는 후지와라씨, 타치바나씨, 타이라씨, 미나모토씨이다.
이들 가문은 궁정이나 정치에 깊은 관여를 하였고 한때 번영의 극을 달렸다.
그들은 공영관계가 아니라 상대를 끌어내리거나 심지어는 전쟁을 하는 적대 관계로 흥하거나 망해갔다.
미나모토씨(源氏)와 타이라씨(平氏)는 천황가의 자제, 손, 혹은 증손자들이
신적강하(臣籍降下)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황족이 우지를 받아 천황의 신하가 된 예이다.
후지와라씨(藤原氏)의 조상은 천황의 가신(家臣)이었고 타치바나씨(橘氏)의 조상은
황족을 남편으로 둔 여성으로 이른바 황족의 외척인 셈이다.
그 외에 우지를 하사받은 황족으로는 템무 천황(天武天皇)의 후예로
훙야씨(文屋氏), 헤에제에 천황(平城天皇)의 손자로 아리와라씨(在原氏) 등이 있다.
현재의 미나모토·타이라·후지와라·타치바나 등의 성은 〈겜페에토오키츠〉와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메에지 시대에 신분에 관계없이 성을 쓸 수 있도록 하고 나서 얻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겐지(源氏)는 헤에안 전기 사가 천황(嵯峨天皇)이 황태자들에게 미나모토(源)라는 우지(氏)를 하사하고
신적(臣籍)으로 내린 것에서 기원한다. 그 의미는 〈황실과 근원(源)이 같다〉는 뜻이다.
겐지와의 치열한 전쟁 후에 단노우라에서 멸문한 타이라 가문(平氏)은 캄무 천황(桓武天皇)이
손자에게 하사한 성이다. 따라서 황태자의 신분에서 하사받은 미나모토씨가 황손의 신분에서
하사받은 타이라씨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평이 있다.
후지와라(藤原)씨는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가 텐지 천황(天智天皇)으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하사 받은 성이다.
다른 3성에 비해 낮은데도 불구하고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번영의 극을 달렸다.
타치바나씨의 조상은 비다츠 천황(敏達天皇)의 혈족에게 시집간 미치요(三千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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