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이칼 호수,,,설레임의 행로 7

sunking 2015. 11. 17. 12:57

여행 일곱째날 - 9월 20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길, 환 바이칼에서 만난 바이칼 호수

리스트비안카의 아침은 싸늘했고, 대기는 청정했다.
12시 예약된 기차여행은 우리 여행의 백미, 머리 속에선 수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소설 속의 묘사들이 뒤죽박죽 뒤엉키며 살아 난다. 차창을 스치며 지나갈 아름다운
풍광들.













리스트비안카의 마지막 날, 12시 예약된 기차시간까지는 꽤 많은 여유가 있다고
했다. 마침 일요일, 러시아 정교회를 찾아 갔다. 그리스쪽의 동방교회를 연상하며
찾은 교회는 예절이 너무 낯설고 생소하다. 예배를 드리는 그들과 함께 잠시
머물다 돌아 나와 아주 조용한 시골길 같은 마을을 산책하고 돌아 왔다. 눈에
띄게 색다르고 예쁜 집들이 보인다. 유난히 창틀이 예쁜 목조건축이다. 정원에
예쁜 꽃들을 피워 낸 집주인은 누굴까? 눈길 마주치면 그 미소가 참 예쁠 것 같다.







기차를 기다리며 - 환 바이칼 선의 박물관에서>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배에 승선, 뽀르뜨 바이칼로
기차는 1시로 연발, 이유는? 여기는 러시아니까. 하지만 1시는 다시 1시 30분으로,
역시 여기는 러시아니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의 기찻길이라는 환 바이칼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기차에 올랐다. 다행히 기차 한칸은
우리 일행만을 위한 전용칸.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넷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의자.
거리는 80km지만 8시간을 기차에서 보낸다고 했다. 흐르는 호수처럼 기차도
천천히 호수가를 달린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맑고
청명한 날씨의 햇살은 호수 위에 반짝이며 쏟아져 내린다.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호수, 서서히 물들어 가는 차창을 스치는 가을 들녘, 하얗게
빛나는 은빛 억새밭,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 두기엔 내가 너무 작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가다가 아무 역이나 기관사 마음대로 멈춘다고 했다. 물론
기차가 서는 정류장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 호수에 내려가 쉴 수 있는 곳,
수영을 할 수 있는 곳등의 자연 조건이 갖춰진 곳이라곤 하지만 어느 곳에
설지는 멈추기 직전 안내 방송을 들어야 알 수 있단다. 기차는 멈추며 몇분
정도 정차할 것인지 안내가 나오고, 떠나는 시간은 기적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기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겐 이미 없어진 어느 시골의 간이역
같은 곳에서 첫 번째 정차를 한다. 이 기차엔 중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두어
칸을 차지했던지 차만 멈추면 와그르 쏟아져 나와 시끌 법석, 호수 가에
내려가 맑디맑은 물속에 손을 담가본다. 거제도의 몽돌해안에서 봤던
동글동글한 자갈돌이 호수 가에 가득이다. 엊그제 트레킹 바이칼 호수가는
모래 벌이었는데, 호수 가라는 말이 자꾸 무색해진다. 해안가라 했으면
좋겠다. ‘뚜우’하는 기적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달려 가 기차에 오르고,
나도 서둘러 기차에 오른다.













아치식으로 쌓아 올린 축대 - 이탈리아 인들의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임






오늘의 점심은 하얀 쌀밥과 장아찌, 그리고 김치. 이 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만들어 낸 도시락. 내가 지금 환 바이칼 기차를 타고 있는 것인지, 몇 십 년 전
동해남부선을 타고 있는 착각을 할 지경.
성찬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자 또다시 서서히 기차가 멈춘다. 호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작나무 숲 언덕을 오르던 곳, 숲 사이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가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선로는 호수를 따라 그린 듯이 놓여있고,
언덕에 오른 우리 일행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바이칼 구간을 제외한채  공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언덕 위에서
현장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1891년 알렉산더 3세 황제가 착공, 1900년
바이칼을 제외한 시베리아 철도 완공) 호수를 끼고 가는 구간은 깍아지른
절벽과 험준한 산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구간으로 러시아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는 유럽의 철도 전문가와 기술자들의 자문과 도움을 받으며
1905년 환 바이칼 구간을 완공했다.
하지만 이 구간이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대에 들어서며
바이칼을 찾는 관광객의 수효가 늘어나며 부터였다고 한다.
그림 속에 들어 와 있는 듯싶다. 주변의 환호 소리나 함성조차도 꿈결
같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  영겁의 순간들이 호수의
물속에서 반짝인다.
아련한 기적 소리에 다시 승차, 차창으로 스치는 깊이도 넓이도 길이도
가늠 할 수 없는 호수를 바라본다. 아득히 수평선이 보인다. 절벽위를
끼고 도는 구간에선 물 위를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기차의 휘어지는
각도에 따라 물빛도 달라진다. 창 하나가득 호수 뿐인데 요술처럼
달라지는 그 빛이 신기하기만 하다.
세 번째, 기차는 다시 서서히 멈춘다. 이번엔 예술적으로 축대를
쌓아올린 이탈리아 기술자들의 솜씨를 보기 위해. 축대 자체가
멋진 조각 같은 예술품이다. 감각이 뛰어난 그 나라의 솜씨가 이곳
바이칼 공사장에서 발휘?
이곳 구간이 얼마나 난 공사였던지를 보여주는 것으론 짧은 구간임에도
길고 짧은 터널이 39개, 이곳저곳에 세워진 회랑이 16개나 되는 것으로
증명.











난간 사이로 보이는 마을을 보세요












이 번 정차한 곳에선 멋진 다리와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
곳이라고. 포구처럼 들어 앉은 호숫가 마을은  포근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불어 댄 신호로 행여 놓칠세라 기차에
오르는 바람에 예쁜 마을 사진을 놓친 것이 아쉽긴 했지만 달리는
기차에서 억지로 잡아 놓은 장면은 상상으로 그려낼 수 있어 재미
있기도 했다.
한 낮의 은빛 물결은 서서히 기우는 해에 따라 푸르게, 진한 잉크빛으로.
노을이 잠긴 분홍빛으로 바뀐다. 석양의 하늘빛도 호수의 물빛도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그려낸다.
이르츠쿠츠의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여행의 백미, 환 바이칼
기차에서 내려선다. 휘청이는 이 느낌은 아마 스치는 바이칼에
꽤나 취했었던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