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을 나누며

이태석 신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셔요 - 울지마 톤즈

sunking 2014. 9. 20. 17:15

 

이태석 李泰錫 1962. 9.19 ~ 2010. 01.14

한국의 가톨릭 사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사제가 되었으며 아프리카 수단에서

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원주민을 위해 헌신하다 4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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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출생했으며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를 졸업 후,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살레시오 수도회와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994년 첫 서원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한 후

2000년 종신서원을 하였고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Tonj)로 향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의 남부 톤즈는 오랫동안 수단의 내전內戰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며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흩어져 황폐화된 지역이었다.

 

이태석 신부는 이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다.

 

또한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했다.

 

그의 병원이 점차 알려지게 되자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건물을 직접 지어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가 매번 창궐하자

톤즈의 여러 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한다.

 

하루 한끼를 겨우 먹는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농경지를 일구기 시작했으며,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 나섰다. 처음 초등교육으로 시작한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하였고 톤즈에 부지를 마련하여 학교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을 치료하는데 음악이 가장

좋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치료의 목적으로 음악을 가르쳤으며 예상을 넘는 효과가 있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구성했다.

그의 밴드는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탔으며 정부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게 된다.

 

2005년 그의 헌신적인 공로가 인정되어 제7회 인제인성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

2008년 톤즈 현지에서 이태석 신부와 함께 헌신하던 의사 신경숙(현 구미순천향대병원)에게

혈흔이 발견되어, 그해 11월 휴가차 입국하였을 때 순천향대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고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의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항생제를 투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은 항암치료에

잘 반응할 것이라며 완치에 대한 희망을 가졌고 또 그렇게 기도했다.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 머물며 투병생활을 했으며 수도원은 자신이 머물기에

가장 편안한 곳이라고 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며칠간 양평에 머물면서 단식과 생식으로

건강을 회복하려 했지만 증세는 나빠졌으며 결국 2010년 1월, 4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투병생활 중 제2회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을 수상했으며 그가 작곡한 묵상默想이 대표곡이다.

저서로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상의 에피소드를 집필한

에세이집<친구가 되어 주실래요-2009>를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하여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