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수출입 물류대행 회사를 운영하는 남도현님이 歷史와 戰史 부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증학적인 자료조사를 통해 관계자료를 모아 틈틈이 작성한 글입니다.
세계문화를 이해하는데(특히 戰史부분) 많은 참조가 되어 포스팅합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투 1 _ 남도현 august 의 軍史世界 중에서
예정되었던 전쟁
기원전 6세기가 되었을 때, 아케메네스(Achaemenid) 왕조의 페르시아는
오늘날의 리비아와 발칸반도 일부까지 점령하면서 3개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이렇게 거대해진 나라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각 지방마다 일종의 총독인
사트라프(Satrap)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중앙집권적 행정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복민들이 지배에 순응하면 대체적으로 관대하게 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대 세계를 재패하였던 페르시아 제국의 강역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페르시아에 의탁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독립적인 폴리스(Polis)로 존재하며 민주적인 방식에 의하여 나라가 운영되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전제적인 페르시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적대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리스의 민주 제도를 오늘날 민주주의와 평면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가치관은 상충되었습니다.
폴리스의 중심인 아크로폴리스
이처럼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음에도 원래 이 둘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랫동안 공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페르시아가 거대하게 팽창하자
상황은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절정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Darius I)가 발칸반도로 진출을 적극 시도하자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하여
문명을 이루어놓고 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당대 세계의 지배자였던 다리우스 1세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페르시아는 50여 년 동안 크게
3차(학자에 따라 2차로 보는 경우도 있음)에 걸쳐 전쟁을 치렀습니다.
바로 기원전 500년경에서부터 기원전 448년 사이에 있었던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이 그것인데 이는 세계사적으로
커다란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당대 두 문명 세계간의 역사에 기록된 최초 충돌이었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동서양 충돌입니다
3번 모두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페르시아가 군사적으로
그리스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군사적 자신감 없이 전쟁을 먼저 벌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고 더구나 멀리 원정하는 경우라면 이미 상대를 압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지만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는
3차 전쟁 당시에 무려 500만의 병력을 페르시아가 동원하였다고 기록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속에 묘사된 페르시아군
그런데 3번 모두, 승자는 항상 그리스였습니다.
엄밀히 말해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침략을 격퇴하고 방어에 성공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만일 페르시아가 승리하였다면 그리스는 멸망하였겠지만 승자인 그리스는 페르시아에게
굴욕과 망신만 안겨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전쟁으로 페르시아가 타격을 입고
위엄에 손상을 입었지만 제국이 쇠퇴하게 되는 결정적 사유는 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左)와 그리스 병사의 충돌 모습
강력한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정복하지 못하였으므로 어쩌면 전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페르시아가 패배의 수모를 갚으려
계속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국력이 대등하다면
페르시아도 그렇게 전쟁이라는 수단을 함부로 꺼내들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군사적으로 그리스를 앞서고 있었음에도 페르시아는 계속 패배하였습니다.
우리 역사에 기록 된 대부분의 승전은 귀주대첩처럼 방어전이었습니다
그만큼 계속된 침략에 그리스는 놀라울 만큼 치밀하게 대처하며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예입니다. 지리적 여건으로 우리는 수시로
외세의 도발을 당해왔는데, 굴복한 경우도 있지만 치열하게 싸워 침략자들을 물리쳐왔습니다.
그런데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 같은 찬란한 승리도 우리 땅에서
벌어진 방어전이었을 뿐이었고 외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멸망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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