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지만 굵었던 10년의 삶 2
반격의 칼을 뽑다
하지만 필리포스는 권력 암투 중 독살당하면서 생을 마감하였고
그의 유지는 불과 20세에 불과한 아들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전되었는데
그때가 기원전 336년이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부왕의 의지를 잘 알던 알렉산드로스는
사실 필리포스보다 훨씬 큰 인물이었다.
그는 부왕의 죽음을 통해서 내부의 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지 않는 한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불과 20세에 권력을 이양 받았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왕위를 노릴 수 있는 자들을 암살하거나 일거에 무력화시켰는데,
이러한 피바람은 일가친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권력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모든 이들이 비명 속에 사라져 갔다.
그는 젊었지만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당대의 대학자들에게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문화를 숭배하는 태도는
남달랐지만 권력은 잔인한 방법으로 공고히 하였다.
당대 석학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교육을 받는 알렉산드로스
하지만 권력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구축해 나갔다.
이처럼 마케도니아가 내홍에 시달리는 동안 굴복하고 있던 많은 폴리스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아테네, 테베, 테살리아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 내치를 안정시킨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이들의 제압에 나섰고,
특히 끝까지 저항하던 테베는 완전히 파괴되고 시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이제 그리스에서 반항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부왕 당시부터 꿈꾸었던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는데 그때가 그의 나이 22살인 기원전 334년 이었다.
마침내 알렉산드로스는 통일 그리스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다
이것은 지난 세기이후 쉼 없이 그리스를 괴롭혀 왔던 페르시아에 대한 복수극이었는데,
우리 역사를 반추하면 상당히 부러운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처럼 우리도 역사에 길이 빛나는 대승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 땅을 침략한 외적을 물리쳐 낸 소극적인 승리였다.
그리스처럼 복수를 위해 혹은 징벌을 위해 우리가 원정을 가서
상대를 완전히 굴복 시킨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리스처럼 침략자를 물리친 역사는 많지만
알렉산드로스처럼 원정을 가서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킨 적은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서쪽 변경인 소아시아로 건너가 이오니아 일대의
폴리스들을 해방시켰고 곧바로 시리아를 공략하였다.
위협을 느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방어에 나섰으나
이수스에서 대패하였다. 이 둘의 충돌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기원전 100년경에 만들어진 폼페이 벽화 속에 자세히 묘사되었을 정도이다.
그 여파는 대단하여 중간에 위치한 많은 도시들이 차례대로 항복하였다.
이수스 전투를 묘사한 유명한 폼페이 벽화
이때부터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3세는 장장 3년에 걸친 혈전을 벌였는데,
그것은 동서양 두 문명 세계의 격렬한 충돌과정이기도 했다.
소아시아를 거쳐 남하를 계속한 알렉산드로스는 격렬하게 저항하는
티레와 가자를 차례대로 정복하였다.
굴복시킨 적들에게 대체로 관대했던 알렉산드로스가 격분하여 점령 후
남성들은 대부분 처형하고 아녀자들은 전부 노예로 팔아버렸을 만큼
그리스 연합군의 피해도 막심하였다.
대체로 항복한 적에게 관대한 편이었지만
경우에 따라 무자비한 탄압도 있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을 제패한 알렉산드로스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로 향하였다.
이곳은 페르시아 제국의 최남단으로 아프리카, 지중해, 아라비아 일대의 물산이 집결하는
통상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이집트를 확보하면 페르시아는 많은 힘을 잃는 반면
그리스는 에게 해를 내해로 만들 수 있었다.
그동안 페르시아의 강압 통치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이 알렉산드로스를 해방자로 대하면서
정복은 손쉽게 이루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를 해방시키며 아프리카에도 흔적을 남기다
알렉산드로스는 나일강 하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아몬 신전을 참배하였다.
여기서 신의 아들임을 신탁 받으면서 오리엔트의 최고 지배자로 공인되었다.
이처럼 뜨거운 환대를 받은 그는 스스로 귀부한 이집트인들에게 자치를 허락하고
매우 관대하게 대하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만인동포관(萬人同胞觀)을 지니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제 남은 곳은 페르시아 본토였다.
-August 의 軍事世界 blog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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