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해둔 묵은 책갈피에서 아름다운 얘기를 다시 읽어보고 블로그에 업로드 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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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겨울이었지만 삶은 진정한 봄으로 마감...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배달하면서 한달에 70만원 받는 것이 전부인 김우수씨. 2011년 당시 54살이었다.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으며 결혼도 안했으니 자녀도 없고 공부도 하지 못했다.
가진 것이 없어 겨우 한명이 누울 수 있는 쪽방에서 혼자 잠만 자며 생활했다.
이 사람의 인생은 온통 겨울이다.
2011년, 오토바이로 자장면을 배달하다 승용차에 치여 병원에서 2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조문을 했으며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그 내용을 들여다보자!
고아로 자라 연고가 없던 김우수씨는 유년시절부터 줄곧 소년원에서 자랐는데 실수로 저지른
방화미수로 1년반의 징역살이를 했다. 그는 출소를 6개월 앞둔 2006년
우연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발행하는 <사과나무>라는 소책자를 보고 나눔을 시작했다.
여유가 있을 때만 남을 돕는게 아니라는 생각에 매월 3만원씩 어린이재단을 통해 기부하면서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으며, 수년전부터 4천만원짜리 보험에 가입하여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보험금의 수령인도 어린이재단으로 지정했고 사후 장기기증까지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이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했으며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아저씨를 그리워하며 애도하는 편지가 산처럼 쌓였다.
어린이들이 남긴 편지에는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해 주시던 아저씨를 잊지 않겠다.” 고
쓰여 있었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영정 앞에서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김우수씨는 가진 것을
나눔으로서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어린이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어졌으며 댓글에는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글들이 실렸다.
김우수 씨는 인생의 겨울에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더니 아름다운 마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남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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