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이영표와 이천수
어제 아침,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이영표 선수의 은퇴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는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은퇴한 비슷한 세대의 선수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흘린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동료들은 왜 은퇴를 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동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동료들이 인지하면 그때는 늦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은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며 은퇴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후회나 아쉬움은 없었다.
자신을 도와준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 표현이 있을 뿐이었다. 눈물 대신 웃음과 여유가 있었던
은퇴기자회견이었다. 자기의 축구인생을 80점을 매기고 축구를 즐긴 점수를 100점으로 매긴 그다.
기자들이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를 부탁하자
“모두 잘하고 있다. 단,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다. 좋은 사람이면 좋은 선수가 쉽게 될 수 있다.” 라고
조언하고, 한국대표팀에 “붙박이 왼쪽 풀빽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특정 선수를 꼽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하는 그다.
이어 “내 실수를 다른 동료가 뒤집어쓰기도 했고, 비겁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며 “눈에 잘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저 때문에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가며 자기반성을 하는 태도
국가대표선수로서 차고도 넘칠 덕목을 가진 선수였다.
이영표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가슴에 얹은 손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뛴 127경기는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며
“즐거워 시작한 축구지만 진정한 축구의 즐거움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말하면서
“은퇴도 지난 27년간 스스로에게 충분히 정직했기에 아쉬움은 없다.”고 한다.
취재기자의 표현처럼 잘 정돈된 말과 여유...
인생의 깊이와 신앙인으로서 겸손하면서도 진솔성을 느끼게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이 은퇴식을 말하는 마이크 앞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움과
슬픔보다는 만족과 지부심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오른발 잡이인 그가 왼쪽 풀빽으로 적응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던 이면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그 자리에 붙박이로 자리잡은 뒤,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한 선수다.
그의 부단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의 결과다.
일전 이천수 선수가 주점에서 손님과 다툼이 있은 후 자기 부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동석하지도
않았던 부인을 핑계대며 거짓말을 늘어놓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영표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축구인생에서 극과 극을 달린 두 선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인성 때문에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갈림이 되는지 비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영표가 떠나면서 많은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하나였다.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 거대한 성과는 자신만의 노력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이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는... 선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각을
가질 것을 부탁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그를 오래도록 한국 축구를 빛낸 훌륭한 선수로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국가대표 홍명보 감독과 함께 한국축구에 재능보다 인성이 먼저임을...
그것이 최고의 선수가 되는 지름길임을 후배들에게 가르켜 준 유쾌한 은퇴회견이었다.
10여년 후, 그의 인성을 본받은 후배들이 한국 축구의 중흥을 일구어내리라는 것을 확신해본
기분좋은 아침이다.
2013년 11월 15일 아침에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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