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만한 칼럼

아우구스투스 로마황제

sunking 2016. 12. 2. 15:04

아레의 글은 한국일보 미주지역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는

고등학교 2년선배 김정수 님의 글이다. 로마집정시대의 그를 발췌하여

요즈음 세태와 비교한 내용에 많은 공감을 느껴 업로드 해둔다.

죽로산방에서 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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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구스투스 로마 황제(63BC-14AD)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좌)과 영묘


로마 제국의 최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AVGVSTVS 는 임종시

병상을 둘러싼 중신들에게 묻는다. “내 연기가 어땠어?”

중신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머뭇거리자 재차 물었다.

“황제로써의 내 연기가 어땠냐고?”

인생은 하나의 연극인데 자기는 황제 역을 맡아

황제의 연기를 했을 뿐이라는 의미였다.

중신들은 그제서야 뜻을 알아차리고 “좋았습니다”라고 말하자

“배우 연기가 좋았으면 관중들은 박수를 쳐야지..”

77세 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중신들의 박수를 받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

그의 할머니가 유명한 율리어스 시저의 누님이니까 촌수로 따져서

옥타비아누스는 시저의 외손자 뻘이 된다.

그러나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아들이 없는 시저는

외손자를 양자로 입적시켜서 일찍암치 자기 후계자로 정해 놓았다.

 

기원전 44년, 시저가 원로원의 共和파들에게 암살을 당하자

당시 19살이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연합하여

이 암살자들을 무찌른 다음 유일한 정치적인 라이벌로 남은

안토니우스 마져 기원전 31년 그리스 서해안 앞 바다 악티움 해전에서

패전시켜 자살하게 만들었다.

만성 위장병을 앓고 있었던 옥타비아누스는 원래 건강에도 자신이 없었고,

양아버지 시저처럼 문장력도 없고 즉흥 연설의 재능도 없었다.

또한 장군 깜도 못되어서 전쟁을 할 때 실제적인 전투지휘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탁월한 군지휘관이었던 아그리파가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옥타비아누스가 정치적으로는 율리어스 시저보다

훨씬 한 수 위였다고 평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고

시저는 말했다. 그러나 자기의 약점을 잘 알았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 보면서 현명하게 처신하여

제국을 능수능란能手能爛하게 잘 다스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양아버지 시저가 황제가 될 욕심을 감추지 못해서

공화파 원로원 의원들에게 암살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로마의 공화정共和政을 부활시키고,

정부에 대한 모든 권한을 원로원에게 위임하였다.

그러나 원로원은 자기가 확실하게 지배하는 원로원이었다.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독재권Dictatorship을 주자

옥타비아누스는 독재권을 원로원에게 반납하고

자기는 원로원이 임명한 집정관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집정관의 임기는 종신이고 권한은 막강하였다.

자기가 수족처럼 부리는 친위대는 맘만 먹으면 정적 어느 누구도

제거할 수 있었으며, 자기가 총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세계 최강 로마군단은 원로원에 무한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였다. 그러니까 사실상의 황제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사코 황제는 아니었다.

다만 원로원에서 준 존엄자라는 뜻 즉 영어의 Authority 어원이 되는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예와 개선장군이라는 의미의

임페라토르 Imperator라는 경칭을 ‘마지 못해서(?)’ 받았을 뿐이었다.

참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짓이지만 본인은 제왕帝王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방위원장’이었을 다름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계속된 전쟁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영토를 계속 늘렸으며

동맹국을 보호하였고, 제국내의 육로 교통망을 구축하였고,

조세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제위기간 동안 내내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황제는 죽기전 자신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인생을 마감할 때 쯤 되어 자신을 돌아보니

“인생은 한 마당의 꿈” 어쩌면 자기는 한편의 연극에서 황제라는

배역을 맡은 한갖 배우에 불과했다고 깊이 느낀 것이다.

배우는 정해진 각본에 따라 감독의 지시로 연기한다.

물론 연기자는 나름대로 역을 잘 소화하여 각본 이상의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각본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연극을 망치고 만다. 연기자는 톤을 높일 수도 낮출 수 있지만

기본 대사臺詞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극이 끝나면 무대에는 다음 극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배역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이 역사이다.

 

우리가 종종 착각을 하는 것은 자기가 맡은 직위나 직책을

자기 자신의 됨됨이나 인격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이라는 배역으로, 상인은 상인이라 배역으로,

모두에게 주어진 이런저런 배역에 따라 연기를 하는 것이

인생이고 사회가 아니던가.

그래서 분명한 것은 크고 귀한 배역이건 작고 천한 배역이건,

이들은 모두가 연극을 구성하는데 꼭 필요한 배역들이고

요소인 것이다. 또한 극중에의 권력, 명예, 돈, 그런 것들은

마치 배우가 연기할 때 필요한 분장이고 소품일 뿐 정작 내 소유는 아니다.

 

김종필씨는 “정치는 허업虛業” 이라고 했다.”

생각하면 정치뿐만이 아니다.

세상 만사가 모두가 허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