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SNS을 통해서 재미난 한국사를 연재 중인 박문국님이 올린 글이다.
박문국님은 유연한 글솜씨와 탄탄한 역사상식을 기반으로 한 <5분 한국사 이야기>을 통하여
조선왕조 이야기 를 비롯하여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집필하여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가 쓴 조선왕조 이야기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상상력을 더하는
대중매체의 특성이 역사를 오인하게 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한 터라 사료 수집가의 도움으로
사료를 풍성하게 수집한 후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사실만을 더욱 쉽고 재미나게 풀언낸다.
여기에 근엄성으로 미화된 왕들의 이미지를 업적과 성격, 특징에 따라 새롭게 그려 넣어
조선의 왕들을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래의 글 이외 많은 글들이 있지만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정약용의 요동론부터 카페에 업로드 해둔다.
-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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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요동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습니다.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기에 민족반역자 소리를 많이 듣곤 하지요.
다만 이건 좀 맞지가 않는 게 당대 삼국은 서로에 대한 동질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신라는 시작부터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현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을 보는 거랑 비슷하게
서로를 파악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백제 같은 경우는 일본이랑 훨씬 친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거 가지고 백제를 민족반역자라 하지는 않지요.
그러니까 신라, 혹은 김춘추를 민족반역자로 보는 건 민족이라는 근대 이후에 발현한 개념을 무
리하게 과거로 끌어다 써서 나오는 오류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애초에 신라인들은 고구려나 백제 땅을 원래 자기 땅이라고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새로운 땅 얻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건국 이래 가장 넓은 땅이지요.
여하튼, 좋든 싫든 신라가 삼국통일전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는데 이게 좀 아쉽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저 넓은 만주 땅이 한국땅이 되었을 텐데...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을 위한 글, 정약용의 ‘요동론’입니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된 글로 의미 전달이 모호한 것만 약간 풀어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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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때는 강토를 멀리 개척하였다. 그 북부는 실위(만주 북부)에 접했고,
그 남부는 개모(산해관)에 이르렀다. 고려 이래로부터 북부남부는 모두 거란이 차지하였고,
금나라, 원나라 이후 다시는 우리 것으로 되찾지 못하였고 압록강 일대가 천연의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세종, 세조 때에 이르러 마천 이북으로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육진을 바둑돌처럼 설치하였으며,
밖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그러나 요동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나는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동은 중국과 이민족이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은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중국에 도달할 수 없고, 선비,
거란은 요동을 얻지 않으면 그 적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몽고는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여진과 통할 수 없다.
진실로 삼가고 온순하여 무(武)가 없는 국가가 요동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화친하면 사신을 맞아들이는 큰 비용과
병정을 징발하는 부역에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화친을 잃으면 사면이 적이니 병화가 없는 때가 없을 것이므로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이조(아마도 세종 세조일 듯?) 때는 명나라가 북경에 도읍을 정하여 요동과 심양의 사람들이
기내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를 엿보아도 차지할 수 없었다.
설령 요동과 심양이 오히려 여러 오랑캐에 속했다 해도
이조께서 이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척박한 황무지로 이득이 없는 땅을 얻고 천하에 적을 늘리는 행동은
영명한 군주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 당나라 때에도 오히려 주나라, 진나라 때의 옛 일을 살펴
도읍을 관중에 정한 후에 위세를 얻어 천하를 제어하였다.
고로 중국의 지략가들이 논한 바는 오로지 낙양과 장안의 우열뿐이었다.
명나라의 성조 문황제(영락제)는 세상을 뒤덮을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나
강성한 몽고와 여진을 멀리서 제어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마침내 대명부(현재 허베이성)에 귀속시켰다.
이후 중국의 주인은 이를 바꾸지 않았고 대명부는 중국의 도읍이 되었다.
이러한즉, 요동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만과 압록을 경계로 삼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강역의 형태가 혼연히 천혜의 요새이니 요동을 얻는 것은 반대로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이다.
어찌 유감으로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진실로 나라가 부강하고 병사가 강성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다툴 뜻이 있고
한걸음이라도 중원을 엿보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요동을 얻고 동으로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경계를 넓혀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우측으로 몽고와 버틴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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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200년 전에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정약용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지금이야 이 동네에 유전도 터지고 그러지만 전근대 시절에는 척박한 황무지에 불과했지요.
괜히 북방민족들이 중원이나 한반도로 들어오려고 기를 쓴 게 아닙니다.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 해도 이 땅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고구려 멸망 이후 그 땅을 차지한 건 당나라가 아니라 발해였고,
발해는 거란에 의해 멸망했지요.
물론 정약용도 위에다 저렇게 써놓고 마지막에 통쾌한 일 운운하는 걸 보면
그래도 아쉽기는 했나 봅니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건 명분이 아닌 현실론이지요.
뭐 저는 크고 아름다운 것보다는 잠시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게 더 가치 있다고 봅니다.
박문국의 5분 한국사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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