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춘천으로 여행 한 번 떠나지 않은 사람 있을까. 춘천은 추억이 어린 곳이다.
누가 춘천에 간다고 하면 다들 '어디어디가 좋아' 훈수 하나쯤 둔다. 소양강댐과 청평사, 의암호 드라이브,
공지천 카페 이디오피아를 손에 꼽아가면서. 하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2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더니, 새로운 카페와 미술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산이 호수를 품은 모양새의 춘천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화를 이루며 지어졌다. 구봉산과 공지천·의암호 일대,
소양강댐 주변 등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 돌아볼 만하다.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김유정 문학제로 여행객을 끌어모으던 작은 마을은
지난 5월 김유정 문학마을을 개관하며 새로운 관광명소의 위용을 갖췄다.
마을과 금병산 중턱을 잇는 실레이야기길을 걸을 때 짙은 녹음 아래 부는 산들바람이 시원하다.
'서울특별시 춘천구'라는 말이 있을 만큼 춘천은 가깝다. 새로운 춘천을 만나고 온 하루, 마음이 절로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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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구봉산에 간다는 말은 산토리니에 간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춘천 동쪽에 솟은 구봉산은 분지 형태의 춘천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다. 노을 질 무렵이 특히 그렇다. 소양2교와 낮고 오래된 건물이 빼곡히 메운 구(舊)도심,
구릉 사이사이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아스라한 불빛이 들어올 때면 마음이 짠해진다.
이 좋은 전망을 카페 산토리니가 독차지했다.
이젠 옛말이다. 2014년부터 구봉산 일대가 카페거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세련된 외양의 카페들이 속속 들어선 까닭이다.
그 중 인기 많은 곳이 투썸플레이스와 쿠폴라다. '프랜차이즈이니 다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투썸플레이스는 산토리니의 넓은 정원을 포기한 대신 언덕에 바투 붙여 지어 아찔한 전망을 얻었다. 그
유려한 모양새로 2014년 강원도 경관우수건축물로 선정됐다. 이곳 명물은 2층 투명 스카이워크 전망대.
직육면체 모양의 전망대가 언덕 너머로 톡 튀어나왔다. 사방은 물론 바닥까지 강화유리다.
단순히 보는 전망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전망을 실현했다.
북적이는 게 싫다면 쿠폴라로 간다. 곳곳이 포토존이다.
복층 구조의 카페로 벽 한 쪽은 일이층을 뚫어 대형 책장으로 장식했다. 전면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여름 햇살이 맑다.
카페의 마스코트는 견공(犬公) 폴라. 올드 잉글리시 쉽독 품종으로 덩치는 커도 성격이 유순하다.
야외 정원도 빼놓을 수 없다. 정원의 모서리를 따라 나란히 앉아 전망을 즐길 수 있는 2인용 테이블을 놓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단연 산토리니다. 욕심을 낼 법한데 드넓은 정원에 테이블 하나 놓지 않았다.
온전히 뛰노는 아이들 차지다. 그리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소원의 종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연인도 많다.
플리마켓이나 책맥(책+맥주) 등 주말마다 다양한 이벤트도 연다.
공지천·의암호 주변
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낸 이에게 공지천은 카페 이디오피아 집과 오리배로 기억된다.
이디오피아에서 맞선을 보면 사랑이 이뤄질 확률이 높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손꼽힌다는 원두커피를 마신 뒤 공지천에서 오리배를 타는 게 코스였다.
이 공지천 일대가 춘천의 문화명소로 탈바꿈했다. 일등공신은 상상마당이다.
본래 어린이회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2014년 KT&G가 인수했다. 건물 자체가 매력적이다.
종이비행기가 금방이라도 호반 위로 날아오를 듯한 형상이다. 건축가 김수근 작품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집안에 아늑하게 숨어 있다 나오면 햇빛이 옆으로 비쳐 들어오다가
지붕에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 오면 탁 트여 구름 같은 데서 호수와 산이 보이는
공간상의 해프닝을 테마로 삼았다"고 했다. 카페 댄싱카페인과 갤러리,
독립 디자이너들 제품을 판매하는 디자인 스퀘어 등 둘러볼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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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MBC 내에 자리한 그다방은 카페 겸 갤러리다. 들어서는 순간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두 벽면을 터서 통유리창을 냈다. 내려다 보이는 의암호가 맑고 고요하다.
널찍한 공간 안에 여기저기 놓인 조각가 백윤기의 작품이 여유롭다. 춘천 수변공원길54, (033)242-737
이제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다. 지난 5월 애니메이션 박물관 옆에 토이로봇관이 개관했다.
로봇 권투와 로봇 축구 등 체험 위주의 공간으로 채워졌다. 리모컨으로 직접 드론이나 로봇, RC카를 조종해볼 수 있다.
인기 시설은 레이저 선을 피해 미로를 탈출하는 레이저 미로와 에어건으로 공을 쏴 구멍에 넣는 에어로봇.
관람권 일반 7000원, 어린이 6000원. 월요일 휴관.
애니메이션 박물관 앞 403번 지방도는 춘천댐 방향으로 이어지는 호반 드라이브 코스다.
거리는 멀지만 빼먹긴 섭섭한 이상원 미술관을 가려면 이 길에 올라야 한다. 한적한 산골에 있으나 규모가 남다르다.
계곡을 따라 자리한 세련된 모양새의 레스토랑과 공방, 숙박시설이 자연과 조화하는 모습이 기묘하다.
원형 모양 미술관은 보름달처럼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화가 이상원은 한때 주한미군 초상화를 그리며 유명세를 탔다. 안중근 의사의 영정도 그가 그렸다.
1970년대 중반 순수미술로 전향했다. 그의 장남이 지금의 미술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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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댐과 청평사는 춘천의 상징이었다. 하여, 소양강댐 인근은 식당 천지였다. 지금은 아니다.
작년 12월 개관한 권진규 미술관은 정작 권진규 작품보다 관내 장난감 박물관이 인상적인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리자마자 영화 터미네이터 속 로봇 T-800과 헐크, 아이언맨 헐크버스터가 실물 크기로 압도한다.
스타워즈부터 마블코믹스 슈퍼히어로들, 대부, 007 시리즈 피규어 등 수백여 점 피규어들이 전시돼 있다.
과거 장난감이 한데 모인 3층은 추억을 자극하는 만화캐릭터로 가득하다.
마징가Z, 태권브이, 아톰, 건담 등 어린 시절 갖고 싶어했던 장난감들이 모여 있다. 입장권 1만원. 월요일 휴관.
해가 진 뒤라면 카페 어스17로 가자. 낮보다 밤이 분위기 있는 곳이다.
소양강을 향한 조명에 몸을 밝힌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일렉트로닉 음악과 잘 어울린다.
야외 잔디밭의 푹신한 빈백에 눕듯이 앉으면 하루의 노곤이 녹아내린다.
지난 8일엔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소양2교 인근에 개장했다. 전체 길이 174m로 투명 유리 다리로는 국내 최장이다.
수면 위 7.5m 높이에 설치됐다. 발 아래서 강물이 넘실댄다. 7월 한 달간 무료 개방. 8월부터 어른 2000원.
5년 만이었다. 김유정역에 내려 잠시 망연했다. 여기가 내가 알던 실레마을이 맞나. 역 자체가 거대한 한옥으로 바뀌었고,
인근엔 강촌행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외국 관광객과 연인들이 역을 배경으로 여름 햇살 아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을 내로 들어서면 변화는 더욱 확연하다. 실레마을은 소설가 김유정 고향이다.
한때 이를 알 수 있는 표지는 2002년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와 기념관뿐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 맞은편에 지난 5월 김유정 문학마을이 들어섰다.
공연장을 비롯해 한복체험방, 천연염색방, 도예공방 같은 체험공간을 마련했다.
김유정 이야기집은 문학마을의 중심이자 실레마을 여행의 출발점이다.
변변찮은 유물 하나 없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의 생애를 기록한 문장들이 여기 있다.
1908년생 김유정은 스물아홉에 세상을 떴다. 힘겨운 20대였다. 치질과 늑막염, 폐결핵이 발병했고, 가난에 허덕였으며,
그가 사랑한 두 여인은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 그 와중에 김유정은 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야기집에서 읽은 문장들을 가슴에 담고 실레이야기길을 오른다.
실레마을에서 금병산 중턱을 거쳐 돌아나오는 5.2㎞ 길이다.
쨍쨍한 여름 햇볕 아래 호박과 참깨, 옥수수, 고추, 표주박 등이 자라는 작은 밭을 끼고 걷다 보면 어느새 금병산 초입이다.
거기서 팻말 하나와 마주쳤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들병이는 술병을 들고 들에 다니며
농촌 남정네들에게 술 파는 여인이다. 들병이가 온다는 소문이 돌면 "나이 찬 총각들은 귀가 번쩍 띄"인다.
밤에 들병이를 데려다놓고 술을 마시다가
"고억에서 벼룩이 들끓으며 등허리 정강이를 대구 뜯어"가도, "꾹 참고 제 차지로 계집 오기만 눈이 빨개 손꼽는다.
"(총각과 맹꽁이) 그러다 참지 못하면 "돌려라, 돌려, 혼자만 주무르는 게야?" 라고 친구에게 타박을 놓기도 했다.
김유정은 스물셋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박녹주에 대한 구애가 끝내 거절당한 직후였다.
매일 편지를 썼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몰골을 "싱싱해야 할 두 볼은 꺼지고
게다 연일철야로 눈까지 퀭 들어간, 말하자면 우리에 갇힌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생의 반려)고 묘사했다.
그는 고향에서 자주 들병이들과 술을 마시며 실연의 아픔을 달랬다.
그만큼 들병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사실 김유정에게 고향이 마냥 정겨운 공간만은 아니었다. 유년 시절을 제외하면 그가 고향에 머문 시간은 3년 남짓.
그 기간 김유정이 겪은 농촌생활은 단순하지 않다.
대표작 '동백꽃'과 '봄봄'이 소박하고 정겨운 농촌을 묘사한 반면 '소낙비'나 '만무방'에서의 농촌은 가난과
출세욕으로 들끓는 공간이다. 그가 즐겨 그린 봄 역시 밝은 계절만은 아니다.
"한겨울 동안 흙방에서 복대기던 울분, 내일을 우려하는 그 췌조(悴操), 그리고 터무니없는 야심,
이 모든 불온한 감정이 엄동에 지질려서 압축되었다 봄과 맞닥뜨려 몸이라도 나른히 녹고 보면
담박에 폭발되고 마는 것"(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이다.
그럼에도 그가 시골생활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따뜻하다. '실내를 어떻게 장식하셨습니까'란 설문조사에서
"장마통에 스며든 빗물이 환을 친데다가 요즘에는 거미줄이 선까지 둘렀습니다"고 능청스레 대답할 줄 아는
그의 해학이 작품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하여, 소설 12편의 무대가 된 실레이야기길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출렁인다.
그곳은 위험천만한 바위를 기어올라 도라지나 더덕을 캐는 곳(소낙비)이며 마음에 드는 청년을 자빠뜨린
비밀스러운 연애의 장소(동백꽃)이고, 노총각 덕돌이 아내가 도망갈 것도 모른 채 장가 간다고 자랑하며
지나던 길(산골나그네)이다.
김유정은 25세에 서울로 올라갔다. 곳곳을 전전하며 글을 썼다.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됐다.
박봉자에게 구애했으나 돌아온 건 무관심이었다. 가난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막역지우 안회남에게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라며 추리소설을 번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뭇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세상을 뜨기 11일 전에 쓴 편지다.
금병산에서 내려와 김유정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금병의숙 터와 코다리찌개에 막걸리를 먹었다는 주막 터를 지난다.
실레이야기길의 끝이 다가온다. "더워질사록 저는 저 시골이 무한 그립습니다.
물소리 들리고 온갓 새 지저귀는 저 시골이 그립습니다. 우거진 녹음에 번듯이 누어 한적한 매미의 노래를 귀담아 들으며
먼 푸른 하늘을 이윽이 바라볼 때 저는 가끔 시인이 됩니다.
"(1935년 강로향에게 보낸 편지) 그가 그리워한 실레마을에 한여름 햇살이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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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맛집
채소·고구마·떡 함께 볶는 철판 닭갈비… 닭고기 육질로 승부하는 숯불 닭갈비
닭갈비 춘천하면 닭갈비다. 닭갈비에도 종류가 있다. 철판 닭갈비와 숯불 닭갈비. 철판에 채소와 고구마, 떡 등을
함께 볶아내는 철판 ㅇ닭갈비가 대중적이라면 양념에 잰 닭고기의 육질과 숯 향으로 승부하는 숯불 닭갈비는 소
수의 매니아층을 거느린다. 대체로 철판 닭갈비는 맛이 표준화돼 있는 편. 닭갈비 자체보다 우동, 떡, 고구마 등
입맛대로 추가할 수 있는 온갖 사리의 향연이 더 즐거운 음식이다.
명동우미닭갈비는 춘천시민들이 즐겨찾는 곳 중 하나다. 닭갈비 1인분 1만1000원.
상호네 닭갈비 별관은 숯불 닭갈비로 유명하다. 숯불 특유의 향과 담백한 맛의 조화에 입맛이 절로 돈다.
양도 푸짐한 편.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된장 소면(2000원)도 독특하다. 된장찌개에 소면을 담아낸다.
닭갈비 1만1000원. 남춘천역에서 가까워 여행 전 듬직하게 배를 채워도 좋겠다.
막국수 춘천까지 와서 시원한 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청평사 쪽으로 길을 잡았다면 유포리 막국수로 간다.
고기 육수가 아니라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고명은 김가루와 고춧가루, 깻가루 등을 섞은 양념이 전부.
그만큼 담백하다. 면발 자체는 약간 거친 편. 대신 메밀 향이 고소하다. 6000원.
시내의 남부막국수는 유포리 막국수, 강릉 동해 막국수와 함께 강원도 3대 막국수 집으로 손꼽히는 곳.
고춧가루와 무절임, 오이채, 설탕 등을 고명으로 쓴다. 진한 육수가 입에 착 감긴다. 6000원.
빵집 구봉산 카페거리에 들렀다면 라뜰리에 김가에 가자. 대다수 카페가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 정상에 모인 반면 라뜰리에 김가는 구봉산 초입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도 주차요원이 상시 대기할 만큼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인기 메뉴는 까망베르 먹물식빵(6000원). 폭신하고 부드러운 빵 속에 까망베르 치즈와 롤치즈를 넣었다.
베리베리밀순(5000원)과 빵공장모카크림빵(7000원)도 많이 찾는다. 이곳 인기에 힘입어 최근 원주에 2호점을 냈다.
공지천가에 있는 피스 오브 마인드는 이탈리아 빵 그리시니와 포카치아가 맛있기로 소문났다.
김종헌 전 남영비비안 대표이사가 아내와 함께 차렸다.
그간 모은 책과 음반, 서화, 골동품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김우성 여행작가 - 조선일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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