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만한 칼럼

영화 '명량유감'

sunking 2014. 10. 21. 05:48

아래의 글은 카나다에 거주하는 친구가 메일로 글쓴이에게 보내온 글이다.

카나다에서도 영화 '명량,이 상영된 모양인지 영화감상 후, 느낌을 디테일하게 열거하면서

관객이 이해되지 못하는 역사왜곡과 돈벌이에 연연한 제작팀에 대해 신랄하게 비평했다.

영화제작에 관계한 사람들과 작가, 연출자, 출연자들이 곰씹어 들어야 할 얘기들이 많이 있다.

 

글쓴이는 영화 '명량'을 보지 못해 어떻게 역사가 왜곡되고 연출되었는지 잘모르겠지만 

感으로는 카나다 친구의 글에 공감을 표하고 싶다.

 

요즈음 영화는 컴퓨터그라픽에 의존하는 비중이 많아, 장면 장면마다 스케일이 커보이도록 

몽타쥬기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영화기법을 사용하는 터라, 피가 터지고

화살이 관객 쪽으로 날아오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상상에서나 나올 수 있는 장면들,

즉 흥미가 우선인 작품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정작 작가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가 간과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영화대본을 집필한 작가는 애초에 의도한 내용보다 흥행성을 올리기 위한

제작팀의 요구로 역사를 왜곡하는 점에 죄의식(?) 없이 많이 수정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관에서 상영한 '명량'을 보지 못해 유감이지만 VOD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카나다 친구의 칼럼을 유추해 볼 것이다.

 

죽로산방에서 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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鳴梁有感

영화 ‘명량’ 이순신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 한힘 심현섭

 

 

역사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화석처럼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특히 오늘날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와 같은 창작물은

더욱 더 현재의 입맛대로 과거를 재단하기 쉽다. 일찍부터 역사물에 대한 창작을 어디까지

인정해야하는지 논란이 많았다. 기록되어 익히 알려져 있는 역사적인 사실은 사실대로

배경에 깔면서 마치 주인공이 담장을 돌아가면 그 다음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

뜻있는 사람들의 공론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창작하더라도 보이는 부분의 뜻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역사물을 드라마화하면서 창작예술이라는 구실로 마구잡이 재미 위주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당장 대중을 속일 수는 있어도 다시 역사를 속이지는 못하게 된다.

역사를 속이지 못한다는 뜻은 두고두고 천착될 수 있는 고전적인 작품에서는 멀어진다는 말이다.

 

영화제작은 하나의 거대한 종합예술인 동시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다.

흥행이 되어 이익이 남느냐, 못 남느냐가 제작 과정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하냐, 충실하지 못하냐가 제작자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흥행이고 흥행에 성공하면 어떻게 만들었건 성공한 셈이 된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은 과거의 영세한 체제에서 벗어나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제작 배급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품은 수제 작업이 아니라

고도의 영화기술을 갖춘 기술자들에 의해 공장에서 만들어지듯이 대단위 공장 제품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사상 1700만 이상 최다관객을 동원하면서 영화 명량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대성공의 팡파르를 울렸다. 기록적인 흥행을 올리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조차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영화이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했는가 하는 궁금증이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게 만든다.

 

필자의 입장에서도 종래 있었던 많은 이순신 영화에서와는 다른 신선한 주제와 고도로 발달된 해전장면,

충무공의 열정을 새롭게 맛보게 되려니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재미와 감동이 아닌 괴로움으로

지루하고 힘들게 영화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순신에 관해서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이

거의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한국에서는 세종대왕과 함께 민족적인 영웅으로

주인공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연 염두에 두지 않는 듯이 보였다.

명작 영화의 기준은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또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라고 단정한다.

보고 있는 동안에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라면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돈을 벌었건 말았건 상관없이 처량해 진다.

 

이 시대의 리더십의 갈망, 이순신을 영웅화하기 위한 기획,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을 명량대첩을 통해 씻어보려는 의도가 이 영화에 있다고들 한다.

이런 엉터리 같은 기획으로 그런 의도가 제대로 표현되었다고 누가 보겠는가!

 

● 첫째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무엇을 했기에 승리를 가져 왔는가 관람자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를 다 죽이려고 하느냐는 부하장수들의 항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로 일관하고 있다.

속에는 비장의 전략이라도 있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계속 속으로만 있었는지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명량해전은 지리적인 조건과 지휘관의 투철한 전투의식, 전략개념과 함께

유능한 장수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이룬 승리였다. 그런 내용이 하나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 회령포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취임식을 갖고 명량으로 출발당시 이미 배설은 도망가고 없었다.

없는 배설을 앉혀놓고 바락바락 대들게 만들더니 적전에서 지휘관을 암살하려고 기도하고

가장 중요한 함선인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다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이순신에 대해서 알만큼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순신을 죽이기까지 하려한 배설의 암살 동기가 전연 없을 뿐만 아니라

난데없이 다 만들어 놓은 거북선은 왜, 왜 불까지 지르면서 없애려 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없는 일까지 구태여 지저분하게 만들어 가면서

한국민족은 내부적으로 단결할 줄 모르고 남의 침략을 당하면서까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한심한 민족으로 만들 필요가 어째서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분노가 앞설 뿐이다.

혹자는 말할 수 있다. 그건 창작물이라고.

처음부터 거짓으로 만든 드라마를 가지고 흥분할 필요 없다고 뒤로 물러설 것이다.

이순신은 거짓으로 만들 수 없는 성스럽기까지 한 위대한 역사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 이순신이 타고 있는 기함은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가장 중요한 함선이다.

이 배에 적의 병졸들이 올라타서 사령관이 직접 칼을 휘두르며 백병전을 치른다.

이런 상황이 현실이라면 이미 그 전쟁은 진 것이다.

사령관이 얼굴에 피를 묻히며 싸워서 결국은 대 승리를 이끌었다는 설정이 삼척동자도 웃을 만큼 유치하다.

이렇게 해서 이순신이 세계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승리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기함이 회오리 물결에 쓸려서 백성들이 나서 구해주는 장면은

도대체 이순신을 어떻게 보라는 말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조선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함선이 견고한 판옥선을 가지고 있었고, 함포가 왜수군보다 월등하게 우수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고 함포로 공격하면 왜수군은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가진 조총이나 활은 함포의 거리에 미치지 못했다.

이순신은 이런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좁은 해협에서 자신이 싸우기 유리한 위치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선과의 거리를 함포 거리에 맞추어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이순신은 명량의 빠른 바닷 물길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 그의 전략의 뛰어난 점이었다.

물론 가까이 접선이 되면 당파를 해서 견고한 판옥선이 작은 왜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깨트리는 작전도 썼다.

 

● 왜군 장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날카로운 눈초리와 표독한 표정연기로 일관했다.

그들도 함선에서 하는 일이 없다. 지휘관이 표정만 잡는다고 전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해서 왜군은 대패하고 돌아갔는지 마찬가지로 관객은 별로 이해가 안 간다.

왜군들의 얼굴은 말짱하고 이순신을 비롯해서 조선 장수들은 모두 유격훈련 나가는 군인들처럼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있다. 사령관인 이순신은 어찌해서 얼굴이 시커매 질 상황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순신 역의 최민식은 대사도 많지 않다. 비장한 표정이 다다. 그 역시 흥행이 성공해서 개런티를 많이 받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금은 실감나게 해전을 표현한 것이 종래의 영화와는 비교되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이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흥행 실적을 거두었다.

한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영웅을 팔아서 돈을 벌은 셈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관객들은 잘못된 편견을 새롭게 갖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오죽하면 배설의 후손들이 나서서 역사왜곡을 질타하고 명예훼손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겠는가.

흥행이 다가 아니라 진정 작품성을 완성시키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배어 있어야 훗날 기억될 수 있는

명작 영화가 되리라 본다.

흥행에 성공하려면 역사의 주인공을 팔아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되겠다고

다들 흉내낼까 걱정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이순신을 이상하게 만든 영화가 흥행에는 기록적인 성공을 했다는

아이러니에 쓸쓸함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