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의존했던 방법은
기존에 있던 지도와 지리서들을 연구하고 그 장점들을
두루 모아 집대성하는 것이었다.
김정호의 벗이며 지원자였던 것으로 알려진 철학자
최한기는 [청구도] 머리말에서 “나의 벗 김정호는
소년 시절부터 지리학에 뜻을 두고 오랫동안 자료를 찾아서
지도 만드는 모든 방법의 장단을 자세히 살피며,
매양 한가한 때에 연구 토론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정호의
작업 방법에 대한 힌트를 남겼다.
그 외의 기록들에서도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고, 여러 지도를 대조하고 지리지들을
참고했다는 내용뿐이다.
[조선어독본]에서는 김정호 이전의 지도들은 그 내용이
부정확하고 형편없었다고 하나 사실 조선은 지도학이
매우 발달한 나라였다.
최남선도 [별건곤]에서 조선을 유사 이래 지도학이 특별히
발달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고구려의 영류왕이 당나라에 고구려 지도를 보낸 일이 있고,
고려 성종이 고려 지도를 요나라에 보낸 일들이 전한다.
최남선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도학은 더욱 발전했다.
세종 대의 천문기술이 조선의 지도학 발달에 도움을 주었으며,
세조 때에는 규형, 인지의 등의 기구를 발명하여 지형을
측량했다. 또한, 1931년 정인보가 [대동여지도]에 대한 글을
동아일보에 발표했는데, 이때 정인보는 조선 지도학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 나흥유, 양성지, 윤영, 정상기, 홍대용, 신경준
등의 인물을 거론하며, 그 발달선 상에 [대동여지도]를 두었다.
김정호는 이들의 성과를 집대성해 우수한 완성품을 만들어낸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신분이 낮았던 김정호가 지리학의 고급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최한기와 신헌 등 그의 지도 제작에 도움을 준
후원자의 덕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최한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정호의 벗을 자처했던 인물로,
지도와 지리에 관심이 많아 [지구전요]라는 세계 지리책을 쓰고
김정호와 함께 [지구전후도]라는 세계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