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과 사진은 저와 같이 홍대에서 같이 그림을 그렸던 여자 친구가 쓴 글입니다.
6년전 사랑스러운 손녀 딸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이 봄에 진달래 꽃을 보고 느낀 기분을
이메일로 보내왔습니다. 배경음악이 약간 청승스럽지만 글과 잘 어울리는 것 같해 그냥 올렸습니다.
적성에 안맞으시면 음악을 끄고 글과 사진만 감상하십시오
아름다운 글귀 속에 소롯이 묻어있는 애잔함이 마음을 짠하게 해줍니다.
꽃망울들이 터진다고 우리들은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 향취를 즐기지만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그 꽃을 보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귀 귀울여 이 분홍꽃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진달래, 이름도 참 예쁩니다. 수줍은 촌색시 같은 연분홍 꽃잎, 햇살이라도 받을라치면 그 투명한 꽃빛이 분홍이 아닌 주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 얕으막한 산과 언덕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꽃, 야트막한 야산이 제격이지요. 깊은 산 중엔 큰 나무 그늘이 어두워서인지 동네 뒷산만큼 무리지어 피어 있지는 않는답니다.
저는 진달래 소식을 기다리려면 봄이 오는 발길 마중하기에 목이 빠질 것 같습니다. 이산 저산으로, 분홍 꽃망울을 찾아 헤매곤 한답니다.



기억하시나요? 손녀 아이와 함께 요양병원에서 봄을 맞았던 적이 있었던 것을. 링거를 꼽고, 침대에 누워 하루 하루를 보내는 아이와, 뒷산으로 앞산으로 터지는 꽃망울을 찾아 산길을 한바탕씩 돌고 있는 나.
제비꽃이 피고, 하얀 냉이꽃이 피고, 얼마후 숨어들듯 피어있던 꽃 한송이, 살폿이 봉오리를 열고 있는 진달래였습니다.
살그머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 산보 갔다왔어.”라는 아이. “진달래가 폈어.” 기운없이 날 바라보던 아이, “이뻤겠다.”


왜 그렇게 미친듯이 그 봄, 그 꽃을 찾아 다녔던지요. 그 해따라 봄빛은 왜 그리 눈부시게 아름다웠던지요. 꽃이 피면 꽃소식과 함께 내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 날 것이라고? 차마 그것은 아니었겠죠.
그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숨이 가빠, 그렇게 모른척 꽃을 찾아 나서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봄이 지나고, 여섯 번째의 봄을 맞습니다.


오늘 진달래 능선을 찾았습니다. 온 산이 연분홍 진달래로 덮였습니다. 이 길을 찾을 때면 혼자가 제 격입니다. 산길을 걸으며 말을 한다는 건 힘이 듭니다. 혼자서, 숨도 고르고, 내 보폭도 다듬고, 피어있는 꽃들과 얘기도 나누고, 유난히 사랑스런 애들에겐 눈도 맞춰 줘야 하고, 그러다 보면 말을 해야 하는 친구는 이 길에서 도리어 부담이지요.


찾아 줘서 고맙다고, 피어줘서 고맙다고 서로 고마운 인사를 나누죠. 이제는 눈물 없이도 잘 지내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너희들이 피어줘서, 그리구 만나러 걸을 수 있어서 난 행복하다고 얘기해 줍니다.


바람에 살짝 꽃 잎 흔들며 한 녀석이 배시시 웃습니다. “행복하단 말이 그런데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리지?” “너는 슬프니?” 아니랍니다. 제 눈엔 그 여린 꽃잎이 그리도 가슴 아프게 보이는 데, 아니랍니다. “네가 내게 슬퍼 보이듯이 내가 너희에게 쓸쓸해 보이는 지도 모르지.” 뭔가 들킨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하기도 합니다.
진달래가 쓸쓸했나 봅니다. 내가 슬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나의 아픔을 너의 아픔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처럼 지나갈 봄날의 꽃길에서, 안녕이란 인사가 쉽지가 않습니다. 갑자기 남도의 육자배기 가락이 입가에 맴돕니다. 이 꽃길도 한바탕 꿈이라고, 노래는 얘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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