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짙푸르다. 물기 없이 보송보송한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한껏 숨 들이마셨다.
이리 맑고 깨끗한 날이 얼마 만인지. 이른 아침 서울을 떠나 한낮 부산 송정해변에 섰다.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즐거운 반전(反轉)이다.
현충일 연휴 근무 조(組)여서 6월 2일 미리 나만의 연휴를 냈다.
해운대·송정·송도가 전국 맨 처음 해수욕장을 연 이튿날이다. 활처럼 휜 1.2㎞ 백사장이 한적하다.
외국 여인들이 비키니 입고 엎드려 볕을 쬔다. 수영하는 이는 한둘뿐이다. 평일인 데다 선선하다.
서울 낮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갔지만 부산은 24도에 그쳤다.
대신 검정 고무 옷 입은 서퍼들이 점점이 떠 있다. 수평선 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파도가 오자 재빨리 몸을 돌려 보드에 오른다. 파도를 타려고 일어서지만 대개는 곧바로 넘어진다.
몇은 멋지게 미끄러지며 해변까지 나아간다. 참 젊다. 여자아이가 돌고래 모양 튜브를 물가로 끌고 간다.
튜브에 올라타 언니·오빠 서퍼들 흉내를 낸다.
송정해변을 걷기에 앞서 남쪽 분식 가게 송정집에 들렀다. 아담한 단층에 상큼한 민트색을 칠했다.
문 연 지 15분 지나 오전 11시 45분에 도착했다. 벌써 사람들이 기다린다. 대기표가 25번이다. 1
년 전 낮 2시 넘어 처음 왔을 때도 한참 기다려야 했다.
깔끔한 대기실에 황갈색 가루 담긴 상자와 보온병이 놓여 있다.
누구나 타 마시게 하고, 담아 가라고 비닐봉지도 뒀다. 정미(精米)할 때 나오는 고운 쌀겨다.
이 집은 정미기를 갖추고 매일 아침 그날 쓸 쌀을 찧는다. 전기밥솥 열 개엔 따로 타이머를 달았다.
밥이 다 되고 한 시간 반 지나면 신호가 울린다. 그 밥은 팔지 않고 직원들이 먹거나 누룽지를 만든다.
갓 찧은 쌀로 갓 지은 밥은 그 자체로 진미(珍味)다.
벽엔 주인 휴대전화 번호를 내붙였다. '만족하지 못한 분이 문자 남기면 고치겠다'고 썼다.
50분 만에 번호를 불러준 종업원이 밝고 반듯하게 인사한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차림은 2800원 하는 김밥부터 만두·국수·비빔밥까지 여덟 가지다.
둘이서 음식 셋을 시켰다. 작년 것까지 모두 여섯 가지를 맛봤다.
면발도 가게 제면실에서 뽑아 3단계 온도로 세 차례 숙성시킨다.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써 붙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예순한 살 장석관을 만났다.
그는 몇 년 전 동업을 접으면서 모든 식당에서 손을 뗐다.
그중 열세 명은 '오너 셰프' 수련을 하고 있다. 장석관이 고안한 식당 경영 실습 과정이다.
장석관은 요식업도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