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만한 칼럼

연금천국이라는 그리스 왜? 이 지경까지...

sunking 2015. 7. 12. 08:31

연금 천국이라는 그리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

남정욱 _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글을 쓰다 보면 종종 겪는 낭패가 비슷한 소재를 누군가 나보다 먼저 쓸 때다.

구상하는 단계에서 유사한 논조의 글이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마감 앞두고 거의 다 썼는데 같은 소재의 글이 나오면 눈앞이 캄캄해진다(정말 밉지만 대부분

소생보다 잘 쓴 글이어서 할 말은 없다). 이번 칼럼도 그렇다.

그리스 사태를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게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이었다.

그 나라가 가는 꼴이 딱 안개 속이었다. 그 영화를 빗대 그리스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제목까지 '안개 속의 풍경'으로 달아 먼저 글을 썼다.

 

원칙대로라면 '엎는'게 맞지만 이번에는 그냥 쓴다. 왜? 나는 자격이 있으니까.

'안개 속의 풍경'이 국내에 개봉될 당시 홍보 마케팅을 담당했던 게 소생이다.

어떤 영화였는지 가물가물해서 다시 보려고 뒤졌는데 OST(영화 사운드 트랙)만 찾았다.

그걸 틀어 놓고 이 글을 쓴다.

 

하여간 무지하게 지루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영화사 사장이 필름 마켓에서 영화를 사오면 담당자들은

질릴 때까지 몇 번이고 돌려본다. 어떻게 홍보해야 관객이 들겠는지 연구하는 과정인데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영화였다.

 

예술 영화들의 특징이 있다. 일단 길다. 러닝 타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카메라가 촬영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를 '테이크'라고 하는데 어떤 영화는 2시간 동안 테이크가 열세 개만 나오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대개 생각하거나 걷는다.

주인공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는 주인공만 안다(이게 상업 영화와의 차이점이다.

상업 영화는 주인공이 뭔가를 무지하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그리스 사태는 간단하게 말해 연금 덜 받으라는 얘기다. 사실상 내정 간섭인데 이 요구가 정당한 것은

그리스 정부가 이 연금을 빚내서 주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 벌어 낸 세금을

그리스 사람들은 태연하게 받아 쓴다.

 

그리스는 연금 천국이다. 사망자에게 연금이 지급되는 건 기본이다.

100세 이상에게 주는 연금도 거의 만 명이 타간다. 가장 웃겼던 건

택시 기사가 장애인 수당을 받기 위해 맹인 행세를 한 거다.

이런 나라를 살려주자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필요 없다며 뿌리치는 게

지금 그리스 국민 투표다(반대표 많이 나왔다며 환호하는 저 청춘들은

대체 지능이 어느 수준이란 말인가).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운명을 가진다.

그리스는 국민 수준과 정치인의 수준이 제대로 궁합이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이란 게 만들어지고 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동네 사람들끼리 아마추어 상품을 만들면 정부가 세금으로 그 상품을 구매해주는 거다.

지역 활동가들만 먹여 살리는 게 사회적 경제다.

 

이 법안이 국회 를 통과하면 청와대로 간다. 대통령께서는 당연히 반송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때도 지금 국회법처럼 '왜'는 쏙 빼 버린 채 행정부와 입법부의 힘 겨루기로 왜곡되고,

언론들이 그렇게 쓰고 국민이 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도 얼마 안 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개 속에는 그리스가 기다리고 있다. 안개 속의 풍경은 길고 지루하고 춥고 음산하다.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