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문학 詩 당선작에 대한 小考
대학로에 문화교양학을 전공하는 학우들끼리 베스트란 학습공간을 통해 자주 만나는 스터디 그룹이 있다.
글쓴이가 이 스터디에서 공부한 것은 3년전이지만 지금도 정기모임이나 후배들을 영입하게되는
신년초에는 선배로서 가끔 초청을 받아 강의를 하곤 한다.
지난 2월 중순, 이 스터디그룹의 신년교류모임에서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던
후배가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수줍게 책 한권을 내민다.
지난 해 아람문인협회에서 공모한 신인작품상 詩부문에서 입상한 작품이 2013년 겨울호에 실렸다며
“부끄럽지만 선배님에게 드리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이 후배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문화교양학을 전공하면서 어릴적 고향 제주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詩란 장르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용기있게 기성 문단을 두드려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문협의 정회원으로 데뷔하는
기쁨을 만끽했다. 예쁘고 아름답다.
지천명의 나이도 넘었고, 인문학을 공부한 것도 일천하기까지 하고,
가정의 살림도 도맡아야 하는 가정주부로서 모든 일이 버거웠을 터...
그 용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성격이 차분하고 인물도 예쁘고 정감이 흐르는 사람이라 그런지 글의 결도 곱고,
글 맵씨도 물이 많이 올라 詩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심사위원들이 쓴 평이 따로 있으니 내가 논할 바는 아닌 것 같아
생략하고 당선작 세편과 심사평을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문단데뷔하는 후배에게 축하의 인사로 예의를 갖춘다.
신인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아람문학 겨울호
산담
김양희
서른 평 봉분
감싸안은 현무암 산담
화폭의 낙관인 듯 반듯하게
너른 밭에 눌러 찍은 담장이다
이승을 하직한 혼백
산담 좁은 문으로 들어
나올 줄을 모른다
그 문 걸어 잠근 이 없는데도
다시 나올 줄을 모른다
산담에 걸터앉아 목메게 불러도
못 들은 척 기척이 없다
산담이란 그런 거
삶과 죽음을
서른 평 담장으로 배웅하는
서른 평 담장으로 마중하는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대궐
저승에서 누리는 호사
이따금 산담 안을 기웃거리며
오늘
내 삶의 거울을 비추고
내일
내 발걸음 내디딜 길을 정하려 한다.
오래된 우물
김양희
동네 한가운데
그 정갈한 터에 오래된 우물이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한가득 담아가는 두레박에
하루에도 몇 번씩 물 허벅이 나들이를 합니다
철철 넘치도록 맑은 물이
하늘을 이루어 구름이 지나가고
빨래하는 아낙들
방방이 소리가 메아리로 다녀옵니다
언제부터인가
깨진 항아리처럼 날을 세우지 않아도
외진 곳에서 덩그러니 인적이 끊겼습니다
아낙들 방방이 소리도
우물 안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
오래된 우물은
폐물이 되어 발길 끊긴 지 오래입니다
우물처럼 한세월을 보내고 나면
우리네도 인적이 끊길 것입니다
진이 빠져 버린 고목처럼
지친 날개를 접으러 오는
새들만 잠시 머물다 갈 것입니다.
正歌
김양희
반딧불이 오색등
저녁노을로 흔들릴 때
대금을 닮은
오장육부 휘돌아 흐르는 소리
목소리를 닮은
대나무 속살 타고 흐르는 선율
저리도 슬피 들리는
대금과 목소리
저리도 청아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대금
전생에 한 몸인 것을
내생에 다시 한 몸으로 만나다.
正歌_국악의 한 장르
심사평 | 시인 수필가 이동백 | 시인 권영금
시에서 낯선 소재를 잡았을 때, 그 시는 흡인력을 지닌다.
김양희님의 詩에 쓰인 소재가 제주도 것이어서 그것 자체로 그의 詩는 흡인력으로 작용한다.
우선 <산담>이 그러하다. ‘산담’은 제주도 무덤을 둘러싸는 돌담장이다. 시적 화자는 ‘산담’을 바라보며
인생을 성찰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술이 범상치 않다
<오래된 우물> 역시 산담의 연장선상에 놓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고 <정가>는 국악의 하나를 소재로 삼아,
그 ‘정가’가 담고 있는 내밀한 뜻을 좇아 쓴 작품이다. 낯선 소재에 거는 기대에 맞게 흡인력있는 작품들이다.
꾸준한 정진으로 대성하기 바란다.
당선소감 | 김양희
아무도 가지 않은 새벽 눈길에
첫발자국을 남기는 기분으로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
옹달샘에서 첫 이슬을 만나는 기분으로
시를 공경하고 사랑하며
겸허하게 쓰려 합니다
시는 가장 낮은 사랑의 노래랍니다
그 노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이기도 합니다
무거운 침묵을 가르는 전화벨 소리로
제 마음에 떨림을 주신
처음으로 시인이라 불러 주신
아라문학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의 이 설렘과 즐거움, 행복을 잊지않고
시와 친구가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김양희 | 제주출생
2013. 아람문학 겨울호 등단(詩부문)
현 아람문학(문협) 정회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재학
아람문학은 2006년 아람문학 문인협회를 창립하고 계간지 아람문학을 창간하였다.
창간기념과 함께 신인문학상을 제정하고 매년 신인발굴과 등단을 시키고 있다.
2014년 봄, 계간지 아람문학 통권 33호를 준비중.
지난 2월 15일 제9회 아람문학 신인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