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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事唯心

sunking 2013. 11. 3. 20:25

 

글쓴이는 책을 보면서 좋은 문구가 있을 경우는 항상 밑줄을 그어 놓는다. 더 나아가 좋은 칼럼이나 내용이 마음에 와 닿으면 타이핑을 해서 잘 보관해 둔다. 그렇게해서 모아둔 글들이 상당히 많다.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글쓴이의 블로그에 하나하나씩 정리해 둘 생각이다.

아래의 칼럼은 아주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간 선배 한분이 중앙일보 미주판에 게재한 글이다. 요즈음 같은 가을에 마음을 추스릴겸 하다가 문득 생각나 책갈피에서 찾아보았다. 다시 읽어보아도 가치성이 있어 업로드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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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

요시다 에이지(吉田英治)의 소설로 유명한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라는 사무라이는 16세기경 당시 일본의 천하가 도꾸가와 막부(幕府)로 옮겨 갈 때쯤의 실존인물로 니텐류(二天流)라는 검법의 창시자이다.

 

원래 일본의 전통적인 검술은 긴 칼을 두 손으로 잡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 치거나 옆에서 옆으로 갈라 베어내는 스타일인데 반하여 니텐류는 긴 칼과 짧은 칼을 양손에 나누어 쥐고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검법이다.

 

즉, 전통검법은 칼을 하나만 쓰니까 공격과 방어를 나누어서 해야 하지만 니텐류는 그럴 필요가 없이 긴 칼로 공격하면서 짧은 칼로 방어하는가 하면 두 검이 일시에 적을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금 한곳은 노출시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점이 있다.

 

무사시는 13세에 眞劍을 들고 덤비는 신또류(神道流)의 아리마 기헤이라는 사무라이와 첫 결투에서 그를 곤봉으로 때려 눕힌 후 29세까지 무려 60회 이상을 결투하면서 내노라하는 검객들을 수없이 쓰러뜨렸다.

 

30세 되던 해에 문득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며 깨달은 바가 있어서 참선과 서예, 조각, 그림 같은 것에만 열중하였을 뿐 이후 다시는 칼을 잡지 않았다.

 

무사시가 만년에 영주 호쇼가와의 손님으로 그의 영지 구마모도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열 두어 살이나 되었음직한 소년 사무라이가 자기 키만한 장검을 옆구리에 꽂은 채 무사시를 찾아와 엎드렸다.

 

한 열흘만 검술을 지도해 달라는 것인데 그것도 내가 베임을 당하면서 동시에 적을 베이는 필살(必殺)의 묘수(妙手)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이유인즉 소년이 갓난 아이였을적 소년의 아버지가 결투로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그 원수를 갚을 일념(一念)에 아들을 키웠는데 이제 중한 병으로 며칠을 더 사실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생전에 소원을 이루게 하려고 그 원수 사무라이에게 열흘 후 연병장에서 결투하기로 신청을 하였지만 사실 자기는 아직 칼을 한번 잡아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소년이 원수라는 사무라이 이름을 대는 순간 무사시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그라면 무사시도 인정하는 고수의 칼잡이였던 것이다.

 

“네 뜻은 장하고 효심 또한 기특하다만 너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저는 이길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숨이 끊어지기 전 내 칼이 원수의 살점이라도 건드려서 피 한방울이라도 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당시의 가치관으로 보아서는 아들이 자기 목숨을 던져서 제 아비의 원수를 갚겠 다는데 누가 곁에서 말릴 일이 아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무사시는 이윽고 소년을 가르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 짧은 며칠 동안에 기본 동작을 잡아주거나 방어를 익히는 것은 이미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저 온 정신을 칼끝에 집중하여 상대의 급소에 파고 드는 수법 한가지만 가르쳤다.

 

이윽고 결투의 날이 되어 소년은 무사시에게 이제 이세상에서의 마지막이 될 인사를 올렸다.

무사시는 이길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어 보이는 소년을 보내면서 단 한마디만 하였다.

 

“네가 원수와 마주선 순간 네 발밑을 보아라. 만일 네 발밑에 이사하는 개미들의 행렬을 볼 수 만 있으면 너는 이긴다.”

 

약속한 정오가 되어 소년이 연병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원수 사무라이가 장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삼복 더위중에도 불구하고 구경꾼들이 까맣게 모여 곧 있을 소년의 죽음을 애석해 하고 있었다.

소년은 칼을 뽑았다. 내가 숨이 끊어 지기전 네 피 한방울만 이라도 보여 다오. 그 순간 선생님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생각이 나서 무심코 발 밑을 보았다.

 

“아! 개미..” 개미들이 행렬을 지어 이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 개미, 나는 이긴다. 틀림없이 나는 이긴다.”

 

원수 사무라이가 이 젖비린내 나는 소년을 단칼에 끝내려는 순간 소년의 칼이 먼저 섬광(閃光)을 그으며 원수의 가슴팍을 올려 찍었다.

 

“이겼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길 것 같지도 않던 소년이 기적적으로 이긴 것이다.

 

그후 제자들이 무사시에게 물었다. 어떻게 선생님께서는 소년이 개미 이사 행렬을 보고 이길 것을 아셨습니까? 무사시가 말한다.

 

“그 연병장에는 원래 개미가 많다. 개미들의 행렬은 이 삼복더위에는 항상 볼 수 있다. 나는 소년에게 필승의 신념을 넣어 주려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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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는 유심(萬事唯心)이라고 이기고 지는 것은 사실 마음 하나 먹기에 달려있다.

처음부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과의 차이는 일의 성공과 실패 차이 만큼이나 큰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이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미얀마 지역에 화장품관계 사업을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여러가지 검토하는 시기에 아직 마음을 결정못해 심란한 마음에 문자 적어둔다.

 

죽로산방에서 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