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이야기
카나다 친구로부터 온 논어 이야기
고교 친구가 캐나다로 이주하여 정착한 지 벌써 20여년이 넘었나보다
학창시절 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리더쉽이 뛰어났고 공부 머리도 뛰어났다.
그렇치만 학급에서의 성적은 10등 내외였다고 기억된다.
졸업 후 성규관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대학생활을 마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하더니 80년대 중반, 컴퓨터가 뭔지 잘 모르던 시절에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기기사업을 시작했다.
머리가 좋아 남들보다 항상 앞서가는 프론티어 정신은 있었지만
경영마인드가 부족했던지 하는 사업마다 이득을 보지 못하고
몇 해 못가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
글쓴이의 기억으로는 90년경에 나를 찾아와
역삼동 인근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리고 카나다로 이주할 사람들을 위해
이민사업을 한다며 어떤 식으로 광고하면 되겠느냐고 디자인을 부탁했다.
적절한 홍보전략을 세워주고 카다로그와 부류스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2~3년 정도 지나 소식이 궁금하여 연락해 봤더니 서울보다 현지가 사업성이
좋을 것 같아 아예 사업장을 카나다로 옮겼단다. 그리고 소식두절...
20여년이 지난 2011년 겨울, 친구가 서울에 온지 2주일 정도 됐는데
바쁜 일 처리하느라 연락 못했다며 내일 돌아가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오늘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다.
선약이 있었지만 약속한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마주했다.
“지금 뭐해?” 만나자 마자 내가 제일 먼저 물어 본 말이다.
“응 밴쿠버에서 관광버스 기사하면서 가이드 생활하고 있어... 내 관할지역은
주로 록키산맥 주위를 돌아 다니는 거야. 괜찮아 요즈음은 비철이라 휴가차 온거야”
하여튼 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관광기사와 가이드를 겸하려면 영어도 능숙해야하고
손님들 분위기를 맞춰주려면 임기웅변적인 기지가 많이 필요할텐데...
하기사 뭐든지 잘하는 친구이니 잘 적응했는가 보다.
또 그렇게 2~3년이 흐르고...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엔 메일로...
어떻게 하다보니 밴쿠버 한인회 문인협회장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한힘단상>이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세상살이에 많이 도움이 되는 글들이다.
좋은 글들이라, 스크랩을 해두고 있다.
최근엔 밴쿠버문화센터에서 성균관대학교 밴쿠버동문회 주관으로 매주 목요일
오전에 2시간씩 논어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여 강의를 하게 되었다며
논어에 대한 개괄적인 글을 보내왔다.
한힘문화강좌 | 논어강독 論語講讀
왜 지금 논어論語인가? | 한힘 심현섭
어느 노 철학자는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했다.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나면 모르게 된다.
인생에 대해 단 한 가지만 안다면 그런 사람은
인생은 바로 그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면 모른다는 사람이나 한 가지만 알고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 질문에 대한 한 가닥 해답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짓눌려 있는 동안은
이런 질문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빈곤이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 경제, 실용과학 및 기술, 시험서, 자기 계발서에 밀려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거의 명맥이 끊어질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탄하고 있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의미한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여러 성인과 종교와 학문이 탄생했다.
이슬람은 코란에서, 기독교도는 성경에서 불교도는 불전에서 해답이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종교적인 대답이고, 비종교적인 현실적인 처세에서의 대답이 논어에 있다고 할 것이다.
유학은 동양 삼국, 한국 중국 일본을 지배해온 오랜 중심사상으로
오늘날까지도 문화 사상의 저변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과거 일부 서구 학자들 중에는 유학의 영향아래 있는 나라는 경제발전이나
사회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정체된 사회라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일찍이 선진화하고 한국이 경제와 정치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제 중국은 잠에서 깨어나 세계 2강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것을 모두가 보고 있다.
이 힘이 어디서 분출되어 나온 것인가!
우리는 인간을 최우선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해온
유학의 업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고전古典이라함은 오랜 세월, 수많은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애독되어 온 책을 말한다.
길고 긴 시간을 관통하면서 세대의 변천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아온 책을 말한다.
고전 추천 목록에 항상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 바로 <논어論語>이다.
논어는 공자의 말씀과 제자들과의 여러 담론을 이리저리 엮어놓은 책이다.
인문학의 최고봉을 이루는 최고의 고전이라고 지칭해도 손색이 없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73년을 살았다.
후세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숭앙했지만 공자 자신은 더없이 평범한 일반 사람이다.
신도 아니고 산신령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학력이나 경력을 가진 사람도 물론 아니다.
다만 평생을 배우는 것을 즐기며 자신을 속 깊이 탐구해온 사람일 뿐이다.
▶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논어는 후한의 정현(鄭玄 127-200)에 의해 만들어 졌으니
책으로 제 자리를 잡은 지만 약 1800년이 되었다.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관리가 되기 위해 과거시험을 보려면 필독서가 논어를 비롯한 사서였다.
19세기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서양문물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서구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성장을 이룩했다.
외양은 화려해졌는데 머리와 가슴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정신적으로는 남의 것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유학이 중국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학을 시작한 공자는 산동 사람으로 우리의 고조선 영역이었으며
실제로 공자자신도 동이의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밝힐 만큼
우리는 아주 일찍부터 공자나 유학과 멀리 있지 않았다.
유학사상이 전래한 시기는 서기전 3세기의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추정되며,
공자의 경학사상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불교가 들어온 4세기보다도 약 6백년이 앞서는 시기이다.
우리 민족과 2천년 이상을 함께 했다면 근원은 중국이되 중국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선진국으로서 문명의 근원이 그리스 로마가 아닌 나라가 없다.
▶ <논어>는 일생을 통해서 세 번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청소년 때는 머리로 읽고, 중년이 되어서는 가슴으로 읽고,
노년이 되어 삶의 의미를 천착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온몸으로 읽는다고 한다.
고전은 처지와 나이에 따라서 읽고 받아들이는 감상이 유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어를 읽다보면 어려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있고
나이를 먹고 삶의 경륜이 깊어 갈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논어가 과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와 길을 찾으려 했다.
삶을 떠나서는 삶은 없다는 치열한 인간중심 사상이 녹아있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을 떠나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 논어가 갈파하는 정신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장 21)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14장 20)
진리는 멀리 우주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우리 사이에 있다는 것을 성경이나 논어에서는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는 ‘공자가 주장한 도는 <충忠>과 <서恕>에 다름 아니다’고 하였다.
曾子曰 夫子之道는 忠恕而已矣 충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고,
서는 나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忠 盡己之心, 恕 推己及人 그리하여 인仁이라함은 곧 충서라고 했다.仁則忠恕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논어의 말씀은
동양의 황금률이라 할 만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남도 원하지 않는다는 나와 남을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는
평등사상이다.
나의 아픔이 남에게도 아픔이 되고, 나의 기쁨이 남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복음 7장 12절) 성경을 통틀어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황금률이라고 했다.
위대한 고전 논어는 너무나 평범한 말로 첫머리를 시작하고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는 일 말고도 기쁜 일은 많지만 또한 배우는 일이 즐겁다는 뜻이다.
공자는 스스로 평생을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익히면서 살았다.
배움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인생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성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책을 읽으며 탐구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정신은 2천년을 관통하면서 우리 문화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배워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한국문화의 기본 정신이 여기서부터 발원한 것이다.
▶ 사실 일거수일투족 우리의 일상 속에는 유학의 전통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한국사상문화에 저변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를 엄밀하게 자각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학은 봉건사회를 대표하는 사라져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어
서구화 과정에서 철저히 도외시 되었다.
인문학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하면서 인간을 말하고 있는 논어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문화혁명 시 공자 배격운동이 일어나더니
개혁개방을 통해 선진국으로 부상하면서 정신문화의 기둥으로 다시 공자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중국문화의 중심으로 공자를 내세우고 이미 전 세계에
수백 개의 공자학당을 세우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최근 취업률 1위를 비롯해서 여러 면에서 급성장을 거듭하며
대학순위를 최상위급으로 올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세간의 궁금증을 대신해서 기자가 총장에게 물었다.
총장은 성균관대학교의 건학이념인 유학을 통해서 인성을 고양할 수 있는
인문학 교육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기업에서 지식과 정보만을 취득한 인재를 원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원만하게 융화해 나갈 수 있는 인격적인 품성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를 읽어야 할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