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어떻게 번식하는가?
은행나무는....
40년만의 무더위가 물러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가을이 많이 쇠잔해졌다. 말 그대로 늦가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지나온 나날들을 생각하면 세월이 덧없음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우리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주택에는 은행나무가 몇 그루가 서있다.
담벽을 따라 걸쳐진 나무가지가 바깥 쪽으로 뻗어 있어 샛노란 은행 잎이 길 위에 수북히 쌓여
가을 정취를 복돋아 주는데 한몫을 한다.
하지만 출퇴근 길, 은행나무 앞을 지나노라면 길가에 나뒹구는 은행열매들이 행인들에 밟히고
자동차바퀴에 으개져 향기롭지 못한 냄새로 불쾌감을 유발시킬때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목 중에 메타스퀘이어와 함께 단연 오래된 나무라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악취를 풍기게 되었으며, 또 멸종되지 않고 생존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은행나무는 암수가 딴 그루이다
가지가 수직으로 뻗어간 나무는 수 그루이고, 가지가 수평으로 넓게 퍼져 있는 것이 암 그루다.
수 그루는 꽃가루를 최대한 멀리 높은 곳에서 퍼드리기 위해 하늘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고
암 그루는 수 그루의 꽃가루를 최대한 받아들이기 좋도록 가지를 평평하게 퍼뜨린다.
은행알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암나무에 열리는 종자의 겉껍질에서 난다.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지구에서 살아온 역사가 길다.
식물학자들은 은행나무가 약 3억 5천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초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살았던 은행나무 가운데 일부는 땅속에 묻혔다가 오늘날 석탄 혹은 석유 형태로 쓰이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생대 쥬라기 때 가장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룡들과 함께 지구상에 군림했던
역사의 산증인인 셈. 긴 세월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은행나무도 인간의 꼬리뼈처럼 진화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과연 그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태초에 생명체는 물속에 살고 있었는데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식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육상 환경에 맞도록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켰는데 은행나무도 여기에 동참했다.
물속식물은 수컷의 정자와 암컷의 난자를 물속에 뿌려 수분을 맺도록 한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식물의 꽃가루에 해당하는 것이 정자다. 물속에서는 꽃가루를 운반해줄 바람이 불지 않는다.
물고기가 벌과 나비를 대신해 꽃가루를 옮겨다 주지도 않기 때문에
정자는 여러 개의 꼬리를 달고 물속을 헤엄쳐 난자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육상에서 자손을 남길 수 없었다.
결국 암컷의 난자는 세포 안에서 수컷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난자는 다른 세포로 둘러싸인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정자가 찾아오길 기다린 것이다.
오늘날 육상식물은 바람과 벌, 나비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운동성을 지닌 꼬리가 필요 없다.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런데 은행나무만은 여전히 정자에 꼬리를 달고 있다.
꼬리가 없다면 꽃가루라 불려져야 마땅하지만 스스로 움직이면서 운동할 수 있어 ‘정충’이라 부른다.
1895년 일본인 히라세 교수가 정충을 처음 발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정충이 스스로 움직여 이동할 수 있다는 표현을...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혹은 한 가지에서 이웃가지로 나무껍질을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오해다.
암꽃의 안쪽에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우물이 있고,
이 우물의 표면에 떨어진 정충이 짧은 거리를 헤엄쳐 난자 쪽으로 이동하는데 꼬리를 쓰는 것이다.
은행나무 종자는 원시시절 물속식물이 지녔던 흔적인 것이다.
신기한 것은 깊은 산속에서는 은행나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도 용문산에 있는 은행나무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듯
깊은 산 속에 자라더라도 인간이 옮겨다 심은 것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은행나무 종자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산 위로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하지만 참나무류 열매인 도토리는 크고 무거워도 다람쥐가 겨울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옮겨다
땅에 묻는다. 이 가운데 일부는 매년 봄 싹이 돋아나 나무로 자라난다.
그렇다면 은행나무를 옮겨다 심어주는 동물은 없을까?
아쉽게도 종자를 덮고 있는 과육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만지면 피부가 가렵기 때문에
다른 동물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은행알을 먹으며, 다른 곳에 종자를 퍼트려 준다.
인간이 사는 곳 부근에서만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은행알의 고약한 냄새는 은행나무가 종족번식을 위해 인간에게만 보내는 비밀 신호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은행들은 인간을 매개체로 종족을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은행열매에서 풍기는 냄새가 종족번식의 본질임을 생각하면서
하나의 생명으로 봐줘야 할 것 같다.
자연의 순환을 살려주는 것이 홍익자연(弘益自然) 하는 길 아닌가~
늙은 가을에 죽로산방에서 서PD